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인지, 어디로 가는지 안다면,
꿈은 나비고, 꽃이고, 샘이고, 깨끗한 하루고, 다시 살고 싶은 삶이다.
2014년 9월 14일
헤르만 헤세는 그 언젠가 '시인이 아니면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다' 하였다. 그는 시 같은 길을 걸었고 그토록 원하던 시인의 삶도 살았다.
그가 남긴 글은 세계 곳곳에 그리고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다.
아름다운 그의 글을 찬찬히 쫓아가다 복받쳐 오르는 슬픔과 안도의 감정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었다.
그의 세밀한 감정의 나의 그것과 같았고, 그것의 깊이와 강도가 어떤 것인 줄 알기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 앉아 그것을 어루만지고 위로를 건넸다. 예쁘고 청초한 들꽃도 꺾어 조심스레 놓아주었다.
꺼져가는 가슴을 단단히 붙잡아 주었다. 걷잡을 새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도 닦아 주었다.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내가 그를 이해하듯 그가 이미 나를 이해해 주었다.
일일이 나의 마음을 꺼내 보이지 않아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타협하지 않고 꿈속을 살았기 때문에 나는 나의 유년 시절과 수많은 실수와 감정의 소용돌이 그 자체인 나와 화해할 수 있었다.
그것들이 결국 나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지금 나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시인이 아니면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
어느 날 썼던 일기입니다. 내가 매혹되는 이들은, 나와 결이 같은 이들입니다.
나는 헤르만 헤세가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시인이 아니면 그 무엇도 되고 싶지 않다'라고 고백했습니다.
평범한 간호사이던 나는 어째서 이런 글을 썼을까요?
어쩌면 이 글을 썼던 것은 내가 아니라, 헤르만 헤세를 관통한 내 안의 샤먼이었던 것은 아닐까요?
이 글은 고백이 아니라 예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섬세한 시인의 글처럼, 영적인 삶에 대한 민감함이 나를 '지금 이곳'까지 인도하였습니다.
나는 오늘도 '시 같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꿈' 하나를 입 안에 넣습니다.
나는 나에게로 은둔하는 10년을 선물로 주고, 몸과 언어에 헌신하여 관능적인 동시에 성스러운 글을 쓸 것입니다.
연극치료의 창시자 모레노의 망상처럼, 삶의 자발성과 창조성을 극대화해, 여성 삶의 회복을 돕고, 그들이 키우는 아이 또한 살리는 샤먼이 될 것입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재능을 통해 칼 융이 그랬던 것처럼 우주의 언어를 전하고 실현시키는, 빛과 어둠일 것이며, 나는 그 무엇보다 가장 먼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의 자애롭고 따뜻한 고향, 나의 남편의 황홀한 천국일 것입니다.
지금 나는 걷습니다.
살림 메시지를 씁니다.
환자를 돌봅니다.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재웁니다.
물건을 버립니다.
기쁨을 셉니다.
이런 나를 보고 남들은 내게 네가 먹은 것은 음식이야, 옷이야, 집이야, 지긋지긋한 일상이야, 살아내야 하는 삶이야'라고 말하지만, 저는 압니다.
남들과 같은 것을 먹어도, 이것은 '나비고, 꽃이고, 샘이고, 깨끗한 하루고, 다시 살고 싶을 삶'인 것을요. 내가 누구인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안다면요.
당신! 꿈꿉시다. 꿈을 잃지 맙시다. 자꾸만 꿈을 먹읍시다. 남들이 뭐라 하든, 당신의 꿈은 나비고, 꽃이고, 샘이고, 깨끗한 하루고, 다시 살고 싶은 삶입니다.
지금-여기에서 어제보다 더 사랑하는 당신의 꿈은 단언컨대, 우주의 예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