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감정과 유산소

by 스구

처서 : 양력 8월 22일경. 한자로는 멈출 처(處)에 더울 서(暑)를 써서 '더위가 그친다'는 의미다.



실제로 물에 빠진 찰나에 찍힌 사진이다.
유산소(운동)는 운동 시 발생하는 에너지가 충분한 산소의 공급을 조건으로 시행되는 신체의 지속적인 운동 부하를 말한다. (위키백과)


1년 전 좋은 기회로 서핑 강습을 받았다. 서핑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 대충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친구가 같이 해보자고 제안을 했을 땐 마냥 신나서 오케이를 외쳤다. 그러나 바다에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마음속에는 은은한 두려움이 쌓이고 있었다. 사전 교육을 받을 때 이런저런 안전사고의 예시를 듣기도 했고, 바다에 들어가는 게 오랜만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떨어질 대로 떨어진 나의 체력이 가장 걱정이었다.





걱정이 무색하게 서핑 강습은 별 일 없이 끝났다. 오히려 재미있었다. 친구는 수업이 끝난 후에 감을 잡은 것 같다고 했지만 난 영 운동 신경이 없어서 그런지 파도를 타기는커녕 물을 먹기 일쑤였다. 우리는 한 시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바다에서 놀고 서핑샵으로 돌아갔다.






사워를 하러 들어가는데 서핑샵 한가운데에 있는 수영장이 눈에 들어왔다. 수영을 배우고 있는 친구와 물을 좋아하는 나는 방금까지 바다에 있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 수영이 하고 싶어졌다. 사실 강습 시간에는 자유롭게 수영을 하기가 어렵기도 했고 바닷물과 민물은 엄연히 다르다는 입장이었다. 사장님께 이용을 해도 되는지 여쭤보니 괜찮다고 하셨다. 우리는 몸에 붙어있던 모래를 얼른 씻어 내고 2차전을 시작했다.






사방이 막혀있는 수영장에 안정감을 느껴서일까 그야말로 물 만난 물고기처럼 수영을 했다. '물고기'라고 했지만 솔직히 별로 유려한 수영 실력은 아니고 그냥 신이 난 것이었다. 한참 놀고 있는데 스탭 한 분이 가까이 다가오셨다. 잠깐 얘기를 나눠 보니 과거 수영 선수 출신이라고 했다. 잠시 후 자연스럽게 2교시 수영 강습이 시작되었다. 코치님(?)은 물 바깥에 서서 자유형의 자세와 팁을 간단히 알려주셨다. 그때가 이미 수영장에 들어간 지 30분은 족히 지난 즈음이었다. 앞서 말했지만 나의 평소 체력은 절전 모드를 실행해야 하는 수준이므로 그때는 뭐 이미 지쳐있었다. 자유형으로 수영장 3분의 2 지점까지만 가도 헉헉거리며 멈춰야 했다.




- "힘들죠?"

- "어후, 네"

- "그거 유산소 안 해서 그래요"

- "아하?!"






팁을 주시려나 했는데 그냥 운동 부족이라는... 당연하고도 머쓱한 대답을 들었다. 역시 선출이라 예리하시네? 흐흠. 평소에 뛰는 걸 정말 싫어하는 자칭타칭 '심폐지구력 제로 인간'이긴 했지만 좋아하는 수영을 할 때 한계가 확 느껴지니 그제야 유산소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미리미리 단련을 해놓아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힘들지 않겠지.'






그 후 서울로 돌아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하는 일이다. 아주 바쁘진 않았지만 기계적일 수 있는 일을 기계적으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다 보니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금방 동났다. 다정함은 체력에서 나온다고 했던가. 기본적인 체력이 없으니 다정함과 자주 멀어졌다. 차가워지거나 별 것 아닌 일에 심각해지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내가 기질적으로 예민한 사람이라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것을 감각하고 신경 쓰는 편이라서. 그러나 그렇게 20년을 훌쩍 넘게 살아보니 이걸 더 이상 기질로만 치부할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고 태어난 것을 완전히 바꿔버릴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게는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모르긴 몰라도 운동, 체력인 것 같다.







감정에도 유산소 운동이 필요하구나. 몇 번이고 다정함에서 멀어진 후에야 깨달았다. 그래서 아직 3분의 2 지점 밖에 오지 않았음에도 지쳐버리는 거였어. 그런데 과연 내가 정말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고 없고 와는 상관없이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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