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있다는 것. <브러시 업 라이프>와 <연애의 발견>
입추 : 양력 8월 7일경. 가을의 시작.
절기상으로는 벌써 가을이다. 그러나 아직 날씨는 여전히 찜통이다.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며 에어컨이 있는 곳을 찾아다닌다. 그래도 가을의 길목에 들어섰다는 것은 길었던 여름이 끝나간다는 것이다. 여전히 덥지만 다가올 가을을 생각하며 나의 지난여름을 반추해 본다. 이번 여름은 맥주를 아주 게을리 마셨고 쉽게 기운을 차리기 어려웠다. 한 가지 열심히 한 것이 있다면 드라마를 많이 봤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볼 드라마를 고를 때의 개인적인 기준이 있다. 일상의 이야기 거나 어떤 '느낌'이 좋아야 한다는 것. 판타지나 장르물 보다는 내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을 담은 소소한 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정확히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 설명하기는 좀 모호하다. 예시를 드는 게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으니 잠시 나열하자면, 일드 <나기의 휴식>, <빵과 스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 <커피 프린스 1호점>, <연애의 발견> 등이다. 다시 생각해 보면 평범한 일상을 특별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그런 작품인 것 같다.
재밌게 본 일드 <브러시 업 라이프>는 주인공 콘도 아사미(안도 사쿠라)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다시 태어나 살아가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드라마다. 위에서 판타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건 그 설정을 제외하면 지극히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내용의 드라마다. 주인공 자신과 주변 인물들에 관한.
마지막화까지 다 본 후에 문득 2014년 방영한 <연애의 발견>이 떠올랐다. 더 정확히는 거기에 나온 대사가. 드라마의 가장 끝에 나오는 한여름의 내레이션이다.
언젠가 이 사랑도 끝이 나겠죠?
끝나지 않는 사랑은 없지만 영원할 거라 믿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손을 잡지 못할 거예요.
- 드라마 <연애의 발견> 중
'끝'.
두 편의 드라마가 맞닿는 지점이다. <브러시 업 라이프>에서도 주인공이 끝(마지막)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신기하지 않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말을 들으면
모든 체험이 소중한 것 같아.
-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 중
나의 인생관도 여기에 닿아있다. 끝이 있다는 걸 아는 것. 유한함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끝을 인지하는 순간 모든 것이 아주 달고, 아주 쓰다. 단적인 예지만 개학을 앞둔 방학 마지막날. 하루가 얼마나 달고 빠르게 흐르는가. 그리고 그날의 밤은 슬프게도 무척 쓰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익숙해지고 당연해지는 것들 투성이다. 어제까지 그래왔고, 오늘도 그렇고, 내일도 그럴 것 같은 일들에 매일 새롭게 소중함을 느끼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다.(일단 나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그 매일에도 끝이 존재하는 것을 안다면 가끔은 당연했던 것이 사무치게 소중하고 잠시라도 더 충실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 그게 언젠가의 끝에서 후회를 줄이는 방법이 된다.(는 걸 어째선지 나는 다소 어린 나이에 깨달아버렸다.)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끝을 마주한다. 찬란한 청춘도, 뜨거운 사랑도, 단단한 피부도 모두 변하고 끝날 것이다. 물론 좋은 것들만 끝나는 것은 아니다. 빛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 같은 우울도 언젠간 끝이 난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끝은 있다. 그걸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치 끝이 없는 것처럼 사랑하고, 지금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