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복수
결국 내가 서울로 나가지 못하고 민호가 정선으로 왔다.
그 산골에서는 보기 드문 고급 외제차를 타고 왔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았고 때로는 비포장 도로도 통과했을 텐데 차에 흠집이 나지 않았을지 염려되었다.
멀으니까 오지 말라고 그렇게 만류를 했건만 민호 입장에서는 내가 그 먼 길을 운전을 해서 서울로 나오는 것이 더 불안했던 모양이었다.
"이틀 뒤에 시간이 나니까 내가 정선으로 갈게." 라며...
민호는 차를 집 앞 주차장에 세우고 내렸다.
겨울 초입이었지만 날씨가 맑고 햇빛이 쨍했다.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민호는 어지간히 외모에 신경을 쓰는 타입 같다.
이 겨울에도 선글라스에 청바지 그리고 크림색 목 폴라티에 역시 크림색 짧은 패딩 코트를 입었다. 그리고 디올 로고가 새겨진 브라운색 캐시미어 목도리를 둘렀다. 너무 세련돼서 민호가 아니었다면 연예인인 줄 알았을 것이다.
차에서 서서히 내리던 민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편한 실내 복장으로 민호를 맞이하러 나갔는데 나를 보자 민호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나는 초라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민망했지만 한편으론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어서 와. 잘 찾아왔네. 힘들었지?"
"멀긴 머네. 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걸 보니 꽤 힘들었던 모양이다.
민호는 앞마당에 서서 멀리 내다 보이는 전경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우리 집에 온 사람은 누구나 그런 표정을 지었기 때문에 당연해 보였다.
"멋있지?"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
"너무 멋있네. 어떻게 이런 곳을 알았어? 소개받았어?"라고 민호가 물었다.
이 질문도 우리 집에 온 사람은 누구나 하는 질문이어서 익숙했다.
"어찌어찌해서 내가 찾은 거야."
"허! 참!" 민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혀를 찼다.
민호는 집 주변을 구경시켜 달라고 했다. 천천히 걸으며 마당, 뒷밭, 텃밭 등을 보여주었다. 뒷밭은 내 키만큼 자랐던 풀들이 무성해서 들어가 보지 못했다. 이제 서리를 맞거나 눈을 맞는다면 저 풀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기고 숨이 죽어 스러질 것이다. 그때가지 건들지 않을 것이다. 겨울 내내 그렇게 놔두었다가 봄이 올 즈음 사람을 사서 갈아엎을 계획이다.
집 주변을 천천히 둘러본 다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도 민호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나 여기서 이렇게 살아..."
그러게 왜 여기서 이렇게 살고 있는 건데? 민호는 연신 그런 표정이다.
"말하자면 길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끝냈다.
더 이상 말 시키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민호는 답답해하는 거 같았다. 내 얘기를 듣고 싶은 거 같은데 내가 쉽게 말을 꺼내지 않으니 프라이버시
때문에 선뜻 묻지 못하는 거 같았다.
나는 그때까지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식사 준비를 못했다.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고 오전 내내 운전을 하고 왔으니 배가 고플 것이었다.
"미안해. 점심은 밖에 나가서 먹자."
"근처에 식당이 있어?"
"그럼. 이 근처가 관광지라 조금 나가면 맛집들 많아."
나는 민호를 데리고 영월로 나갔다. 우리 집은 정선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고 정선과 영월의 경계에 위치했는데 읍내를 나가기는 영월 쪽이 더 가까웠다. 그래서 정선 오일장 보다도 영월 오일장을 더 자주 이용했고 병원이나 약국 보건소 대형마트 등도 영월에서 해결했다. 맛집이나 카페도 영월로 나갔다.
민호와 함께 '동강의 아침'이라는 한 식 맛집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각종 산나물과 된장찌개가 있는 시골 밥상에 갈비찜을 추가해서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나를 우리 집으로 데려다주고 민호는 약속이 있다며 급히 떠났다.
식사를 할 때 내가 민호에게 물었다.
"와이프는 어딨어? 한국에? 미국에?"
그렇게 묻자 민호가 밥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나 오래전에 이혼했어."
오히려 놀란 것은 나였다. 나는 밥숟가락을 놓칠 뻔했다.
"그... 그랬어? 그랬구나... 그렇구나..." 나는 연신 말을 더듬었고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혼? 할 수도 있지. 이혼이 요즘 세상에 대수는 아니다. 흔한 일이다.
요즘은 어느 쪽도 희생이나 헌신이나 인내하는 결혼 생활을 미덕이라 생각하며 견디지 않는다. 그런 시대는 지났다. 나 만하더라도. 지고지순한 현모양처를 지향했지만 그게 한쪽의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당해봐서 안다. '시절인연'이란 말이 있지만 그 말은 부부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적어도 내게는 일부종사고 백년해로고 현모양처고... 내 머릿속에 있는 결혼이란 개념은 그랬다.
그런데 어쩌라고 배우자가 바람이 났는데 아내인 내가 여자로도 아내로도 보이지 않는다는데. 그리고 일도 사랑하지 않는다는데. 같이 살기 싫다는데...
다만 나는 민호는 나와 같은 이유로 이혼하지 않았기를 바랐다.
단순히 성격이 안 맞아서 이혼할 수도 있으니까...
왜 이혼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내 영역 밖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또 불륜 이런 문제로 이혼했단 말을 들을 까봐 두려웠다.
병든 거 같았다. 내 마음이...
민호가 이혼했다는 그것도 오래전에 했다는 말을 듣고 처음엔 놀랐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마음이 아렸다.
'너는 또 왜? 그것도 오래전에 이혼을 한 거냐' 하는 생각에 마치 내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
이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지옥 같고 전쟁 같은 줄 알기 때문이다.
민호는 잘 컸고 잘 살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서 마음이 아팠다.
이혼을 했다고 잘 못 살 은 건 아니야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혼 같이 헤어지지 않고 사는 부부가 더 많으므로 너나 나는 왜 거기 그런 일반적이고 평범한 삶의 형태에서 벗어나야만 했는지가 마음이 아팠다.
티격태격하면서도 알콩달콩하며 끝까지 지켜주며 가는 게 부부이고 그런 소소한 행복뿐만이 아니라 부부라는 것은 엄청나게 큰 정치 사회 교육 철학 등등 그리고 종교까지, 많은 의미와 가치를 담고 있는 개념인데 시대가 점점 그것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거 같다.
평소 유교적 전통에 대해 문제가 많다고 생각은 하지만 부적절한 관계로 인한 가정 파괴 현상이 암처럼 조용히 퍼지고 있는데도 개인의 자유며 사생활 문제로 합리화되고 치부되고 있는 현상에 대해선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어젯밤에는 K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경아~ 술 한 잔 했다."
"잘하셨어요."
"이경아~ 잘 살고 있는 거지?"
"네 걱정 마세요 잘 살고 있어요."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사는 게 별거 없어... 밥 잘 챙겨 먹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라"
"네 그럴게요."
그래도 선배들이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구나 싶어 감격했다.
그런데 K선배의 말 "사는 게 별거 없어"라는 말이 뇌리에 맴돌았다.
정말 사는 게 별거 없을 까?
사는 게 별거가 아닐까?
절대 아닌 거 같은데 왜 말들은 그렇게 하지?
나는 사는 게 별거가 아닌 게 아니다. 정말 이해가 안 된다. 그리고 진짜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