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의 전설적인 왕 '라그나 로스브룩'의 이야기를 그린 8세기 때의 이야기입니다. 라그나는 지금의 덴마크 주변의 카테가트라는 항구 도시의 농부였어요. 그래도 상당히 인정받는 농부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북유럽 즉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는 같은 북유럽 문화를 공유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했던 것 같아요. 각 지역은 군장Earl이 다스리는 도시국가 같았지요.
라그나는 우연히 자신의 지역으로 온 방랑자의 존재를 통해 지금의 영국으로 가는 항로를 알게 됩니다. 북유럽은 땅이 척박해서 봄, 여름이면 동쪽으로 약탈을 가는 바이킹들이었으니깐요. 카테카트의 군장은 처음엔 반대합니다. 아무도 서쪽으로 가본 적은 없었거든요. 하지만 라그나는 모든 재산을 털어서 친구인 플로키가 만든 배를 타고 지금의 스코틀랜드 땅에 상륙합니다. 그리고 해안가에 있던 수도원을 약탈하고 돌아옵니다.
당시 수도원은 금은보화가 가득한 보물창고였습니다. 부자들이 천국을 위한 통로로 이용했기 때문이에요 라그나는 돌아오면서 수도사들도 잡아옵니다. 카테가트에 돌아와 군장에게 금은보화를 바칩니다. 군장은 자신의 지위가 약해질 것이 두려워 금은보화 중 하나만 고르라고 말하죠.
라그나는 눈에 보이는 보석과 금을 버리고, 자신이 데려온 수도사 알테스탄을 노예로 삼기로 합니다. 알테스탄은 영국인이었지만 (정확히는 당시 영국은 칠 왕국이었고, 라그나가 침략한 스코틀랜드는 노섬브리아라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북유럽의 언어를 할 줄 알았기에 금방 적응하고 라그나와 친구가 되어 갑니다.
시즌을 거듭하며 라그나는 왕이 되고, 침략이 이어지지만
주제는 북유럽의 신들을 믿는 바이킹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일신의 칠 왕국과 프랑크 왕국(프랑스)의 종교적인 대립과 '라그나'의 고민으로 점점 넘어가게 됩니다.(다시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은 알테스탄은 북유럽의 종교를 신봉하는 플로키에 의해 죽임을 당한 후였어요.)
오딘과 발할라라는 믿음의 다신교적 색채를 보여주는 북유럽의 믿음.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의 기독교 유일신 사상.
그 사이에서 '라그나'는 다신교와 유일신 그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그리고 신이라는 절대적 하나의 신앙으로 들어설 것 같은 느낌입니다.(모든 시즌을 보진 못해서 제가 본 회까지는 그런 느낌입니다.)
신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교회에서 대해서도 생각해 봅니다. 어떤 생각인지는 밝히지 않겠습니다. 수많은 생각들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지요.
<바이킹스>에서 영국 칠 왕국의 패자였던 웨섹스 에크하트 왕은 로마인들이 남기고 간 궁중 목욕탕과 섬세한 미술품, 완벽한 전술 등을 번역하고 아낍니다. 수백 년이 지났지만 로마의 용인할만한 문화는 제국을 번성시켰던 것입니다.
그리고 웨섹스가 잉글랜드 왕가의 시조가 되는 건 역사적 사실로 남아있습니다.(물론 둘의 인과적 결과물은 아닐 것입니다.)
기독교가 전파된 중세라는 세계는 다른 신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북유럽의 여러 신들과 로마의 신들, 우리가 알고 있는 '비너스'의 조각상들 까지 모두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전의 예술품들입니다.
기독교 공인 후 로마의 아름답던 미술품, 기록물은 모두 기독교인들에 의해 파괴됩니다. 그리고 단순하고 예술적 가치가 없는 단순한 예술품만이 남게 되죠. 그렇게 중세가 시작됩니다.
멋진 건축물, 수도시설, 도로를 건설했던 로마의 귀족과 황제는 오로지 기독교 사원에만 봉헌하게 됩니다. 로마는 점차 쇠퇴하게 되고요. 제국이 넓어짐에 따라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으로 나누어 두 명의 황제가 다스리게 됩니다. 서로마제국은 5세기에 멸망하고, 동로마제국(비잔틴제국)은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의 함락까진 존속합니다.
지금 박물관에 남아있는 기독교 시절 이전의 로마 예술품들은 지각 있던 로마의 귀족들이 자신의 별장 땅 속에 묻어두거나, 로마를 흐르는 강 속에 던져놓았던 것을 소중하게 다시 되찾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신교가 옳은가? 유일신이 옳은가? 에 대한 고민은 종교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남이 믿는 것을 인정해야만 올바른 신앙이라고 확신하는 다신교도인 로마인이 보기에 남이 믿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 일신교는 잘못된 신앙으로 보였을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
로마인들은 다신교 사회였습니다. 역사란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항상 정방향을 향해 진행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항상 발전할 것 같지만 퇴보하기도 하고, 다시 발전을 향해가기도 합니다. '과학기술이 나날이 발전하는 현대사회에서 여성권이 더더욱발전할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니다.'라는 답이 나옵니다. 여성의 지위는 고려시대가 조선시대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문화적 용인이 인정되지 않는 사회는 퇴보하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이 이슬람을 믿거나, 기독교를 믿는 나라를 생각해 보세요. 문화적 다양성이 있을까요?
'사람이 로마 가도를 가는 것보다 더 빠른 속도로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 것은 철도가 보급된 19세기 중엽부터다.' <로마인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