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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Feb 18.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설명-아는 것만큼 본다는 거짓말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거짓말


“아는 것만큼 보인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적어도 글쓰기에서는 그렇다. 좀 더 정확한 표현을 사용하자. “아는 것만큼 쓴다”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아는 것’은 의식의 영역이다. 그러나 글을 쓰다 보면 항상 무의식의 출현을 목도한다. 다른 말로 “글이 글을 부른다”라는 것을 실감한다. 비슷한 취지로, 소설이나 영화를 볼 때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이 있다. “등장인물들은 항상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말한다”라는 말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을 말한다는 것은 그들이 해석의 대상이 된다는 말이다. 글쓰기에서도 같은 말이 가능하다. 우리는 항상 자기가 알고 있는 것 이상을 쓴다. 알고 있는 것만 쓰겠다는 자들은 글쓰기를 애초에 모르는 자들이다. 논어 식 표현을 빌리자면 곤이 불학(困而不學, 곤란에 처해도 배우려 하지 않는 자)이다.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고(생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작가는 손으로(머리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앞에서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글쓰기 없이, 생각을 모으고 생각을 키우는 일이 글쓰기 공부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을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곤이불학이라 애초에 ‘그릇’ 자체가 작은데 그 안에서 모으고 키운 들 무슨 효험이 있겠는가? 모든 공부가 다 그렇겠지만 글쓰기 공부에서도 내 ‘그릇’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다. 내 생각을 버려야 책이나 글 속에 담긴 생각들이 내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다. 허심포산(虛心包山), 생각을 키우지 말고 생각을 버려야 큰 생각들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방해받는 일 없이 글이 글을 불러올 수 있다. <번듯한 그릇>을 읽은 뒤이니 그보다 먼저 작성된 <주워온 자식, 데려온 자식>을 읽어 보자. 때로는 역순 읽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특히 낯선 전장고사(典章故事, 규범이 되는 책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이나 사건)가 읽기의 의무가 될 때는 더 그렇다.  


<주워온 자식데려온 자식>


공자와 관련된 이야기에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두 제자가 있으니 안회(顔回)와 자로(子路)가 그들이다. 안회는 공자보다 서른 살이나 어린 아들 같은 제자고 자로는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동생 같은 제자다. 짐작컨대 자로는 완력도 좀 있고 성격도 좀 거칠었던 듯하다. 처음 공자의 문하에 입문할 때도 스승에게 상당히 불손한 태도를 취했다. 그에 반해서 안회는 생이지지(生而知之)였다. 하나를 알면 열을 깨치는 수재였고 품성 또한 완벽했다. 공자가 자기보다 나은 제자라고 인정했던 유일한 제자였다. 

엉뚱하게도 나는, 공자의 일생과 관련지어 그들을 <주워온 자식>과 <데려온 자식>으로 자리매김한다. 물론 안빈낙도를 강조하고 있는 현재의 공자와의 관계다. 두 영혼의 자식은 서로 입장이 다르다. 안회는 주워온 자식(업둥이, 입양아)이고 자로는 밖에서 낳아서 데려온 자식(전실 소생, 사생아)이다. 그들의 아버지 공자는 한때 위정지도(爲政之道)에 목을 매고 살았다. 주유천하 시기의 공자가 바로 그다. 안빈낙도의 화신인 안회는 그때의 공자와는 전혀 핏줄 관계가 없다. 반면 자로는 그때부터 공자의 오른팔이었다. 지금은 비록 안빈낙도로 성을 갈았지만 여전히 공자의 무의식에는 위정지도의 핏줄이 흐르고 있다고 했을 때(공자도 인간이다) 자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사생아가 된다는 것이다. 

본디 입양아에게는 부모의 핏줄 욕심이 개입할 여지가 없다. 애증병존의 그늘이 끼어들 공간이 없는 것이다. 그런 관계로 부모는 늘 평정심으로(남들이 볼 때는 냉대일 수도 있다) 아이를 대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아이는 무엇을 하든 그냥 귀엽다. 조금만 노력하면 부모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수 있다. 투사(projection)가 없고, 보상 욕구에 기반한 과장된 기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려온 자식은 그렇지 않다. 부모 중의 다른 한 사람과는 핏줄 인연이 없다. 가족 관계에 균열을 초래하는 트러블 메이커가 될 때도 많다. 그래서 자꾸 꼬인다. 투사와 보상심리와 피해의식이 서로 피드백하면서 가족 안에서 과도한 심리 에너지의 손실이 발생한다. 못하는 일이 있으면 꼭 자기를 닮아서인 것 같고, 잘해도 핏줄 관계가 없는 쪽에서 싫어한다. 어쩔 수 없이 핏줄이 걸린 부모에게는 늘 짐과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 행여 행동거지가 좀 불량스럽기까지 하면 매사에 타박의 대상이 된다. 『논어』를 보면 두 사람의 운명이 딱 그렇다. 안회는 하는 일마다 칭찬이고 자로는 하는 일마다 꾸지람이다.

자로는 천덕꾸러기다. 적어도 『논어』에서는 그렇다. 그는 언제나 ‘주워온 자식’ 안회에게 눌려 지내고, 미운 오리 새끼처럼 좌중들 앞에서 ‘데려온 자식’ 취급을 받는다. 수시로 무안을 당한다. 한 번은 스승이 안회를 지나치게 두둔하여 안하무인, 다른 제자들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자 그는 자기를 좀 봐달라고 간청한다.


“선생님께서 삼군(三軍)을 거느리고 출정하신다면 누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처음부터 자기 이름이 거론될 것을 기대하고 한 말이다. 그러나 공자는 정답게 말을 건네지 않았다.

“맨손으로 범을 때려잡으려 하고, 맨발로 배 없이 황하를 건너려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자와는 함께하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일에 임해 두려워하고 꾀를 잘 내어 일을 성취하는 자와 함께 하겠다”라고 했다.

공자에게 가장 충실했던 이 제자는 가엾게도 언제나 남만 돋보이게 하는 보조 역할로 끝나고 만 것이다.


그러나 스승은 “너와 함께 하겠다”라고 자로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대신 자로의 결함을 하나씩 지적하면서 “너는 나서지 마라”라고 주의를 준다. 자로가 공자 교단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자로와 안회는 스승보다 일찍 죽었던 제자들이다. 그들의 죽음을 두고 스승이 보여준 애도는 참으로 절절한 것이었다. 안회가 죽자 공자는 하늘이 자신을 버리는 것(망하게 하는 것)으로 여겼고, 아예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자로가 죽었을 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자로는 죽음에 임박했을 때에도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 기울였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서도 비뚤어진 갓끈을 고쳐 매는 예교 문화의 화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스승은 제자를 대체로 두 가지 방법으로 다룬다. 양극단으로 나누어 본다면, 안회처럼 대하거나 자로처럼 대한다. 내 경우를 보면, 자로처럼 대하는 제자가 내심 편하고 사랑스러울 때가 많다. 그건 후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자도 ‘데려온 자식’ 자로를 누구보다도 더 사랑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미우나 고우나, 불쌍한, 어쨌든 내 핏줄이니까.

공자에게 ‘안빈낙도(安貧樂道)’가 하나의 주의(主義)가 되는 것은 60세를 넘어서였다. 그때서야 ‘60번도 넘게 새롭게 자신을 바꾼’ 거백옥을 예찬한다. 공자가 제자들에게 거백옥을 닮자고 한 것은 이미 그가 속세에서 뜻을 거두었던 때였기 때문이었다. 안회가 스승과 행장(行藏)을 같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후계자로 지목되는 것도 그 무렵이었다. 공자는 예순아홉 살에 겨우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었는데,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는 살지 아니하며, 천하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숨을 것이니라(子曰 篤信好學 守死善道 危邦不入 亂邦不居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태백」)라는 평소의 지론을 그때서야 비로소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욕심 없이 키워온 ‘주워온 자식’이 더할 나위 없이 이뻐 보일 때가 바로 그때였다는 것이다. 

공자는 이미 신화다. 신화는 언제나 새롭게 읽는 자에게 자신의 비의(秘意)를 허락한다. 공자는 늘 자신을 변화시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변화할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그건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러나, 우리는 늘 나는 그대로이고 싶고, 나 이외의 사람들이 나에 맞게 변해주기만을 고대한다. 그래서 사람살이는 늘 고되다. 그 둘 중에서 어느 하나만 쉽게 이루어져도 그만큼 고되지 않을 것이다. 사람으로 사는 것은 예나 제나 어려운 일이다. <양선규, 페이스북>


인용된 예문에서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라는 신화를 읽는 키워드로 ‘주워온 자식, 데려온 자식’을 사용한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의 머릿속으로 옮기기 위해서 필자가 선택한 방법은 비교와 대조다. 비교와 대조는 설명의 가장 흔한 방법이다. 예시(예증)와 함께 가장 유용한 설명의 방법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그것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섣부른 이항 대립은 일종의 야바위다. 세상 모든 것을 두 개로 축약하고 모든 관계를 이항 대립의 관계 속으로 몰아넣는다. 나머지 가능한 연상과 유추는 일괄 폐기 처분된다. 구조주의가 이 이항 대립으로 설명계의 왕좌를 한 때나마 차지했던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물론 후기 구조주의의 등장으로 재위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야바위라고 혹평을 하긴 했지만 신중하게 고안된 비교와 대조는 매우 유용한 설명의 방법이다. 정의(定義, 어떤 사물이나 말의 뜻을 명백하게 규정함)가 설명의 주춧돌이라면 비교와 대조는 설명의 기둥이다. 비교와 대조라는 기둥 위에 연상과 유추라는 서까래를 얹고 예시·예증의 지붕을 덮으면 한 채의 튼튼한 설명의 집이 완성된다. 반어나 역설, 비유나 상징 같은 내외장재는 그때그때 자신의 집 취향에 따라 붙이고 바르면 된다. 

위의 예문은 비교와 대조를 주로 사용하면서 예시(고사 인용)와 유추(공유 경험 진술)를 동원해 자신의 날림 공사(이항 대립식 비교법)를 보강한다. 그런 보강 작업이 없으면 독자의 의심이 빗물처럼 스며들어 애써 지은 건축물이 붕괴될 수도 있다. 집이든 글이든 누수(漏水)가 가장 큰 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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