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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Apr 21. 2019

쿠라의 후예

오정희 소설, <동경>

쿠라의 후예  

   

종종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나가라면 나가고 들어오라면 들어오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도 아마 “학교 안 가요?”라는 주인마님의 호통이 떨어져야 책가방을 싸서 집을 나설 것 같습니다. 연구실에 가서 이번 주 신문에 실을 칼럼 초고도 잡고 가볍게 죽도 운동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라는 것이 주인님의 명령입니다. 집사람도 소유권을 주장하고, 집아이들도 그렇고, 돌아가신 부모님들도 살아생전에 그러셨고, 종교를 가진 뒤에는 신과 그의 종복들도 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사제들은 잊을 만하면 꼭 그 ‘소유권 문제’를 환기시킵니다. 제례에 참여할 것을 명령하고, 교무금이나 봉헌금을 낼 것도 권고합니다. 젊어서는 직장의 상사도 이런저런 요구가 많았습니다. 복무 기강 운운하면서 “교수가 공부나 하지 쓸데없이 막대기나 지고 다닌다”고 저를 나무라던 선배 교수분도 계셨습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공부하기도 힘들 텐데 그런 힘든 운동을 즐겁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기특하다”라고 말씀하신 학장님도 계셨습니다. 모두 자기 입장에서 저의 소유권을 주장하셨습니다. 하여튼 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들이 무슨 명령을 내릴 때면 저는 그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노예인 주제에, ‘빌려 사는 인생’ 주제에 소유권을 지닌 이가 사용료(임대료)를 달라고 하는 일에 함부로 토를 달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는 일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그런 물음에 봉착되는 시기가 있습니다. 제게는 두어 번 있었던 듯합니다. 사춘기 때 한 번, 사추기(思秋期) 때 한 번, 그렇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춘기 때는 연애가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이성(異性)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녔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 때 절실한 도움을 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사추기 때는 운동(검도)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30여년, 저의 무례한 칼질(도끼칼)에 심신을 다치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사죄의 뜻을 전합니다. 늙어지니 온통 감사와 후회의 ‘통석의 염’뿐입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오늘은 소설 이야기 한 편 올릴까 합니다.

오정희 소설 「동경(銅鏡)」을 처음 대했을 때, 노년의 삶에 대한 작가의 통찰에 크게 감복한 적이 있습니다. 워낙 조실부모 한 탓에, 제가 ‘노년의 삶’에 대해서 제대로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 소설은 제게 작지만 통렬한 ‘일격’을 선사했습니다. 그야말로 쥐도 새도 모르게 ‘한 칼’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무엇이 쑥 들어오더니 순식간에 사지에서 힘이 빠졌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뒤 시원하다는 느낌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주무시우?”

그는 안간힘을 쓰듯 간신히 눈을 떠 아내를 쳐다보았다.

“밤에 잠들려면 낮에 운동을 해야 해요. 점심 때 반주를 드는 대신 식사를 하고 나서 또 산책을 해보세요.”

아내의 말이 맞을지 몰랐다. 늘어진 위장은 이제는 점심에 곁들인 소주 한 잔으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내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큰 소리로 이어 말했다. 아내의 목소리는 엉뚱한 활기에 차 있었다. 딱히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그치지 않고 들려오는 노래 소리를 지우기 위한 안간힘인 듯도 싶었다. 

“참 이상하죠. 난 요즘 자주 죽은 사람들 생각을 한다우. 꼭 아직도 살아 있는 것처럼 그 사람들 생전의 일이 환히 떠오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정작 우리가 살아온 세월은 기억이 나지 않아요. 아무리 애를 써도 기억나지 않는 희미한 꿈 같아요. 당신은 쉰 살 때, 마흔 살 때를 기억하세요? 난 통 그때의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지 않아요. 난 아무래도 너무 오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뜰 손질도 이제 힘이 들어요. 하지만 하루만 내버려둬도 잡초가 아귀처럼 자라니…… 요즘 같은 계절엔 더 그래요.”

더욱 높아지는 노래 소리에 잠깐 말을 끊었다가 아내는 한층 커다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버려두라고, 예전에 그 애는 그랬었죠. 굳이 꽃과 풀을 가려서 뭘 하느냐고, 어울려 자라는 것이 더 보기 좋다구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이 쉰 살 땐 어땠지요? 마흔 살 때는? 서른 살 때는? 통 기억이 안 나요. 말해 줘요.”

아내는 마치 그에게 최면을 거는 듯 안타깝고 집요하게 캐묻고 미처 그에게서 대답이 나올 것을 두려워하여 재빨리 덧붙였다. 아내의 목소리와 담 너머 아이의 노래 소리는 다투어 연주하는 악기의 불협화음처럼 높고 시끄러웠다.

“스무 살 때는 아름답고 자랑스러웠어요. 대학에 들어가던 해였지요. 어제처럼 또렷이 떠오르는걸요. 늘 발이 가렵다고 했지요.”

그는 더 이상 아내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영로는 늘 발이 가렵다고 했었다. 그의 륙색 위에 얹혀 떠났던 피난길에서 걸린 동상이 종내 낫지를 않아 겨울밤에라도 차가운 콩자루 속에 발을 넣고 자야 시원하다고 했었다.

“기억나세요? 시공관에 발레 구경을 갔던 게 다섯 살 때일 거예요. 그때 그 애는 내 숄을 잃어버렸어요. 그 시절 일본인들도 흔하게 갖지 못했던 진짜 비단으로 만든 거였지요. 구경을 하고 나와 화장실에 들르려고 그 애 어깨에 걸쳐 주었는데 흘러내리는 것도 몰랐었나 봐요. 그 앤 그렇게 멍청한 구석도 있었죠. 모두들 내게 가지색이 신통하게 어울린다고 했어요. 정말 내 평생에 두 번 갖기 어려운 물건이었죠.”

아내는 언제까지 잃어버린 숄 얘기만 할 것인가. 아내의 말소리도 맥을 만드는 손놀림도 점차 빨라졌다. 반죽이 담긴 함지는 비어 가고 마루턱에는 아내가 빚어 놓은 맥이 더 늘어놓을 자리가 없을 만큼 즐비했다.

“겨우 스무 살이었어요. 스무 살에 뭘 안다고. 여드름이나 짤 나이에 세상을 뒤바꾸어 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다니요. 그 애가 죽었어도 우린 여전히 살고 있잖아요.”

영로는 어느 봄날 바람개비처럼 달려나갔다. 채 자라지 않은 머리칼을 성난 듯 불불이 세우고.

늙은이는 반성하지 않는다. 반성을 요구하는 어떤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높고 찢어질 듯 날카로운 노래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뻐꾹, 뻐꾹, 봄이 왔네. 뻐꾹, 뻐꾹, 복사꽃이 떨어지네. [오정희, 「동경」, 『저녁의 게임 외』(동아출판사), 270~272]     


두 노인네는 스무살 때 죽은 아들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4.19 때 죽은 아들입니다. 그 아이가 다섯 살 때 시공관에 갔다가 비단 숄을 잃어버린 이야기를 할머니는 또 합니다. 그 기억이 할머니의 주인이기 때문에 그렇게 반복합니다. 할아버지는 그 이야기가 듣기 싫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가 저를 마구 흔들어댑니다. 저도 자식 잃은 어머니가 들려주던 그런 류의 ‘누군가의 다섯 살 때 이야기’를 꽤나 자주 들었던 탓입니다(어머니는 다섯 살 난 아들을 이북에 두고 피난 내려왔습니다). ‘일본인들도 가지기 어려웠단다’라는 말도 퍽이나 귀에 익은 것이었습니다(어머니는 젊은 시절 한 때를 그렇게 회상하곤 했습니다). 그것뿐이 아닙니다. ‘쉰 살, 마흔 살’ 때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할머니의 말도 남의 말이 아니었습니다. 최근의 저의 정곡에 와 닿았습니다. 저도 요즈음 일어난 일들은 통 기억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근심도 그렇고 기대도 그렇습니다. 그저 물에 물탄 듯 흐릿합니다. 스무 살 때나 그 전의 일들이 오히려 더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근심도 기대도, 그때의 것들만 선명합니다. 그 선명한 것들이 결국은 여태껏 제 주인 행세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내 삶의 주인’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해 올립니다. 김영민 이왕주 교수 공저의 『소설 속의 철학』에 실린 ‘「동경」, 그 흐릿한 거울에 비친 진리’라는 글의 서두 부분입니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다. 어느 날 근심의 신 쿠라가 흙을 가지고 놀다가 이상한 형상 하나를 우연히 만들게 되었다. 쿠라는 그 모양이 너무도 마음에 들어서 이게 움직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였다. 마침 영혼의 신 제우스가 지나가고 있어서 그에게 부탁했다. 그가 숨결을 훅 불어넣으니 살아 움직이는 흙덩이 즉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세 명의 신이 각각 그게 자기 것이라고 우겼다. 먼저 흙의 신 호무스가 내 몸으로 만들어졌으니 내 것이라고 주장했고, 근심의 신 쿠라는 자신이 만들어냈으니 자기 것이라고 핏대를 세웠으며 영혼의 신 제우스는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으니 그 주인은 당연히 자신이라고 우겨댔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심판의 신 사튀른에게 가서 판결을 부탁하였다. 한참 숙고하던 사튀른이 내린 판결은 이러했다.

“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아 죽을 것이다. 그대 가서 몸은 호무스에게서 온 것이므로 호무스가 가지고 영혼은 제우스에게서 온 것이니 제우스가 가져라.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은 만들어낸 신 쿠라의 것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 신화를 해석하는 한 권의 어렵고 복잡한 책을 썼다. 그 유명한 『존재와 시간』이다. 이 책의 결론에 따르면 인간에게 확실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죽음을 향한 존재라는 것과 살아 있는 동안 근심에 허덕여야 한다는 것이다. [101~102 쪽]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는 것과 산다는 건 결국 근심을 안고 가는 일이라는 것, 그 두 가지 이외에는 그 자체로 ‘선명한 것’이 될 수 있는 게 우리 인생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근심의 신 ‘쿠라’가 인간을 만들었다는 설정 자체가 그런 ‘생의 진리’를 천명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제가 지금 가까운 기억에 대해서는 제대로 주인 노릇을 못하고 있다는 것도 결국은 그만큼 현재는 근심거리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맞나?). 그걸 굳이 의미 없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다고 비하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 삶의 주인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시간이 나를 힘들게 한다고 굳이 엄살을 떨 필요도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쿠라의 자손인 이상, 근심 없는 삶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주인 쿠라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독립 시민으로 살아가게 되었다고 여길 수도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어쨌거나 ‘선명한 것’이 많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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