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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y 24. 2019

치유가 되는 인문학

확장, 맥락, 해석

치유가 되는 인문학 

확장맥락해석   

  

소비 사회에서는 필요한 것을 제자에게 가르칠 수 있는 스승이 진정한 스승입니다. 스승은 언제나 제자를 ‘맞춤식’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소비자 중심 사회는 아니었지만 『논어』에 나오는 공자님의 ‘맞춤식 교육’은 아주 유명합니다. 자로(子路)와 염유(冉有)에게, 입구는 같은데 출구는 다른, 각자에게 유용한 가르침을 베푼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공부(가르치고 배우는 일)가 곧 치유(治癒)가 되는 인문학의 요체를 잘 나타내는 고사(故事)라 할 것입니다.   

  

...자로가 “(옳은 것을) 들으면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부형(父兄)이 계시니, 어찌 들으면 실행할 수 있겠는가?”하고 대답하셨다. 염유가 “(옳은 것을) 들으면 곧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공자께서 “들으면 실행하여야 한다.”하고 대답하셨다.

공서화(公西華)가 물었다. “유(由, 자로)가 ‘들으면 곧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선생께서 ‘부형이 계시다’ 하셨고, 구(求, 염유)가 ‘들으면 실행하여야 합니까?’하고 묻자 선생께서 ‘들으면 실행하여야 한다.’고 대답하시니, 저는 의혹되어 감히 묻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구(求)는 (평소에 늘) 물러남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요, 유(由)는 일반인보다 나음으로 (지나칠까봐) 물러가게 한 것이다.” (子路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如之何其聞斯行之 冉有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公西華曰 由也問聞斯行諸 子曰 有父兄在 求也問聞斯行諸 子曰 聞斯行之 赤也惑 敢問 子曰 求也退 故進之 由也兼人 故退之) [『논어』 「선진(先進)」]     


성격이 급하고 늘 의로움에 굶주려 있는 제자에게는 “‘부형(父兄)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듣고 행하라.”고 가르치고 실행력이 떨어지는 제자에게는 “듣는 즉시 행하라.”라고 가르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제자들의 부족함을 메꾸어줍니다. 인문학의 요람이었던 공자 학단이 개개인의 자질과 특성에 다른 맞춤식 교육을 행하던 곳임을 알게 해줍니다.


요즘 들어 ‘힐링(healing)’이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인문학과 관련해서도 자주 사용되는 말입니다. 현대인들이 인문학을 통해서 치유받기를 원한다는 말로도 들립니다. 가장 오래된 인문학적 ‘힐링(healing)’은 아마 ‘이야기 들려주기’일 것입니다. 『천일야화(千一夜話)』의 세헤라자드는 그런 면에서 기록에 남은 최초의 인문학 치유 전문가(상담의(相談醫))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여인으로부터 받은 배신의 상처로 인해서 일종의 여혐 대인관계 기피증(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는 ‘왕의 복수’를 중단 없는 ‘이야기 들려주기’로 중단시킵니다. 그의 망가진 ‘이야기로 된 자기 동일성’을 수많은 ‘재미있고 설득력 있는 이야기’로 다시 원상회복 시킵니다. ‘복수의 일념’을 ‘사랑과 관용의 이해심’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이야기의 힘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스스로의 삶을 ‘재미있고 납득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합니다. 그러므로, 본디 이야기를 만들고(쓰고), 이야기를 듣는(읽는) 행위 자체가 ‘치유의 목적과 수행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겁니다. 그 이외의 목적은 사실 부수적인 것이고요. 그렇게 보면 모든페이스북에서의 글쓰기도 언필칭, 『천일야화(千一夜話)』의 21세기 버전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상담, 치유가 되는 읽기(쓰기)에서 간혹 간과되는 것이 주체의 ‘통합에 대한 의지’입니다. 왕이 세헤라자드에게 “하루라도 재미진 이야기를 거른다면 너를 죽이겠다.”라고 말한 것은 “목숨을 걸고 나를 살려내라.”는 요구입니다. 상대에게 자기가 가진 ‘절실함’을 공유할 것을 요구한 것입니다. 그만큼 분열된 자기에 대한 재통합을 왕은 강렬하게 원했던 것입니다. 세헤라자드는 그런 능동적이고 적극적이 ‘해석의 욕망’을 가진, 행복한 독자를 만난 ‘행복한 작가’였습니다. 그러니 더 재미진 이야기가 쏟아져 나올 수가 있었을 겁니다. 본디 귀명창이 소리 명창을 만들어내는 법이니까요.      

일반적으로 동화를 읽어내는 방법으로 많이 사용되는 것이 <확장 – 맥락 - 해석>의 독법입니다.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을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행복한 독자’가 되는 ‘널리 알려진 비법’이기도 합니다. 

    

확장 – 맥락 - 해석 : 동화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때 요구되는 사고의 법칙성에 대해 살펴보자. 동화의 이야기 속에 생명수가 필요한 늙은 왕이 있다든지 말 안 듣는 딸을 가진 모친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우리는 이것을 확장(amplify)하여야 한다. 확장이란 우리가 대비할 수 있는 모든 모티프를 찾아보는 것을 말한다. 러시아 동화 중에 ‘처녀 황제(The Virgin Czar)’라는 동화가 있다. 동화는 처음에 늙은 황제와 세 아들을 등장시킨다. 가장 어린 아들이 주인공인데 바보이다. 이 때 황제는 닳아빠진 주기능(主機能)이고 셋째 아들은 쇄신시키는 기능(현재의 열등기능)이다. 확장은 관련지을 수 있는 것 모두를 모아 확대시키는 것을 뜻한다. 그리하여 보편적인 어떤 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동화 읽기의 다음 단계는 맥락(context)을 잡는 것이다. 동화에 쥐가 등장한다. 그 쥐를 확장해보자. 우리가 보는 쥐는 사자(死者)의 영혼, 악마의 동물, 아폴로의 동물, 페스트를 옮기는 동물 등이다. 쥐가 죽은 시체에서 나온다거나 시체가 쥐의 모양을 하기 때문에 쥐는 사자의 영혼이다. 우리는 쥐를 동화 속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쥐를 확장하면 어떤 쥐는 동화 속에 나온 쥐와 일치하고 어떤 쥐는 일치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동화에 나온 쥐를 먼저 선택하고 나머지는 주머니에(괄호 속에) 넣거나 각주를 달아놓는 것이 현명하다. 왜냐하면 동화 후반에 쥐의 다른 면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동화의 서두에는 긍정적인 쥐뿐이고 마술부리는 쥐 (witch-mouse)는 없고 후반에 가서야 마녀가 나타난다고 하자. 그 때 우리는 이 두 상(像) 사이에 모종의 연결이 있다는 것을 안다. 쥐는 마녀이기도 하다는 것을 미리 알아둔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는 해석을 한다. 해석은 확장한 동화를 심리학적 언어로 바꾸는 것이다. “악모(惡母)는 주인공에게 패하였다.”는 말 대신 “무의식의 충동, 무(無)활동을 지향하는 낮은 수준의 심리적 에너지가 높은 수준의 의식 활동에 진 것이다.”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언제나 엄격한 심리학적 언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동화 해석이 언제나 상대적인 것이며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심리학적 해석은 우리가 동화를 이야기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는 언제나 원형상(原型像)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것은 그것에서 벗어나 건강해지기를 갈망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신화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X를 Y로 설명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에게 합당한 것 같기 때문이다. 장차, 이것이 부당한 사례가 될 날이 올 지도 모른다. 그 때는 Z가 설명으로 필요하게 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직 심리학적 언어로 신화나 동화가 무엇을 나타내는가를 말할 뿐이다. [브루노 베텔하임, 『옛이야기의 매력』 중에서]     


과거의 문제를 두고 서로 상대방을 흠집 내기에 혈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본디 인간사회가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이념이 다르고 처지가 다르면 그렇게들 싸웁니다. 서로 악의적으로 상대방의 과거와 현재 언행을 ‘확장’합니다. 힐링이 아니라 새로운 상처를 내기에 급급한 ‘악성 이야기 생산’이 판을 칩니다. 그런 ‘확장’의 표적이 되면 누구나 곤욕을 치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다음 단계의 <맥락 - 해석>이 가관(可觀)이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나쁜 아버지가 되고, 부정하게 권력을 남용한 사람이 되고, 사상이 불온한 자가 됩니다. 그런 불순한 이야기들이 횡행하면서 여기저기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흠집내는 바보짓도 서슴없이 자행됩니다. 모두 옛이야기 속의 악모(惡母)나 할 짓입니다.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거나 듣고자 하는 것은 『천일야화』에서 보는 것처럼 ‘왕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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