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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Sep 08. 2019

통도사 가는 길

공간 조정

통도사 가는 길

하루 종일 공간 조정을 했습니다. 이사 오고 나서 어중간하게 방을 나누어 쓰고 있었는데, 원래대로, 신혼 때부터 줄곧 해오던 대로, 원위치를 했습니다. 안방을 서재로 쓰고 그 안에는 모든 것을 일습(一襲), 저 혼자 다 갖추어놓고 사는 스타일입니다. 무슨 꿍꿍이속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한 번 아프고 나니 마지막으로(?) 하던 대로 정리라도 해놓고 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간이 내면을 구성한다는데 그렇게라도 해서 텅 빈 내면을 좀 채워보자는 욕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짐을 옮기고 이것저것 꺼내고 넣고 하는 틈을 타서 ‘버리는 아내’가 본색을 막 드러내고 있네요. 저의 누추한 과거들을 마구 버리고 있습니다. 못본 척합니다. 조성기의 <통도사 가는 길>이나 읽습니다.

보통은 문(門)을 나서야 길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반대도 있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 새 길이 열릴 때도 있습니다. 문밖의 삶이 있으면 문안의 삶도 있을 겁니다. 어떤 경우라도, 문이 닫혀 있으면 우리는 새 길로 나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길 위의 삶’이 있으려면 먼저 ‘문 안의 삶’이나 ‘문 밖의 삶’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조성기 소설 「통도사 가는 길」을 보면 <문과 길>에 대한 작가 나름의 비유적 사색이 볼만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나는 종종 이런 꿈을 꾸기도 하였지요. 나는 힘들여 언덕을 올라갑니다. 그 언덕만 넘으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언덕빼기로 올라와 보니 엄청나게 큰 문이 가로막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 문은 거무튀튀한 굵은 나무들로 짜맞추어진 것으로 차라리 거대한 벽이라고 할 만합니다. 사실 벽이라고 해도 되는 것이, 어디서 어디까지가 문짝에 해당하는지 도통 가늠을 할 길이 없거든요. 비록 문짝 부분을 확인했다 하더라도 워낙 커서 온몸을 다 사용해 밀어도 끄떡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 문, 아니 벽 앞에서 난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 문 앞에 서 있으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져 오는데, 그것은 그 문 자체가 하나의 세계요 길처럼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문은 꿈속에서 종종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인 하동 근방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했고,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세워져 있는 듯도 했고, 남한과 북한의 경계인 휴전선 일대에 서 있는 것 같기도 하였습니다. 하여튼 내 의식 속에서 부각되는 갈등과 관련하여 그 문이 서 있는 경계가 그때그때 정해지는 듯싶었습니다.
이번에도 사실 여행길에 오르기 전에 그 문을 꿈속에서 보았습니다. 그 문은 그녀가 누워 있는 방과 내가 누워 있는 방의 경계에 세워져 있는 듯이 여겨졌습니다. 꿈속에서는, 집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집들을 다 삼킨 듯한 거대한 문만이 서 있었습니다.
그 문이 꿈속에서 나타날 적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까마득히 높은 문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러면 말입니다. 어김없이 문 꼭대기에 ‘통도사’라는 세 글자가 하얀색으로 적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통도, 통-도. 꿈 전체가 ‘통도’라는 기이한 울림으로 가득 메워지는 것을 느끼며 나는 전율하게 마련이지요.
그런 꿈을 여러 번 꾸었으면서도 나는 통도사를 선뜻 찾아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런 꿈을 꾸고 있기 때문에 찾아가는 것을 꺼렸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런 꿈을 종종 꾸는 것인가. 나 자신을 분석해 보아도 그 이유를 잘 헤아릴 수가 없었습니다. 어릴 적 통도사 이름을 들으면서 그 ‘통도’라는 울림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삶에 있어 길이 자주자주 막히는 것을 경험하면서 길을 뚫어 나가고 싶은 무의식적인 소원이 통도라는 말과 관련된 것이 아닌가. 대강 이 정도밖에 생각해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와 나의 사이에 막힌 길을 뚫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여겨져 몹시 낙담한 가운데 있을 때 나는 또 그 꿈을 꾸었고, 꿈에 이끌리듯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통도사를 이제야 찾아 나선 것이었습니다. 임금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애태우는 굴원의 시집을 들고. [조성기, 「통도사 가는 길」]


소설 속 화자에게는 통도사행이 자신 앞을 늘 가로막고 서 있는 문, 그 막힌 길을 뚫는 일생일대의 행사였습니다. 통도(通途), 그에게는 그것만큼 절실한 화두가 없었던 듯합니다. 문을 열고 길을 걸어야 하는 그는 그러나 그 앞에서 늘 좌절하고 맙니다. ‘그 문은 거무튀튀한 굵은 나무들로 짜맞추어진 것으로 차라리 거대한 벽이라고 할 만’했기 때문입니다. 연애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은 그에게 좀처럼 문을 열지 않습니다. 그 심정(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을 ‘임금에게로 나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애태’웠다는 굴원의 그것에 비견합니다. 듣기로 초사(楚辭)로 유명한 굴원은 끝내 길을 찾지 못하고 멱라(汨羅: 汨水․羅水의 합류점)의 물고기 밥을 자청하였다고 하는데 그런 절박감 속에서 그는 통도사를 찾습니다(왜 통도사인지는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고민을 완화시켜 줄 방도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통도(通道)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그가 찾은 통도사는 막상 통도(通途)도 통도(通道)도 아닌 통도(通度)였습니다. 만법에 통하라, 그래서 중생 구제에 나서라,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구원받아야 하는 불쌍한 존재다, 보이는 것, 표상적인 것에 집착하지 말라, 기타 등등, 그는 한꺼번에 밀려오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전율합니다. 여기서도 ‘되로 주고 말로 받’습니다. 길 안내만 받고자 했는데(통행권?) 어디든 길을 낼 수 있는 권한을 얻어 갑니다(도로 개설권?). 길이 본디 문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세상의 모든 문에 통하는 열쇠를 깎을 수 있는 듬직한 쇠꾸러미 하나를 받아 갑니다(돈오점수?).
그런 것 같습니다. 모든 길은 내 안에서 시작되어 내 안으로 돌아옵니다. 문은 곧 내 자신입니다. 문이 열리지 않는다는 건 결국 내가 열리지 않는다는 겁니다. ‘통도(通度)’가 큰절 이름이 되고 있는 게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오래 전 작성, 오늘 아침 일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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