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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Sep 19. 2019

서울을 사수하라

입신양명과 안빈낙도

서울을 사수하라    

 

옛 선비들의 사는 방식에도 두 가지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흔히 하는 말로 입신양명(立身揚名), 안빈낙도(安貧樂道)가 그것입니다. 학문의 목적을 부귀공명을 얻는 것에 둘 것인가, 아니면 자기 수양의 수단으로 여길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조선의 일류 선비 다산 정약용을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됩니다. 자신의 아들들에게는 철저하게 전자를, 유배지에서 가르치던 제자들에게는 강력하게 후자를 강조합니다. 비유하자면, 아들들에게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 쥐’로 살 것을, 제자들에게는 쓸데없이 욕심 내지 말고 ‘시골 쥐’로 살 것을 권합니다. 아들들에게는 ‘끝까지 서울을 사수하라’라고 당부합니다. 살기가 어려워져도 서울 십리 밖으로는 절대 나가 살지 말라고 합니다. 폐족이 되어 세상에 절망하고 아예 시골로 은둔하면 시골살이가 몸에 배어 더 이상은 출사(出仕)의 기회를 얻어내지 못할 것이라고 경계합니다. ‘시골 것’들은 본시 그늘진 곳에 살면서 비루하고 몽매하고 원망하는 마음만 가득해서 그들과 어울리다보면 그저 남을 모략하고 시기하는 데 몰두하게 되어 제 자신의 학덕을 쌓는데 결정적으로 소홀하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제대로 된 선비로 살려면 일류들이 모여 사는 서울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귀양살이 중에 얻은 시골 제자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일관되게 지족안분(知足安分)의 ‘시골 쥐’ 살이를 강조합니다. 한거(閑居)에서 거둔 제자들이어서 그런지(실제로 그런 삶의 장점을 몸으로 느껴서일지도 모릅니다) 벼슬보다는 사람(군자)됨에 더 비중을 두는 삶을 권합니다. 안빈낙도(安貧樂道) 할 것을, 도학(道學)에 정진할 것을, 두루 그 요목을 밝혀 권합니다.   

  

....학문은 우리들이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옛사람은 말하기를 학문이 제 일등의 의리(義理)라고 하였으나 나는 이 말에 병통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땅히 유일무이(唯一無二)한 의리라고 바로잡아야 한다. 대개 사물마다 법칙이 있는 것인데, 사람들이 배움에 뜻을 두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 법칙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금수(禽獸)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첫째로 선을 막고 도를 어그러지게 하는 화두가 있으니, “가도학(假道學)은 진사대부(眞士大夫)만 못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요즈음의 사대부는 곧 옛날의 군자이다. 도학이 아니면 군자라는 이름을 얻지 못하며 사대부라는 이름도 얻지 못한다. 그런데 어찌 도학과 상대하여 말을 할 것인가.

위학(僞學)이라는 명칭을 피하였다면 정주(程朱)(송나라 대학자인 정자와 주자)도 그 도를 세우지 못했을 것이고, 명예를 구한다는 비방을 두려워하였다면 백이(伯夷)나 숙제(叔齊)가 그 절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며, 곧다는 명예를 얻으려 한다는 혐의를 멀리했다면 급암(汲黤)과 주운(朱雲)(한나라의 대표적인 직신(直臣)들이다)도 간쟁(諫諍)하는 데에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심지어 부모에게 효도하고 벼슬살이할 때 청렴하게 지낸 것을 경박한 무리들이 모두 명예를 구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하니, 이러한 무리들을 위하여 악(惡)을 따라야 할 것인가. [중략]

과거학(科擧學)은 이단(異端) 가운데서도 폐해가 제일 혹독한 것이다. 양자(楊子)와 묵자(墨子)는 이미 낡았고 불씨(佛氏)와 노자(老子)는 크게 우원(迂遠)하다. 그러나 과거학은 가만히 그 해독을 생각해보면, 비록 홍수와 맹수라도 비유할 바가 못 된다. 과거학을 하는 사람들은 시부(詩賦)가 수천 수(首)에 이르고 의의(疑義)가 5천 수에 이르는 자도 있는데, 이 공(功)을 학문에다가 능히 옮길 수 있다면 주자(朱子)가 될 것이다. [중략]

시골에 사는 사람이 그 자제가 혹 총명하고 민첩한 지혜를 가져서 남보다 몇 등급 뛰어난 말을 하여 사람들을 경탄시키는 자가 있으면, 곧 그에게 과거시험을 준비하게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자는 일찌감치 학문의 길로 돌아가게 하거나 아니면 농사짓는 일에 돌아가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비록 총명하고 지혜가 있는 자라도 나이가 서른이 넘도록 이룬 것이 없으면, 곧 마땅히 학문에 전념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아마 낭패하는 데에는 이르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된다”는 말은 참으로 큰 용기가 아니면 그 교훈을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사오십이 된 사람은 도리어 할 수 있다. 혹 고요한 밤에 잠이 없이 초연히 도를 향하는 마음이 생겨나거든 이러한 기회에 더 확충하여 용감히 나아가고 곧게 전진할 것이지 노쇠하다고 주저앉는 것은 옳지 않다. ([정수칠에게 당부한다](정수칠의 자는 내칙(內則), 호는 반산(盤山)으로 장흥(長興)에 살았으며 다산 초당 18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학문이 높았다)) [정약용(박석무 편역),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중에서]    

 

위의 글만을 본다면, 폐족(廢族)이 되어 낙심천만인 두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서울을 사수하라’는 당부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을 것 같습니다. 전혀 다른 또 하나의 다산을 보는 듯합니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두 개의 선비관을 억지로라도 하나로 묶어본다면 아마 이렇게 될 것입니다. <선비로 살려면 최대한 서울을 사수하기에 힘쓸 것이다. 인간답게 살려면 시골의 비루함에 물들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여의치 않을 시에는 독하게 도학에 정진해라. 그렇게라도 해야 덜 억울하다. 선비로서의 삶은 그렇게 양가적인 것이다.> 자나깨나 세속을 한 시도 떠나지 못하는 제게는 그런 산술적인 합산(合算)밖에는 다른 계산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평생 ‘시골 쥐’로 살아왔으니 시골에서 선비로 산다는 게 그리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시골에서 무탈하게 살려면 거의 독기(毒氣)에 가까운 나름대로의 ‘도학(道學)’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다산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시골 쥐’라면 누구나 자득해 마지않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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