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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12.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감동적인 글쓰기

10. 역지사지(易地思之), 감동적인 글쓰기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라    

 

이제 마지막 장에 이르렀다. 글쓰기 인문학 10강 중 마지막 강의는 ‘감동적인 글쓰기’에 관한 것이다. 글은 왜 쓰는가? 결국은 감동을 얻기 위해서다. 이 책의 기본 편, ‘서사의 효과’에서 “자기 체험에서 출발하라”라고 강조했다. 자기가 가장 잘 아는 것을 써야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남의 이야기를 옮겨 쓰는 것은 결코 남을 울릴 수 없다고도 말했다. 자기 이야기를 발굴하라는 권고였다. 그리고 또 “자기 상처와 대면(對面)하라”라고도 말했다. 자기 상처의 진면목을 모르는 자는 남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가장 쓰기 싫은 이야기를 써서 작가가 되었다"라는 이야기도 했다. 자기 상처에 대면하는 일은 일견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같지만 사실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누구도 자신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자는 없다. 그래서 종내에는 자기기만, 자기 연민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십상인 것이 상처와의 대면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특히 식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모두 자신의 상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상처와의 대면이 눈만 뜨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래서 그들은 실패한다. 우리가 시인과 소설가를 존중하는 것은 그들이 식자(識者)가 아니라 현자(賢者)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시인, 작가는 그런 '누구나 할 수 있는 상처와의 대면'을 '누구나 할 수 없는 상처와의 대면'으로 바꾸는 자다. 그들은 진정한 ‘발굴자’다. 그렇게 땅 속 깊은 곳에서 발굴된 원광석 같은 이야기들만이 타자의 상처에 개입할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다.

상처 다음에는 무엇인가? 두 말할 것도 없이 사랑이다.

모든 읽기와 쓰기는 길 없는 길을 찾아 떠나는, 고독하고 힘든, 혼자만의 도보여행이다. 일단 여장을 꾸려 신발을 신고 길을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혈혈단신, 혼자서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지도도 없이, 표지판도 없는 길을 홀로 걷는 자는 ‘몸속의 지도’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내 몸속의 지도는 때를 기다려 몸 밖으로 나온다. 그때까지는 힘들어도 걷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걷겠다는 의지이다. 그 의지가 곧 지도라는 것도 끝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전부’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된다. 그것을 알면 견물생심, 사랑도 비로소 찾아온다(이때의 ‘견물생심’은 물론 반어적 표현이다. 자기를 위한 욕심을 내는 것이 아니라 타자를 위한 욕심을 내라는 뜻으로 쓰인다). ‘사랑’은 모든 표현 인문학의 알파요 오메가다.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없다. 문학이든, 역사든, 철학이든, 현재 남아서 후세의 귀감이 되고 있는 모든 기록들은 하나같이 ‘사랑’ 위에 써진 것들이다. 그것을 알면 글 인생을 살아내는 자가 되는 것이고 그것을 모르면 평생 학자연해도 글 인생이 무엇인지 한 치도 모르고 살다 죽는 것이다.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가르침을 사랑으로 읽어내는 ‘글쓰기 연금술’의 한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읽기 텍스트는 시라카와 시즈카(장원철 역)의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리라(孔子傳)』로 한다. 먼저 공자의 가르침을 살펴보자.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 정사를 맡겼을 때 잘 처리하지 못하고,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 혼자서 응대하지 못한다면, 비록 많이 암송한들 무엇에다 쓰겠느냐?”고 하셨다. (子曰 誦詩三百 授之以政 不達 使於四方 不能專對 雖多 亦奚以爲)[『논어』 「자로」]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얘들아! 어찌하여 시를 배우지 않느냐. 시는 순수한 감정을 흥기 시키며, 사물을 이해할 수 있게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며, 원망하되 성내지 않게 하며, 가까이로는 어버이를 섬기고 멀리 임금을 섬기며,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고 하셨다. (子曰 小子 何莫學夫詩 詩可以興 可以觀 可以群 可以怨 邇之事父 遠之事君 多識於鳥獸草木之名)  [『논어』 「양화」]     


시라카와는 “시를 배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정사에 숙달되는 길이었다”라고 말한다(131쪽). 공자 생존 당시에는 내치(內治)는 물론이고 외교에도 시 공부가 필수적이었는데, 그 까닭은 그 속에 담긴 ‘교양적 요소’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겉으로 아무리 많은 시를 암송한다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교양적 요소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제대로 된 시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고 공자가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렇게 이해하고 설명하는 것은 아무래도  석연찮은 느낌을 준다. 공자가 말한 어순(語順)을 보면 꼭 그렇게 해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라는 말에 우선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떤 까닭에서인지는 몰라도, 이미 ‘시 300편을 암송한’ 사실이 먼저 ‘전제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런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일(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공자는 말한다. 정사도 잘 처리하고 다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응대도 잘해야 한다. 그러니까 “시를 배우는 것은 무엇보다도 우선 정사에 숙달되는 길이었다”라고 이해한 것은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라는 전제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된다,. “시 300편을 다 암송하더라도”가 제일 앞에 놓여있다는 것은 그 행위의 목적이 이미 별도로 있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인격의 수양을 위해’와 같은 암묵적인 약속이나 목적이 그 말 앞에 당연히 있었다는 것이다. 

공자의 가르침을 어순에 숨겨진 의미를 고려해서 해석하면 다음과 같다. “숙성된 인품을 지니기 위한 필수적 교양으로 ‘시 공부’가 특히 중요하지만, 설혹 그것에 열중해서 ‘300편 암송의 성과’를 내는 경지에 도달한다 하더라도 그 공부의 결과를 실천적 차원(정사나 외교 등)에서 제대로 구현해내지 못하면 그런 노력은 도로(徒勞)에 불과하다”가 된다. 당연히 그렇게 읽어야 한다. 


공자의 두 번째 가르침도 마찬가지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에서도 재해석이 필요하다. 그 부분에 대한 해석을 “교과목으로서의 ‘시’는 우선 수많은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알게 하는 박물학의 교본이었다”(135쪽)라고 시라카와는 말한다. 그야말로 단어들의 외시적 의미로만 읽어낸다. 정자(程子)가 써놓은 논어 집주에 의존한 수동적인 해석이다. ‘글쓰기 연금술’의 입장에서 보면 그야말로 ‘초등학생 수준’의 문식(文識)에 해당하는 설명이다. ‘시’가 마치 초등학교 물상, 생물 교과서인 것처럼 매도된다. 공자와 같은 성인이 달리 할 말이 없어서 “공부를 하려면 아주 박식해야 하니까 동식물 이름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다”라는 말까지 해야 했다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된다’는 것은 그런 뜻이 아니다. 그 말은 앞 구절들과의 긴밀한 연관 속에서, 그야말로 상호텍스트성 위에서, ‘시적’인 표현으로(언어의 환유적 작용으로), 사용된 것이다. 이를테면 윤동주 시인의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말과 상통하는 차원에서의, 맥락적 이해를 요구하고 있는 시적 표현이다. 사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주변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사랑이 전제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 이치를, 그런 식으로, 시적으로, 말한 것이다. 특별히 그 부분에 와서 그렇게 표현한 것은, 실로 그 부분이 시의 가장 높은 부분, 시의 정수리라 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일찍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시적으로, 시가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라고 말한 것이다. 공자는 인류가 지닌 모든 것 중에서 시만큼 사랑을 알게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앞에서 (시공부를 해서) 그것(보편적 사랑)을 아는 이가 정치나 외교를 못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한 것도 바로 그 까닭에서였다.

 

어쨌든 공자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말을 했던 사람이었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도 그 맥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공자의 가르침을 맥락적으로 이해하려면 무엇보다도 공자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공자는 일관되게 인(仁, 보편적 사랑)과 서(恕, 己所不欲 勿施於人)를 강조했다. 번지가 인에 대해 물었을 때 공자는 “애인愛人”이라고 답했다(『논어』 「안연」). 결국은 사랑이었던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라는 말을 통해 공자는 생태의식으로 표출되는 사랑(박애)을 강조한 것이다. 이때의 ‘생태의식’은 환유적으로 전 우주적으로 확장된다. 그 뜻 이외에는 다른 그 무엇도 없었다고 봐야 한다. ‘새와 짐승과 초목의 이름을 많이 알게 한다’에서 다른 것을 읽는 것은 오직 오독일 뿐이다. 그 중한 가르침을 그저 ‘박물학 교본’ 정도로 읽어낸다는 것은 너무 황당한 처사다. 굳이 반어적으로 표현하자면, ‘견물생심’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독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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