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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선규 Mar 13. 2019

글쓰기 인문학 10강

글쓰기, 어떻게 시작할까?

글쓰기어떻게 시작할까 

    

잠깐 화제를 돌려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지 간단하게 살펴보고 다음으로 넘어가자. 첫째는 어법에 맞게 문장을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뜻을 적을 수 있는 최소한의 어휘가 있어야 하고 문장 안에서의 주술관계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학교에서 받은 강독 교육과 문법 교육이 그 기초가 된다. 물론 그 정도로는 부족할 때가 많다. 그때는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책들을 좀 읽어서 보충하면 된다. 둘째는 무조건 글을 써 보는 것이다. 젊어서 겪은 일이다. 남들이 모두 골프를 배운다고 하기에 나도 동네 골프 용품점에 한 번 들른 적이 있었다. 골프채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그것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 나를 보고 주인이 물었다. “어떤 채를 원하세요?” 그래서 답했다. “골프를 한 번 배워 보고 싶어서요.” 그랬더니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장갑을 고르셔야죠. 골프채는 나중에 생각하시구요.” 말인즉슨, 골프를 배우고 싶다면 일단 장갑을 하나 사서 끼고 골프연습장에 가서 레슨부터 받으라는 거였다. 골프채나 옷 같은 것은 그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거였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쓰기 인생을 가지고 싶으면 먼저 글부터 써 보는 일이 중요하다. 머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손으로 글쓰기의 어려움을 느껴보는 게 첫째로 할 일이다. 그러다 보면 하나하나씩 터득이 된다. 


저자 서문에서 말한 바 있지만, 그 과정에서 글쓰기 공부책을 잘 고르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저자 스스로 “내가 어디까지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을 가지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리고 특정 분야에 대해서만 글을 잘 쓰는 저자들도 많다. 그런 저자들의 책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 또 너무 높은 수준의 글쓰기를 교본으로 삼는 것도 곤란하다. 항간의 속설에 “김훈을 따라 하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칼의 노래』의 저자인 소설가 김훈은 흡인력이 있는 자기만의 글쓰기로 유명한 분이다. 묘사와 설명이 한 치의 간극도 없이 이어지고, 특히 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사유의 폭과 깊이가 대단해서 웬만한 관찰력과 상상력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그 문체를 모방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그래서 많은 소설 습작생들이 그의 글쓰기를 모방하려고 애쓰다가 좌절하는 경우가 많다. 제대로 신내림 굿을 받은 무당이 되지 못하고 그저 선무당이 되어서 사람을(자기를) 잡는다. 

거듭 말하지만, 자신의 능력을 알고 그 안에서 자기에게 맞는 글을 써 보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아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글쓰기(서법)로 아들과 겨루지 않고, 스스로 ‘어디까지인 줄 분명히 알았던’ 자신의 떡 썰기로 아들을 가르친 것은 지금도 우리에게 큰 가르침으로 남아 있다. 한석봉은 어머니의 ‘가지런히 썰린 떡’에서 하나의 목표를 본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자기가 달성한 목표를 시범함으로써 아들이 목표를 세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아들 역시 그런 어머니의 뜻을 분명하게 알고 자신의 목표를 재설정한다. 그런 것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늘 취하는 자세다. 

참고로 몇 가지 의학적인 개념을 소개한다. 실어증과 과잉언어증에 대한 것인데 자신의 글쓰기 능력을 측정하는데 다소간 도움을 줄 것이다. 

     

1. 문법 기능 장애(브로카 실어증) : 브로카 실어증은 환유법 모드의 상실이나 훼손에서 오는 문법적 기능의 장애이다. 의미는 충분히 이해되어 있으나 그것을 말이나 글로 연속적으로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브로카 실어증을 가진 사람들은 의미론보다는 구문론, 의미보다는 문법에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이해보다는 말하기 쪽의 표현에 장애가 있다는 뜻이다). 이들이 더듬거리며 말하는 문장은 주요한 단어들만 나열하는 전보식 문장이다. 다음은 브로카 실어증 환자가 신데렐라에 대해 얘기한 내용이다.

환  자 : ....가난하고......마루를 닦다가....깨끗하게.....가난하고....언니와 엄마......무도회, 무도회에서 왕자......신발......

검사자 : 그래서 끝에는 어떻게 됐죠?

환  자 : 결혼해.

단어의 순서가 많이 틀려 있다. 아이가 단어를 배워가는 것과 달리 브로카 실어증 환자는 단어를 잃어버린다. 증상이 가벼울 경우엔 복잡한 구문이나 잘 쓰이지 않는 단어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 그칠 뿐이지만 심할 경우에는 간단한 단어조차 말할 수 없다. 아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단어 중 하나인 “아니”라는 말도 많이 쓰는데, 먹기 싫은 음식을 거부할 때뿐 아니라 단지 말에 양념을 넣듯이 사용한다. 브로카 환자는 그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고통스러운 듯 “아니”라는 말을 반복한다. 전문적인 문필가를 제외한다면, 글쓰기 과정에서 브로카 실어증과 유사한 경험을 다소간 겪는다고 해서 크게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 의미 형성 장애(베르니케 실어증) : 베르니케 실어증은 은유법 모드의 상실이나 훼손에서 오는 이해 기능의 장애이다. 의미를 형성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어 무의미한 말의 반복을 일삼는다. 이른바 ‘정치인의 말’처럼 동어반복을 일삼으면서도 그것을 본인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한다. 브로카 영역이 말하는 능력과 관련이 있다면, 베르니케 영역은 말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학자인 로만 야콥슨은 실어증의 본질은 비유적 언어와 큰 관련이 있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에 따르면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는 서로 다른 사물을 비교하는 방법인 은유에 실패하여 한 단어를 다른 단어로 부정확하게 대치시킨다고 한다. 베르니케 실어증 환자들은 사물을 정의하거나 유사한 단어를 명명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는다. 이들은 ‘선박’을 ‘배’라고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고 이에 딸린 부속품들의 이름을 부르거나 아니면 배와 관련된 원인과 결과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말하자면 배를 항해라고 하거나 왕을 왕관이라고 말해버리는 등 이들은 은유법 대신 또 다른 비유 방식인 환유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3. 과잉 언어 장애(게슈빈트 증후군) : 게슈빈트 증후군은 글쓰기 중독증(하이퍼그라피아 hypergraphia)에서 흔히 발견되는 신경의학적 장애이다. 이는 글쓰기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강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읽기와 쓰기는 매우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어둠 속에서 글을 쓰고자 시도해 봤던 사람이라면, 자신이 썼던 문장을 다시 읽어보지 않고는 다음 문장을 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것이다. 일찍부터 글을 배운 유아들에게서 종종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 이른바 과잉언어증이다. 과잉언어증은 자폐증을 가진 어린이나 뇌 손상을 입은 아이가 높은 수준의 읽기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 아이들은 별도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 글 읽는 법을 터득한다. 과잉언어증을 가진 아이는 글을 읽지 않으면 불안해지므로 단어가 보이면 계속 읽는다.  

    

브로카 실어증이 문법 관계에 장애가 생긴 것이고 베르니케 실어증이 유추관계에 장애가 생긴 것이라는 설명을 보면서 우리가 글을 쓸 때 느끼는 어려움이 사실은 신경의학적인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만약, 글쓰기 공부를 통해서 그런 장애들이 극복될 수 있다면 글쓰기 능력은 단순히 ‘기술’의 차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능’의 차원까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정신활동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게슈빈트 증후군의 한 요소인 하이퍼그라피아는 글쓰기 재능이 그 극단에 있어서는 신경의학적 이상 상태에 닿아있을 수도 있다는 추론을 가능케 한다. 많은 뛰어난 작가들이 하이퍼그라피아의 삶을 살았다는 것이 여기저기서 보고되고 있다. 다만, 무의식이 의식으로 침입하는 통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식 쪽에서도 무의식을 염탐할 수 있는 비밀의 문이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믿는다. 무의식에게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면 환자이겠지만, 가끔씩은 의식이 무의식을 엿볼 수 있는 자기만의 비밀스런 문을 가지고 있는 자라면 그는 작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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