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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림브륄레 Oct 27. 2020

동물원 따위 없어졌으면

동물원이 망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오늘부로 동물원은 더 이상 가지 못한다.


반려견과 함께 살면서부터 이 세상 모든 생물체를 내 강아지 대하듯 보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동물원이 가기 싫어진 게?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들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남자 친구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곳이 동물원임을 알게 되었다. 온종일 고민했다.

"그래 눈 딱 감고 가보자. 가보면 또 다를지 모르잖아?"


하지만 역시나였다. 내 생각보다 더 했다.

들어가자마자 본 호랑이는 그 몸집에 맞지 않게 조그만 유리 안에 갇혀 있었다.


가만히 있던 호랑이가 유리창 앞에 몰려있는 사람들을 보고 다가왔다. 어찌나 크던지 순간 덩치에 압도당했다. 유리창이 있었지만, 이 유리창을 무너뜨리고 나오면 어쩌지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만 연신 내뱉었다.

나와 주변 어른들은 모두 무섭다고 하는데, 조그만 남자아이는 뭐가 좋다고 유리창에 손을 갖다 댔다.

저 호랑이 화난 게 분명했다. 이 지겨운 유리창 생활에 화가 나서 다가온 것임이 분명했다.

아이가 손을 내밀자, 호랑이가 혀를 내밀어 유리창을 핥았다. 아이를 먹이로 인식했는지, 먹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다만 무서운 기운이 맴돌았다..


그렇게 사람들 주변을 몇 번이나 맴돌다가 유리창에 영역 표시를 하고 제 자리로 돌아갔다. 유리창에다 대놓고 소변을 보는데, 우리더러 가라는 말 같았다. 화난 게 분명했다.


호랑이를 보고 난 후에도 여러 맹수들을 봤다. 다들 커다란 몸집에 걸맞지 않은 장소에 있었다.

"얼마나 지루하고 답답할까.. 얼마나 스트레스받을까.."

안타까움이 슬픔으로 번졌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불만스러웠다. 활발하게 뛰어다녀야 할 맹수들이 힘없이 누워만 있었다. 당장 동물원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그런 맹수들을 지나치니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는 아이들도 있었다. 유리창 안이 아닌 울타리 안 넓은 공간을 뛰노는 사슴들은 자유로워 보였다. 호랑이가 들어있는 유리창 안보다 몇 배는 커 보이는 호수 안 수달도 자유로워 보였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런 아이들을 보니 어느새 나도 재밌게 보고 있었다. 신기한 동물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또다시 어딘가에 힘없이 갇혀 있는, 움직임도 없이 무력한 아이들을 보면 다시 슬픔이 차올랐다.


'기계로 똑같이 만들면 안 되나? 아 기계는 한계가 있나.. 사람들이 가짜 같아서 가짜라서 싫어하려나? 그럼 DNA를 복제해서 복제동물만 동물원에 보존하면 안 되나?...? 원래 DNA 주인은 본인이 살던 곳에 살고..... 복제동물로 운영하면 안 되나..?'


어느새 해결책을 고민하는 내가 있었다. 동물원이야 내가 안 가면 그만이고, 안 가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여기 있는 아이들은 평생 여기 갇혀 있을 테니까....


급기야 인간에 대입해보게 되었다. 인간 동물원..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우리가 우리보다 강한, 고등 생물체에게 붙잡혀 동물원에 갇힌다면? 너무 끔찍하다. 얼마나 인간이 동물에게 못할 짓을 하는지 느껴졌다.


그러다가 동물원을 지은 사람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대체 어쩌다가 짓게 된 건지도. 왜 지은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동물원에 대한 동심으로 지으셨나요? 그렇지만 그대는 어른이잖아요. 그 동심이 유지되기 위한 동물들의 피눈물은 안보이시나요.


이런저런 불만을 가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따위 없었다. 나약한 개인. 부끄럽다.

그저 사람들이 안 가서 수요가 줄어들기를 바랄 뿐이다. 동물원이 망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다시는.. 다시는 동물원에 가지 못 할 것 같다.

동물원 따위 없어졌으면.

동물원이 망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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