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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by 이선하

내게 살과 피와 이름과 잠시지만 사랑을 줬고 또한 상실과 부채감을 알게 해 준, 여러모로 최초의 장본인. 아비라고도 부르기도 싫은 생부가 어느 날 갑자기 잠적한 지 근 20년이 되어간다. 그 말인즉슨, 이제 세 달 뒤면 그의 나이도 어느덧 칠순이 된다.

툭하면 전화번호를 바꾸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두문불출한 그는, 가출 신고 3년 만인 행방을 찾은 2016년도에 약 3년 간 드문드문 교류한 이후 다시 잠적했다.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지내는지 이제는 관심조차 없지만. 직감인지 뭔지 가끔씩 생부의 장례를 치르는 꿈을 꾸는 까닭에 현실적으로도 염두에 두게 된다. 가족관계등록부상 장녀인 내가 상주가 될 테니까.

전에는 이 무책임한 인간의 빈소는커녕 아무 데나 산골해버리고 말지 싶었는데. 얼마 전 해양장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바꾸었다.

그의 시신을 화장하면서 그가 찍었던 수많은 내 어린 시절 사진들, 내게는 실로 아무 의미 없는 지난 사랑의 흔적들도 함께 모조리 불태워야지. 그런 다음 우리나라에서 가장 차디찬 바다에 그의 유골을 뿌리면서 빨간 장미꽃 한 송이 던져줘야지. 그리고 한 때 그가 지인들에게 자랑거리 삼던 장녀의 가창을 뱃노래로 전송해 줘야지.


그는 내 생애서 나(때문에 처자식 전부)를 버린 남자이면서 내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장미꽃 한 송이를 사줬던 남자로, 무뚝뚝하고 다정했던 부정에 최대한의 예우를 다하는 대신 나 보기가 역겨워 떠난 이에게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겠다.


그리고 훗날, 상주가 될 큰딸에게 외할아버지가 영면한 같은 바다에다 엄마의 유골을 뿌리면서 꽃 한 송이도 함께 던져달라는 유언을 남겨야겠다. 빨간 장미로.

그렇게 오랜 세월 지독하게 시달려야만 했던, ‘너 때문에 떠났다’가 부재의 이유였던 부채감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로 결론 내렸다. 물론 가는 덴 순서 없으니 내가 생부보다 오래 산다는 전제 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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