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2사이8

웨딩드레스, 그리고 신부

28살 어느 가을 / 신랑도 꽃이자 주인공 아닌가?

by 이선하

Picture by. Gordon Joshon / Pixabay


올해로 8년 차 유부녀인 나는, 프로필이나 포스터 등 배우로서 촬영에 임하거나 기념할 일이 아닌 이상 카메라에 찍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나조차도 여느 인사이더 못지않게 돋보이고 싶은 사진이 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세상에 다른 많은 부부가 피차 같은 마음일 것이다. 일생에서 가장 공을 들이는 촬영, 화보 중 꽃. 바로 웨딩 화보다.


한 달 안에 허겁지겁 서둘렀던 예식 패키지 내에서 이른바 끼워 팔기 코스에 포함됐던 우리 부부의 웨딩 화보 촬영지는 압구정 모 스튜디오로, 당시 우리 부부가 촬영하기 바로 얼마 전에 결혼한 연예인 부부 화보로 유명해진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급한 촬영 치고는 꽤 세련됐다. 그 웨딩 사진을 불과 얼마 전에 우연히 발견했을 때만 해도 가장 예뻤던 시절이라며 속없이 좋아했건만. 최근에 웹툰 <화장 지워주는 남자>에서 다룬 웨딩 화보에 관한 회차를 보고 나니 벌써 7년이 지난 결혼식을 어렴풋이 회상하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스물한 살에 서둘러 결혼을 준비했던 나는 뱃속에 4개월 된 아기(였던 지금은 8살 난 첫째)가 있었고, 바로 그전 달까지 입덧으로 죽어라 고생하다가 간신히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였다. 길 가다가도 몇 차례씩 토하고, 연습 도중에 토하고, 종일 먹지도 못하고 토하고. 그런 상태로 합숙훈련까지 병행하며 두 달 가까이 지내다 4인극 공연을 올리고 나서 휴식에 접어든 지 얼마 안 된 상태였다.


그런 와중에 웨딩 사진을 찍겠다고 평소에 피부과는커녕 로션도 귀찮아서 잘 안 바르던 나는 임산부의 몸으로 신부 마사지인가 뭔가를 받으러 여러 차례 예식장 내 피부 관리실을 다녀야 했고(패키지에 포함된 코스였으므로), 스튜디오에서 웨딩 사진 촬영 중에는 소위 '이모님'의 도움을 받고 드레스를 여러 차례 갈아입으며, 그때마다 임신한 몸으로 그 불편한 코르셋을 느슨하게라도 조여야만 했다.


본식 당일에는 진작에 준비를 마친 신랑이 한가로이 핸드폰 게임을 하며 늘어지게 앉아 기다리는 동안 임산부인 나는 신랑보다 몇 시간이나 더 오래도록 메이크업을 받고, 어마어마한 길이의 면사포와 드레스는 혼자 입지도 벗지도 못했다. 본식이 끝나기 전까지 화장실도 못 갈뿐더러 조여진 코르셋은 성가시, 평소에 단화도 안 신는 내가 결혼식을 하겠다고 10cm가량 높이의 통굽 구두를 신고 손에는 내내 부케를 들어야 한다.


그런 상태로 본식 전까지 신부 대기실에서 꼼짝없이 앉아 있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잘 꾸며진 신부에게 인사를 나눌 겸 '구경'하러 온다. 신부는 혼자 다니지도 못한다. 한 손에는 부케도 들어야 하므로 남은 한 손으로는 신랑의 팔짱을 끼고, 뒤에서 들러리가 부지런히 면사포와 드레스를 정돈해 주면 옆으로 뒤로 보폭을 맞춰야지만 간신히 행진해나갈 수 있다. 새삼스럽게도 지금 생각하니 아주 가관이다, 대체 뭔 헛짓거리야?


그나마 시아버지께서 폐백을 생략하시고 신랑이 본식 후 피로연 복장으로 편한 캐주얼 차림을 골랐으니 망정이지. 신랑 역시 나름대로 고역이었을 것이다. 번잡스러운 메이크업에, 턱시도에, 장갑에, 딱딱한 구두에, 그 정신없는 결혼식장에서 온종일 사방팔방 인사하러 다니느라 무척 피곤했다. 예식이 완전히 끝나자마자 녹초가 된 그가 발라당 드러누워 "두 번 다시는 결혼식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내뱉은 말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모습이 세상 얄미울 수가 없다. 넌 그래도 혼자 갈아입고 화장실도 갈 수 있었잖아...


신부가 거추장스러운 속눈썹에, 머리숱이 더욱 풍성해 보이기 위해 덧씌운 가발 위로 또 씌워지는 면사포에, 부케에, 굽 높은 구두에, 임산부든 어쨌든 닥치고 조여지는 코르셋 위로 혼자서 입지도 벗지도 못하고 어디 다니지도 못하는 드레스를 입는 게 어째서 통상적인 결혼 문화인가. 혹자는 그 까닭으로 "신부는 결혼식의 꽃이자 주인공"이라 치부한다. 그러는 신랑도 꽃이자 주인공 아닌가?


번거롭고 복잡한 건 질색을 하는 내가 이 같은 불편함을 감수한 까닭은 간단하다. 예나 지금이나 여느 문학작품과 매스컴에서의 신부는 언제나 휘황찬란하면서 청초한 메이크업에 드레스 차림이었고 다녀갔던 모든 결혼식장마다 신부는 '늘 그랬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제나 아름다움과 행복의 상징이었. 요컨대 결론은, 남들 다 하는 거니까.


성인이 되어 가장 경사스럽고 기념적인 의식인 만큼 많은 시간과 돈으로 공을 들이는 것은 응당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는 여기지만 단순히 '아름다워야 할 신부'라는 명분으로 불편함의 감수를 강요하는 정형성은 실로 부당하다. 그럼에도 그 낡은 관습이 오래도록 우리네 일상 속에 스민 까닭에, 나 역시 필요 이상의 불편함을 겪는 많고 많은 신부 중 하나음에도 그제야 불편함의 불편함이 불쑥 고개를 들기까지 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어차피 나는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식을 치렀으니 별 수 없지만 내 주변에는 아직 미혼이 많은 관계로 가까운 누군가가 스드메니 뭐니 내게 고민을 털어놓는다면 이런 조언은 하고 싶다. 초대하고 싶은 사람을 초대하고 입고 싶은 드레스를 입으라고. 턱시도가 입고 싶다면 턱시도를 입으라고. 그리고 결혼 상대가 이를 유난이니 뭐니 하면서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과 결혼할 생각은 애초에 접는 것이 좋겠다고.


하늘하늘한 면사포나 웨딩드레스, 행복한 날을 돋보이게 할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된 부케와 같이 웨딩에 관한 소품과 패션은 모두 한 땀 한 땀 디자이너의 정성스러운 손길을 거친 가히 예술작품이라 총칭할 만하다. 결혼식 자체가 허례허식이라고까지 비관하진 않는다.


하지만 결혼식에서 우리가 감수해야 할 불편함은 어디까지나 아름다워지기 위한 '선택이 당연할 일'이지, '신부니까 감수해야 하는 당연한 일'인 게 아니다.



특히나 신부 아버지가 신부와 팔짱 끼고 입장해서 사위 될 사람한테 내 딸을 잘 부탁한다는 의미로 넘겨주는 행위 정말이지 끔찍하다. 흔히 가슴 뭉클한 장면으로 연출될 때마다 아주 오만상이 찌푸려진다. 아니, 신부가 무슨 물건이야? 넘겨주고 건네받게. 이 행위에 대해 진작부터 감동은커녕 치가 떨렸다. 다행인지 아닌지 나는 그럴 가능성부터 원천 봉쇄된 까닭에 결혼식에서 부부 동반으로 입장했다.


오히려 엄마야말로 신부 아버지 자리를 공석으로 만든 그 사람을 대신해서 차라리 외삼촌과 입장하게 할까 심각하게 고민하셨다는 말에 내가 손사래를 쳤던 기억이 난다. 외삼촌이 내 아버지도 아니고 뭐 하러 굳이. 결혼은 어차피 신랑과 신부가 하는 거잖아. 부부가 함께 입장하는 게 뭐 어때서.


결혼 전에는 비록 독립하기 전이면 부모님께 의지한다지만 이후 신부의 인생은 동반자인 신랑과 함께 걸어 나가는 것이지, 신랑에게 자신의 인생을 모조리 맡기는 게 아니지 않나. 신부는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이기 이전에 누구라는 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신랑을 향해 "내가 이렇게나 불편했으니 너도 똑같이 겪어봐!"라는 함무라비식의 못된 심보가 아주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나야말로 두 번 다시 식을 올리고 싶은 소망은 추호도 없다. 대신 시간이 흘러 우리 아이들이 결혼식을 올릴 때에 변화됐으면 하는 희망사항은 있다.


신랑이 드레스를 신부가 턱시도를 입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뭐가 됐든 결혼식의 꽃이자 주인공인 부부가 각자 스스로 환복하고 통행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예복을 갖춰 입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부케를 꼭 신부 손에만 쥐어있지 않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예식 전에 손님들이 대기실에 앉아 있는 잘 꾸며진 신부를 구경하러 오는 것이 아니라 신랑과 함께 하객들을 직접 맞이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리, 하객들이 신혼부부와 그들 부모의 재력을 가늠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아닌, 오롯이 신부와 신랑 두 사람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기념하기 위한 결혼식 문화가 당연하게 자리 잡기를. 결혼은 부부가 평생 동안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과정임을 결혼식이란 의식을 통해서 그 진정한 의미가 여실히 드러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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