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들기 전, 하교하는 큰딸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셋이서 낮동안에 들렀던 어느 산자락의 카페를 떠올렸다. 그 카페 입구에서 얼떨결에 밟은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와 감촉이 내내 발 끝을 맴돈다. 학생 땐 무심결에 숱하게 밟아 별 감흥 없던 가을의 낙엽이 어쩐지 낯설었다.
바람이 전해주는 은은한 숲의 향과, 구름 한 점 없이 드높아진 푸르른 하늘과, 지척에 울긋불긋 옷을 갈아입은 나무들로 빽빽한 산의 정경과, 나뭇잎 사이사이로 부서지는 따스한 가을볕과, 처량하게 땅으로 내려앉은 낙엽이 바닥을 뒹구는 장면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두 눈에 담았다.
보고 있자니 문득 홀로 여행을 떠나고 싶었지만, 10여 년 전 이맘때쯤 호기심에 양주 한 잔을 원샷하고 하마터면 골로 갈 뻔했던 낭랑 17세 때와는 달리 현실은 보이지 않는 족쇄로 날 붙들어 맸다. 기실 찰나에 불과한데도 체감상 기나긴 여로 끝에 후다닥 깨어나는 아련한 꿈처럼. 충동과 현실 사이에서 자맥질하는 동안 시간은 여느 때처럼 하염없이 흘러, 흘러가겠지. 아쉬운 대로 양주 한 잔 원샷하던 시절에 다니라던 학교는 안 다니고 정처 없이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던 기억을 알음알음 떠올리며 얼음 동동 띄운 아메리카노를 호로록 마셨다.
신랑 역시 소싯적에 혈기왕성한 보헤미안이었다고 한다. 역마살이 낀 것 마냥 방랑이 일상이었던 부부는 이제 슬하에 사남매를 두어 꼼짝없이 카페 창문 밖 나른한 오후 풍경을 바라본다. 아, 이대로 의자와 한 몸이 되길 바라건만. 눈 앞에는 한 마디도 지지 않는 똑 부러진 아빠의 성정과, 흙만 보이면 헤집고 다니며 신출귀몰해서 보호자마다 진땀을 흘리게 했던 어린 시절의 엄마의 성정을 반반씩 물려받은 8살 난 큰딸이 초코 쿠키를 야금야금 먹더니 이내 밖으로 나가고 싶다며 그 좁은 카페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작년에 외할아버지께서 영면에 드시면서 못 챙겨드린 엄마의 환갑이 내내 신경 쓰였기에 내년 생신 땐 꼭 엄마와 여행을 다녀오겠노라고(그전에 코로나 19가 종식되기를 기원하며) 확신 없는 다짐을 했다. 사실 매해 계획에만 그치고 5년째 무산되는 친정 식구와의 여행은 남들은 잘만 다녀오건만 내겐 너무도 어려운 소망이다. 결혼 전엔 거의 연례행사차 다녔던 정동진으로의 기차 여행이 언젠가부터 지겹기까지 했건만 요즘은 그마저 그립다. 늘 그렇듯 소중함은 익숙함에 가려진다.
내가 가을을 타나보다. 참으로 별스러운 일이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타고 온 건지 정체가 모호한 어떤 기대감에 한껏 들떴다가 이내 한없이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나날이다. 사춘기가 다시 오려나? 질풍노도를 매섭게 겪은 이후 예전만 못했던 감수성이 이제 와서 이토록 울렁이는 까닭은, *도무지 나의 작은 지혜론 알 수가 없다. 정말이지 *내가 나를 모르겠다. 내 마음이 바람 불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인 양 또는 낙엽인 양 이렇게나 가벼웠던가. 몸무게나 좀 가벼워지면 좋을 것을.
종잡을 수 없는 심경의 변화는 서른 무렵의 가을을 새롭게 바꾸어 놓았다. 아니, 결코 여상하지 않는 가을일지언정 서른 무렵의 내가 달라졌다. 전처럼 근거리조차 마스크 없인 외출할 수도 없는 요즘이기에 일상 속 편린 하나하나가 여느 때보다 더욱 귀히 여겨진다.
귓전을 때리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도, 길섶에 살랑거리는 코스모스의 행렬 위로 알짱거리는 고추잠자리도, 알록달록한 봄꽃과는 또 다른 정취를 풍기는 형형색색 가을단풍도, 공기 속에 실린 짙은 풀내음도 모든 게 소중하다.
하나 안다, 이처럼 불현듯 찾아온 깨달음에도 시간이 지나면 어리석게 놓치고 마는 멍청한 짓을 결국 되풀이할 것임을. 다만 슬슬 나잇값을 치를 때가 됐으므로 최소한의 자각과 이제는 악순환을 거두리라는 자뭇 비장한 노력이란 걸 시도해볼 참이다.
그러니 지금의 이 소중함 또한 언제 익숙함에 속을지 모를 일이지만 어차피 모를 일이라면 지금은 이런 기분도, 날마다 같은 듯 다시 돌아오지 않을 가을의 일상을 그저 마음 놓고 즐겨보련다.
* 조용필 / <바람의 노래>
* 김국환 / <타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