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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부작 Feb 26. 2024

이직했는데 내가 원하는 업무를 맡게 될 확률 → 0

"김 차장님, 이직 축하해요. 새로운 회사에 가면... 처음에는 원하지 않는 업무를 주더라도 일단은 우선 하는 척이라도 하다 슬슬 김 차장님이 하고 싶은 업무와 할 수 있음을 어필하세요. 그렇게 딱 2년만 버텨본다는 생각으로 견뎌내 보세요."


첫 회사에서 이직 소식을 밝히자, 3개의 회사를 거친 프로이직러 이 부장님이 진심으로 축하해 주시면서 조언을 해주셨다.

 

나 : "와, 뼈와 살이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프로이직러이자 능력자 부장님께서 해주신 조언이라 정말 와닿네요!"

- 훗, 부장님, 저는 부장님과 달라요. 저는 이직해서도 제가 원하는 업무를 처음부터 할 수 있게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다고요! 


이 부장님을 향한 다른 팀원들의 평가는 처음 입사해서 팀장, 임원의 말도 안 되는 업무 지시를 받고 조용히 꾸역꾸역 해내기에 바빠 이렇다 할 성과 내기가 어려웠다는 다른 팀원들의 자체 평가를 들은 뒤라 이 부장님의 조언은 그냥 본인 현 상황에 대한 대변정도로만 생각하고 가벼이 넘겼다. 


그 조언이 정말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서 해주는 값진 조언이었다는 것은 모른 채. 






김 대리 : "김 차장님, 김 차장님이 오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팀장님께 들으셨죠? 사내 교육 프로그램 맡아주셔야 해요. 아마 조금 힘들 겁니다. 하하하. 어려운 부분 있으면 편하게 물어봐 주세요!"


이 과장 : "김 차장님, 예산 업무 인수인계 하려고 하는데, 언제 시간 괜찮으세요?"


팀장 : "김 차장님, 이미 입사할 때 겪어보셨겠지만 저희 회사는 서류, 1차 면접까지는 모두 팀원들이 직접 참여해서 채용하거든요. 채용 업무도 총괄로 좀 맡아주세요. 김 차장님 안목이면 믿을만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A 프로젝트는 잘 되고 있죠? B, C 프로젝트 PM(Project Manager)도 좀 맡아주세요. 아무래도 B, C 프로젝트는 경험이 많지 않은 사원, 대리님들이 하다 보니 총괄이 필요할 것 같네요."


"김 차장님이 오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쏟아지는 업무 인수인계로 어질어질하다. 그런데 흠... 이거 내가 기대한 업무가 아닌데...? 잡무도 좀 적당히 줘야지. 이런 것까지 내가 해야 하나? 흠....




이직했는데 기대했던 업무를 맡게 되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회사에서 신규 인력을 어떨 때 채용할지를 생각해 보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회사에서 신규 인력을 채용할 때는 크게 아래 케이스 정도가 될 것이다. 


- 1. 신규 사업을 하는데 해당 부분 전문가가 사내에 없을 때

- 2. 팀 업무 영역이 넓어져 혹은 넓어진 계획이라 기존 인력으로는 대응이 어려울 때

- 3. 기존 인력이 퇴사했을 때


1의 케이스는 드물고, 2&3의 케이스가 많을 텐데 기존에 쏟아지는 업무나 비교적 덜 중요한 업무는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에게 줘야지 라는 팀 내 암묵적인 룰이 있을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직했을 때 원하는 업무를 맡게 될 확률이 낮아지는 것.


조금 저렴하고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소위 광나는 업무는 내가 하고, 나머지 잡무로 느껴지는 업무는 뉴페이스에게 주는 것이 흔한 직장인의 관습 아닐까. 


물론 신규 인력이 빛을 낼 수 있는 업무를 지시해 주는 리더의 역할이 그래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직한 회사에서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시고, 이런 일을 지시해 주는 리더를 만나기는 더 어렵다.) 






반대로 기존 회사에 불만이 있건, 기존 회사에서 하던 업무의 한계를 느꼈건, 개인적인 사정이건 어떠한 이유 때문에 이직을 결심하고 여러 관문을 거쳐 결국 성공을 이뤄낸 이직러 입장에서는 기대심리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만큼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는 기대, 더 좋은 환경일 것이라는 기대, 내가 생각했던 업무를 맡게 된 것이라는 기대


기대치가 높은 만큼 실망도 큰 법이다. 이전 회사와 괜스레 비교가 된다. 

- 그래도 이전 회사에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나의 평판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 정도 업무까지는 안 해도 됐었는데

- 이전 회사에서는 과제를 할 때 이런 식으로 했었는데, 여기는 완전 비효율적으로 하네.

- 이전 회사에서는 이런 보고까지는 필요가 없었는데, 여기는 이런 것까지 보고해야 하나?

- 이전 회사는 건물도 새 거라 쾌적했는데, 하 여기 사무실 왜 이러지?

- 이전 회사 구내식당 김치찌개가 참 맛있었는데, 여기는 그냥 맹물인가?


심지어 구내식당 메뉴까지 비교하게 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물론 이전 회사 대비 나아진 점이 100배는 더 많아도 그건 외면하고 좋지 않은 것만 보이게 되는 매직이다. 


이직을 결정하기 전, 이 회사, 이 팀에 대해 정말 열심히 알아봤고, 현재 근무 중인 직원과도 나름 깊은 대화를 해서 정보를 조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왜 내 기대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걸까. 갑자기 불현듯 스치는 생각. '나는 이런 일이나 하려고 이직한 게 아닌데, 그냥 이직하지 않았더라면...'




'잘 보이고 싶었다. 다 잘 해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나는 빛이 나는 경력직이니까'


팀장 : "김 차장님, 혹시 하고 싶은 업무가 있어요? 하기 싫은 업무라던가..."

나 : "음... 저는 회사에서 뽑아주셨으니, 우선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하고 싶습니다. 또 잘 해낼 수 있고요." 

팀장 : "음.. 그래요? 알겠습니다. 우선 팀, 회사 업무 파악을 한다고 생각하고 해 보시다가 필요하신 거나 하고 싶으신 업무가 생기시면 언제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기대와 달랐던 업무들을 쳐내고, 익숙하지 않은 회사 인프라와 체계의 홍수 속을 누비며, 살벌한 경력 적응 생활을 버티면서 나도 모르게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중간중간 나의 근황과 하고 싶은 업무를 묻는 팀장의 질문은 그냥 으레 하는 인사치레라고 가벼이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다 괜찮은 척하고 싶었다. 그게 잘 적응하는 바람직한 모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바랬던 경력직에게 품었던 기대를 꺾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1인분 이상하는 경력직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의 퇴사를 경험하고, 세 번째 회사에 입사하기 전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다. 오션뷰가 펼쳐지는 호텔 수영장 썬베드에 누워 나를 돌아본다. 도망치듯 떠난 두 번째 회사. 무엇이 문제였고, 세 번째 회사에서의 나는 어떻게 지내야 잘 지낼 수 있을까. self-회고를 했다. 


세 번째 회사 입사 전 다이어리에 적은 나의 다짐.  


1. 표현하기. (힘든 부분, 내가 하고 싶은 일)

2. 잘 지내보려고, 잘 해내보려고 너무 애쓰지 않기.

3. 너무 큰 기대 갖지 않기.



나 : "팀장님, 저는 A 업무보다는 B 업무를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이런이런 경험을 해봤기 때문이죠. 관련된 업무가 있으면 시켜주세요! 하지만 A 업무를 하실 분이 없다면 팀장님께 여쭈어 가며 해보겠습니다."


나 : "팀장님, 잠깐 통화 괜찮으세요? 요즘 A업무, B업무, C업무에 보고까지 몰려 리소스가 조금 부족한데, A업무의 전처리 부분만 외주 인력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싶어요. 옆 파트에 물어보니, 해당 인력이 지금 수행 중인 프로젝트가 금주에 끝난다고 해서 시기도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나 : "팀장님, 저 C 프로젝트 완료일이 다가오는데, 그 압박감 때문에 약간 잠이 안 올 수준이에요. 잘 오픈할 수 있을까요?"


세 번째 회사에서 나는... 무조건 버티지 않고, 조금 뻔뻔해지기로. 




세 번째 회사는 어쩌면 이전 회사에서보다 업무량은 더 많고, 강도도 더 높다. 기대했던 기대치가 무너지는 순간도 없으며, 비교적 이쯤이면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하고 있다. 잘 해내야지 하는 부담도 적고 심적 안정감도 상당하다. 나의 리더도 나에게 소프트랜딩한 것 같다고 평가해 주신다. 


표현하자.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지 못한다. 내 마음을.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두 번째 퇴사를 하며 다짐한 결심. 표현하기 & 애쓰지 않기 & 너무 큰 기대 갖지 않기. 물론, 모두 적당히를 지켰을 때를 전제로. 


만약 조금 더 나를 표현하고, 너무 애쓰지 않고,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도 두번째 회사의 월급을 받고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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