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꾼들이 가장 사랑한 올레 7코스
살면서 길을 잃어본 경험이 있던가.
아주 어릴 때 두어 번 있었던 것 같다.
친척언니들이 놀러 왔던 어느 날 밤에
나를 두고 나간 언니 오빠들을 따라서 나갔다가
미로 같은 골목에서 미아가 되어 경찰서에 갔었던 적이 있고,
또 다른 한 번은 내 기억에는 없지만 엄마 말에 따르면
모르는 아주머니가 나를 데려다 키울 생각인지
나에게 과자를 쥐어줘서 자기 집에 데려가는걸
멀리에서 보게 되어 그 집에 가서 찾아온 적이 있다고 한다.
동네사람이라 해코지를 할 수도 있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한 일이다.
잠시, 한 시간, 하루가 아니라 계속 데리고 살 생각이었다면..
이번 코스에서는 길을 여러 번 잃었다. 길을 잃었지만 재미있었다.
평소에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일들을 제주에서 종종 만난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올해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나서서 겪은 일들이라서 일반적인 제주살이 친구들이 겪지는 않을 일들이지만
나는 생소한 이런 일들이 참 재미있다. 한 템포 지나고 나서 아 재미있었다라고 생각할 때도 있고, 현장에서 실시간으로도 이건 너무 재밌는 경험이다라고 느낄 때도 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딸이 있는데, 제주로 전학을 와서 어느 날 집에 오는 길에 다른 집으로 잘못 갔다고 했다. 그리고 다시 잘 찾아왔다고 하는데 딸이 그랬다. 재밌었다고.. 역시 나를 닮았다.
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거의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 길을 잃을 염려가 없기 때문에 이런 경험이 처음이었을 테고 그렇다고 위험한 상황도 아니었어서 약간은 당황했겠지만 생소한 이런 일들이 재미있다고 느꼈나 보다. 작은 이런 사건들을 만났을 때 걱정하거나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아서 다행이고, 길을 잃은 것조차도 즐거운 경험으로 차곡차곡 재미있게 쌓여가고 있어서 참 소중한 제주살이의 추억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평소에 살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낯선 환경을 만나고, 길을 찾아가고, 찾아가는 중에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고, 나 정말 바보 아닌가 싶지만 그럴 수도 있지 웃어넘기고, 다시 또 바른 길을 찾아서 목표지점에 잘 도착했을 때의 기쁨과 성취감. 나는 그걸 좋아하는 것 것 같다.
제주에서도 늘 가던 러닝코스만 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코스를 탐험하는 재미가 있다.
나는 탐험가 재질인가.
지금까지 큰 무리 없이 러닝코스를 찾았고, 영상촬영 및 업로드가 잘 진행되고 있었다.
물론 영상촬영이 두세 개 정도 누적되어 있는데, 영상편집과 업로드가 조금 더딘 부분이 있지만 단지 나의 귀찮음 때문이라 문제는 아니었다.
다음 러닝코스로 알아본 곳은 올레 7코스였는데, 일반적으로 해안도로는 올레코스나 환상자전거도로가 겹치는 경우가 많이 있었고, 이번에도 해안가 위주로 찾다가 서귀포켄싱턴리조트 부근으로 다녀오면 되겠다고 결정하고, 어느 날씨 좋은 날을 선택해서 나갈 채비를 했다.
이상하게도 이 날 처음부터 삐걱댔다.
차를 몰아 서귀포켄싱턴리조트에 주차를 하고 고프로를 켜고 달리기 시작했는데 한참 큰길을 달리다 보니 왠지 이 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멈추고 폰으로 지도를 찾아보니 역시나 그 길이 아니라서 뒤돌아서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봤더니 거의 시작지점 부근에 있었던 작은 올레이정표가 그제야 보였다.
버스정류장 옆으로 오솔길 같은 작은 길 옆에 올레코스 표시인 이정표를 발견하고는, 아 이렇게 작게 해 놓으니 내가 지나칠 수밖에.. 하고 핑계를 대보며, 편집을 해서 여기부터 시작하는 걸로 해야겠다 하고 나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출발을 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코스는 그동안 달렸었던 일반적인 러닝코스가 아니라 올레코스를 따라가는 것이어서, 넓은 차도나 자전거 도로가 아닌, 이정표만 의지하고 가는 오솔길의 걷기 코스였던 것이다. 오솔길이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전까지는 이런 경우가 없이 무난하게 러닝 및 촬영이 이루어져 왔어서 미리 답사를 해보지 않고 어떤 길인지 자세히 알고 오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리고 곧, 또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길이 이렇게.. 길이 아닌 것처럼 풀도 무성하고, 여기인지 저기인지 정확하지 않아 보였는데 다른 올레꾼들은 과연 이 길을 제대로 다닌단 말인가 푸념하면서 다시 왔던 길로 돌아서 바른길로 갔다. 편집할 거리도 또 생기고.
그래도 오솔길을 굽이굽이 지나다 보면 너무 아름다운 보석 같은 절경들이 곳곳에 숨어 있어서 충분히 그 매력이 있었다. 넓은 찻길,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것보다, 숨은 비경을 모험처럼 찾아 걷는 즐거움이랄까.
그렇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길을 또 여러 번 잘못 들고 말았다.
얼마나 여러 번 당황했는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찍힌 영상을 보니 주변 풍경들보다 바로 내 발아래의 길과 심지어 모자챙이 자꾸만 화면에 걸려서 보이기도 한다. 이젠 편집이 어려운 지경.
다 커서 이렇게나 여러 번 길을 잘못 든 적이 있던가.
길을 한번 잘못 들었을 때는 헛웃음이 났고, 두 번, 세 번, 네 번 잘못 들었을 때는 내가 진정 바보인가 하며 존재 자체의 회의감(?)까지 느꼈지만 그래도 가다 보면 올바른 길을 만날 거고 나는 목표지점에 도착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또 아무렇지 않게 잠시 숨을 돌려 풍경을 볼 수 있는 잠깐의 시간이 생긴 것으로 여기며 그냥 갔다. just do it.
길을 잘못 들어 오솔길이 아닌 바닷물을 밟게 되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두 손으로 물을 퍼올렸다.
물은 참 시원하고 바다는 참 예뻤다.
그 다음번에는 앉은 김에 쉬어가라고, 잘못 들어선 김에 예쁜 돌멩이 없나 하고 잠시 한숨을 돌리며 땀을 식혔다.
그렇게 꾸역꾸역 가다 보니 올레쉼터가 나왔다. 아 이런 험난한 길을 사람들이 잘 찾아오긴 하나보구나. 휴게소까지 있는 걸 보니.. 나는 이른 시간에 가서 아직 오픈 전이었지만 다른 올레꾼들에게는 너무 좋은 쉼터일 것 같았다.
그곳에서 화장실을 한번 사용하고 다시 또 갈길을 갔다.
이제 좀 찻길도 나오고 길을 잃지 않을 만한 큰 길이 나왔다.
목표한 반환점인 법환포구까지 무난히 가서 나는 한참을 쉬며 재충전을 해야 했다.
날씨는 왜 이리 좋은지.
과연, 이렇게 어렵게 온 이 길을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너무 웃기지만 정말 용기를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택시를 타고 돌아갈 수도 없고..
그래서 근처에서 망고주스를 마시며 에너지를 쌓고 다시 힘을 내서 왔던 길로 출발했다.
돌아가는 길은 그래도 한번 지나왔던 아는 길이라 큰 어려움은 없었지만
나는 너무 지치고 말았다.
나중에 올레트레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안 사실은, 여기가 바로 올레꾼들이 가장 사랑하는 코스라고 했다.
그 길이 ‘수봉로’였나 보다.
수봉로는 세 번째 코스 개척 시기였던 때, 올레지기 김수봉 님이 염소가 다니던 길에 직접 삽과 곡괭이만으로 계단과 길을 만들어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도록 한 길이다. 또한 그동안 너무 험해 갈 수 없었던 '두머니물-서건도' 해안 구간을 제주올레에서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고르는 작업 끝에 새로운 바닷길로 만들어 이어, '일강정 바당 올레'로 명명한 길도 있다고..
염소가 다니던 길을 개척한 김수봉 님과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골랐을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나중에 실제로 영상편집을 하면서 주제를 "트레일러닝"이라고 잡으며 적당히 포장했지만, 사실은 길을 잘못 들고, 손발을 이용해 암벽을 타듯 바위를 넘어서 자꾸만 바다방향으로 잘못 가던 상황이 여러 번(최소 네 번 이상) 있어서, 편집하기도 애매하고, 과연 이 영상을 쓸 수 있을까도 고민하다가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것이고 이 또한 나의 재미난 경험이기 때문에 그냥 남겨두기로 결정했다.
나에게는 특별하고 재미난 경험이었던 마성의 올레 7코스 수봉로.
너 다음에 또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