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과 새소리가 가득한 물 없는 계곡
2022년도 2월에 제주 한 달 살기를 했었다.
2023년도 2월에는 2주 살기, 2024년도 2월에는 10일.
모두 제주 중문지역이었다. 그전에도 거의 서귀포 쪽 숙소를 이용했던 것 같다.
그리고 올해 2월 말에 제주 일 년 살기를 하러 왔다.
제주생활 첫 달, 제주에서 처음 맞이하는 봄이었고 나는 자주 감격을 하기에 바빴다.
남편과 쉬리의 언덕을 처음 가보았다.
왜 그동안 갈 생각을 안 했었는지, 영화 쉬리를 보지 않아서였을까. 관심도 없었고 기대도 없었고 남편도 가자고 한 적이 없어서 안 갔었는데 이번에 지인과 대화를 하다가 그곳이 산책코스로 좋아서 매번 간다는 말에 우리도 오전에 산책 삼아 한번 가보기로 했다.
주차가 쉽지 않았다. 신라호텔이나 롯데호텔에 안 하려다 보니, 그래도 옆에 파르나스호텔 주차장이 가까운 편이라서 주차 후에 멀지 않게 걸어가긴 했지만 산책 후에 주차비를 내야 했다.
쉬리의 언덕 산책코스는 멋있었다. 아래쪽으로 색달해수욕장이 보이고 정원도 예쁘게 관리가 잘 되어 있어서 한 번쯤 가보기에 나쁘지 않았다. 해가 쨍쨍하고 날씨가 좋은 날 커피를 사들고 가서 쉬리벤치에 좀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있다가 해가 너무 뜨거워서 해를 피하려 나무그늘이 있는 다른 벤치에 좀 더 앉아있다가 산책코스를 좀 더 돌다가 귀가했다. 같은 집, 같은 방에서 각자의 스케줄대로 업무를 하기에 바빴는데 이렇게 한 번씩 시간 맞춰서 산책도 하고 봄햇볕을 느끼니 좋았다.
며칠 후 엉덩물계곡이라는 곳이 유채꽃이 예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중문에 살고 있으면서 그런 유명한 곳을 안 갈 수 없어서 찾아보니 내가 운동하는 헬스장에서 가까워서 어느 날은 운동 마치고 일부러 그곳을 찾아 걸어갔다.
우와. 엉덩물계곡은 물이 전혀 없고, 유채꽃과 새소리만 한가득 있었다.
평원에 넓게 펼쳐진 유채꽃 밭은 많이 봤었는데, 이곳은 계단으로 내려가면서부터 계곡의 형태로 물 흐르듯 유채꽃이 흐르고 있었고, 예쁜 새소리에 적당한 바람까지 어우러져 누가 와도 감탄의 소리를 자아 낼만큼 멋진 경관이 연출되고 있었다. 다만 일행이 없이 혼자 가서 멋지게 사진을 한컷 찍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https://youtube.com/shorts/H9wKZJpXFXU
나는 해변을 멋지게 달리는 로망을 가지고 있었다.
며칠 후, 색달해수욕장 러닝 영상을 촬영해야겠다 싶어서 어떻게 가야 할지 검색해 보고 답사차 바다바라라는 카페 근처에 주차하고 해수욕장을 찾아갔더니, 엉덩물계곡만큼이나 유채꽃도 예쁘고 정원이 너무 잘되어 있었는데, 쪽 가다 보니 얼마 전 남편과 갔었던 쉬리의 언덕이 이어지는 게 아닌가.
와우. 전에는 오른쪽에서 왔었는데 왼쪽에서 가면 이렇게 연결되고 계단으로 색달해수욕장까지 갈 수 있구나 하고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쪽으로 가면 주차비를 안 낼 수도 있었다. 새로운 루트를 발견해서 너무 신나서 남편에게 내가 발견한 이 코스를 얼른 말해줘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적당한 날을 잡아서 색달해수욕장 코스로 유튜브 촬영을 하는 날, 그 코스를 달려서 계단으로 내려가서 색달해변을 왔다 갔다 적어도 두 번을 왕복하려고 했는데 나의 로망과는 달리 모래에 발이 푹푹 빠져서 너무 힘들어서 왕복 한 번도 간신히 하고 마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상상과 현실을 다른 법이다. 모래사장은 달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그래도 마무리로 바다배경으로 예쁜 조개를 주워서 그럴싸한 썸네일을 만들 수 있었다.
아직 이사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한 동네 안에서 매일매일 이렇게 명소를 알게 될 수 있는지, 중문이라서 그런 건지.. 앞으로도 어떤 멋진 곳들을 발견하게 될지 너무 기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