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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런 Aug 14. 2024

벚꽃 없는 벚꽃 축제

제주벚꽃런하기 힘드네.. 세 번째 만에 성공!!

처음 러닝 영상을 촬영할 때에는 해안도로 위주로 달릴 생각만 했었는데, 곧 3월이니 벚꽃이 피면 벚꽃런도 해야겠다 싶어서 3월이 되자마자 제주에서의 벚꽃 스팟을 알아보았다. 


제주대학교는 공항 근처라 집에서 엄청 멀고 달릴 수 있는 환경이 아니고, 가시리 녹산로는 가보지는 않았는데 남편이 거기는 드라이브코스라 차들만 다녀서 위험해 보인다고 하고, 아무튼 여기저기 유명하다는 곳을 상세히 찾아보았는데, 결국 달릴만한 장소가 아니어서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즈음 나는 어디라도 가게 되면 주위를 기웃기웃 거리며 오 여기도 벚꽃이 있네? 약천사를 달릴 때에도, 논짓물을 다녀올 때에도 두리번두리번거리며 여기가 나을까 하다가.. 결국 집에서 멀지도 않으면서 괜찮은 장소를 찾았는데, '대왕수천 예래생태공원'이라고 거창한 이름을 가진 공원인데, 집에서 멀지 않아서 일단 가보기로 했다. 


벚꽃이 피기 전에 새벽에 답사차 가봤는데 내비게이션을 따라서 논짓물 가는 길로 가다 보면 진짜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이 휑한 곳에 갑자기 주차장이 나왔다. 여기가 맞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니 내려가는 계단이 있길래 그 아래로 내려가보니 찻길 아래로 이렇게나 넓은 공원이? 하며 깜짝 놀랄 만큼 크고 관리도 잘되어 있는 공원이 나타났다. 예쁜 물소리도 졸졸졸 흐르고 새소리가 만발하고 나무랑 풀이랑 길도 잘 만들어져 있어서, 벚꽃이 없어도 이렇게 한적하고 예쁘고 멋진데, 여기에 벚꽃이 피면 얼마나 더 멋질까 상상하며 그날만을 기다렸다. 


서울과 제주시와 이쪽저쪽의 벚꽃소식을 들으면서, 벚꽃런을 촬영할 날을 정해서 이날쯤 가야겠다 하고 새벽에 고프로를 챙겨가지고 갔던 첫날 3월 22일 새벽 6시 반. 

보기 좋게 실패했다. 허허. 그 넓은 공원에 단 두 그루만 활짝 피어 있었다. 

아니 그런데, 그 바로 다음날인 3월 23일이 예래생태공원 벚꽃축제였는데 이렇게 꽃이 없는데도 축제를 한다고? 소식을 들어보니 올해는 제주대학교도 어디도 전체적으로 꽃이 늦게 핀다고 한다. 그래도 간 김에 일출도 보고 20분 정도 달렸다. 






그 다음 날 가족들과 벚꽃 없는 벚꽃축제에 다녀왔다.

앞서 말했지만 그 공원은 벚꽃이 없어도 충분히 예뻤다. 유채꽃도 있고 냇물도 흐르고 큰 호수 같은 게 있어서 볕 좋은 날 한 시간쯤 좋은 시간을 보내며 산책하다가 왔다. 축제라고 아이들은 닭꼬치도 먹고 과일맛 젤리도 먹고 모처럼 제주에 와서 날씨 좋은 날 야외에서 보내는 따사로운 날이었다. 노래자랑의 괴성만 빼고는. 


그날도 전체적으로 벚꽃은 꽃망울만 있을 뿐 어제 보았던 두 그루만 무성하니 피어 있어서.. 그 주위로만 사진 찍는 줄이 길게도 서있었다. 벚꽃이 없는데도 벚꽃축제를 강행한 것도 대단한데, 또 거길 온 사람들도 재밌었다. 물론 이런 행사는 연결 연결된 단체들이 많아서 일정을 연기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벚꽃이 없다는 건 모르고 온 걸까? 물론 우리가족도 그 곳에 있었지만. 



벚꽃없는 벚꽃축제 가족나들이, 만개한 나무에서 찍으려면 줄을 서야 했다. 






두 번째로 다시 날을 잡고 답사 갔다가.. 또 날을 미루고 세 번째로 겨우 딱 맞춘 날짜가 4월 1일이었다. 


드디어 결전의 날, 새벽에 또 일찌감치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갔다.

모자에 고프로를 올리고, 스트레칭을 쫙쫙하고, 새벽 여섯 시 반쯤이었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4월, 새벽의 그 공기와 온도와, 새소리 물소리가 너무 예뻤다. 


처음에, 달리는 중간에, 또 예뻐 보이는 곳에서 한 번씩 멈춰 사진도 찍었다. 유튜브에 올릴 썸네일용 사진이다. 이제 한번 해 봤다고 달리면서, 촬영하면서 기획을 조금씩 한다. 이쯤에서 이런 멘트를 적어야겠다 여기가 예쁘게 나오면 좋겠다 새벽에 달리니 어두워서 조금 아쉽다 등의 생각을 하기도 하고. 


벚꽃이 있는 한 바퀴가 너무 짧아서 두 바퀴를 돌았는데 2.4킬로 정도 됐다. 러닝이라기엔 좀 짧은 구간이지만 그래도 차와 사람들 없이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벚꽃길이 아닌가 싶어서 나는 너무 만족했고, 내 생각엔 제주 최고의 벚꽃스팟이라고 자부한다. 이 규모에 관리도 잘되어 있는데 너무 저평가된 곳이 아닌가 싶지만 또 나만 알고 싶기도 한 공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날 낮에 갈 일이 있어서 들렀던 예래생태공원에는, 최소 천명 이상이 바글바글해서 역시 새벽에 촬영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그곳은 유명한 곳이었다. 나만 빼고 아는. 


내가 전에 논짓물에서 대평포구까지 달려보고, 여기 예래생태공원도 달려봤었는데, 나중에 서귀포 크루 C2O에서 번개런이 있어서 이쪽을 달렸더니.. 예래생태공원에서 아래로 쭉 달리다 보면 논짓물이 있는 바다까지 연결되는 길이 있더라. 그 두 곳이 그렇게 연결될 줄이야.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는데 이 후로도 그런 일이 몇 번 있었다. 그렇게 C2O는 우물 안의 개구리 같은 나의 시야를 확장시켜 주기도 하고 제주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해주고 있는 중이다. 






그간 제주에 여러 번 와 보았지만 주로 2월 겨울방학, 5월, 8월, 9월 추석, 이런 때에만 와 봐서 4월의 제주는 처음 경험했는데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된다면 3-4월에 벚꽃이 때, 유채꽃이 만발할 때, 덥거나 춥지 않을 때 제주에 다시 한번 와보고 싶다. 친구랑 와서 러닝 해야지. 


아 최근에 너무 기쁜 소식이 하나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제일 친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친구는 몇 년 전까지 요가 강사를 하다가 그만두고 나서 일 년 정도 회사를 다니다가 최근에는 쉬고 있는 중이었다. 여러 상황들로 인해서 힘들어하기도 하고 우울해하기도 해서 너도 러닝을 해보라고 간간이 권했었다. 내가 잔소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남에게 권유하는 것도 열심히 못하는 편이다. 눈치 봐가면서 상황에 따라. 

그러다가 친구가 한 두 달 전에 러닝을 시작해서 10월에 있을 국민일보마라톤에 함께 신청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 신청했던 한 달 전에는 친구가 아직 30분 달리기를 하지 못할 때라서 10킬로는 무리고 그전 코스인 3.7킬로를 신청했는데, 지금은 그래도 7킬로 까지는 달리는 것 같아서 마라톤협회에 전화해 보고 변경 가능하면 나랑 같이 10킬로를 해보자, 너 3.7킬로 달리면 후회할 거다 해서 다시 10킬로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로운 나의 러닝라이프에 제일 친한 친구가 함께하게 된 것이 너무 기뻤다. 친구랑 함께 마라톤이라니. 


제일 처음 외로이 달렸던 2월의 마라톤이 생각났다. 

마라톤이라는 그 환경 자체가 생소하고 낯설었는데, 날씨도 추운 데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들 동호회니 친구나 회사 등 지인들이 다 같이 와서 으쌰으쌰 하는 게 그렇게 부러워서 마음이 더 추웠었는데.. 이제 나도 두 번의 마라톤을 경험하고 다음번 마라톤은 친구랑 함께라니 더 이상 낯설지도 외롭지도 않고, 너무 기대된다. 


친구가 나의 러닝 라이프에 들어왔으니 다음에 같이 3월에 제주도에도, 춘천 마라톤도, 도쿄도, 그 어디도 함께 할 수 있고, 함께 달릴 생각으로도 너무 기쁘다. 


나는 원래 혼자 달리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혼자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친구와의 러닝은 여행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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