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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런 Jul 10. 2024

퇴사와 함께 탄생한 부캐 "쉘위런"

제주이사를 위한 결정에는 딱 3일이 걸렸다.


나는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던 마흔이 넘은 워킹맘이다.


스무 살 때부터 회사를 다니며 한 달도 쉬어보지 못했다. 한 달 벌어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하는 고단한 생활을 하며 살았고, 서른에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무던한 나의 성격상 직장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 같지만, 가끔 너무너무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었다. 실수를 했을 때, 스트레스가 많을 때, 뭔가 우울함이 극도로 치달을 때 라던지.


그러나 그때마다 남편은 나에게

"은희씨는 능력이 있으니 열심히 회사를 다니세요"

라며, 임원까지 하세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곤 했다. 한 번도 요즘 힘들었구나, 이제 좀 쉬어요라고 하지 않았다.


실행력이 있는 내가 그 말을 듣자마자 옳다구나 하며 그만둘 수도 있어서 빈말도 쉽사리 하지 않는 남편이었다. 어떤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 다 알고는 있지만 서운할 때도 있었다.


그러던 내가 드디어 퇴사를 하게 된 것이다.






우리 가족은 제주도를 좋아하는 편이라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제주에 여행을 갔었고, 2년 전에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한 달만 육아휴직을 받아서 한달살이를 하기도 했었다. 


올해 2월에도 지인의 아파트를 빌려서 제주에 열흘 정도 여행을 갔었는데, 남편과 그 아파트가 있던 동네를 산책 다니다가.. 초등학교도 있고, 학원가도 있고, 마트나 병원 등 다 있어서 여기 살아도 생활에 불편함은 없겠네 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부동산에 한번 가볼까 하고 갑작스레 집을 두어 개 봤었는데, 그 중 가구와 가전이 모두 있는 너무 마음에 드는 집을 만나게 되었다. 그 때 남편에게 말하진 않았지만, 왠지 바다가 보이는 이 집에 올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2월 15일 목요일, 10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원래 살던 고양시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큰 아이가 이제 6학년이 되고 내년엔 중학생인데 중학교에 가면 그때는 진짜 안될 것 같다.

다음다음 주면 3월 새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이사를 하려면 그전에 하는 게 좋은데 이렇게 빨리 결정하고 이사가 가능할까.

남편은 거의 재택근무로 일하는 1인사업자라서 가능한데, 나는 16년 다니던 회사를 하루아침에 그만둘 수는 있을까..

이사를 하려면 최대한 빨리 금, 토, 일 이렇게 3일 안에 결정을 해서, 월요일에는 그 집을 계약해야 하고, 우리 회사에도 말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주에 짐을 정리해서 택배를 보내고, 그다음 주에는 비행기 타고 가야 하는데. 

이렇게 갑작스럽게 내가 퇴사와 제주살이를 고민할 줄이야. 꿈에도 전혀, 0.001%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자, 자, 마음을 가다듬고 말이야.

일단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다면, 

은희야 너는 어때? 

하고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봤다.

응 나는.. 정말 좋지. 꿈에도 그리던 퇴사를 하는 거잖아. Why not? 완전 콜이야.


회사든 뭐든 모르겠고, 일단 남편에게 "yes"라고 나의 의견은 전달했다. 이후 정말 갈 것인가에 대한 결정은 우리 집의 가장인 남편에게 맡겼다. 그리고 가지 않는 걸로 결정되어도 괜찮다는 코멘트를 남겼다. 진심이었다. 3일 만에 엄청난 결정을 해야 하는데 내가 푸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나의 yes는, 나는 퇴사를 하게 되니 일 년간 아니 일 년 이상이 될지도 모르는 기간 동안 경제적인 문제들을 남편 혼자서 끌고 갈 수 있겠다 싶으면 결정을 해보세요 라는 의미였기에.


월요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는데 전철역까지 태워다 주는 남편의 얼굴이 무거웠다. 어제까지 결정한다고 했었는데 아직 결정하지 못했거나, 안 가기로 결정한 듯한 분위기여서, 나는 선수를 쳤다.

"아직 결정 못한 것 같은데, 우리 그냥 가지 말자."

그래야 혹시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 마음에 미안함을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마음을 접고 출근을 했지만 나의 마음도 조금 무거웠다.

휴. 이놈의 지긋지긋한 회사 그만두는 줄 알았더니. 그러면 그렇지 하고 메모장을 열어서 마음을 끄적였다. 


회사 다니기 싫으니까
다른 즐거움을 찾아보자
퇴사를 위해서,
하나하나 인수인계할 내 일들을 정리해 봐야겠다.


오늘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퇴사를 하겠지. 그날을 기다리며 꾸역꾸역 다녀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조금 후 남편으로부터 계약하기로 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와우?!!

하핫, 정말? 하.


그럼... 회사에 일단 말을 해야 하는데, 마음과 머리가 복잡 복잡했다.

그 와중에 제주에 가면 뭘 하지? 라고 생각했을 때, 작년부터 러닝을 하고 있었던 나는 제주를 여기저기 달리면서 유튜브에 올려봐야겠다 하고 채널이름을 짓고, 비슷한 이름이 있지 않은지 검색하면서 지난주에 다녀온 제주도 바다 사진으로 배너 이미지를 단숨에 만들었다. 


그게 바로, 퇴사 & 제주살이를 결정한 후 처음 한 일이었다.


"Shall we run?" 쉘위런

나랑 같이 제주를 달려보지 않을래?  

심장이 두근두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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