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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쉘위런 Jul 24. 2024

현명한 남편의 대박 투자

나의 러닝 스토리    

제주 오기 직전 남편과 나는 운동에 열심인 부부였다. 

작년에는 롯데타워 스카이런에 같이 참가해서 123층의 계단 오르기도 했었다. 




남편은 가족력 때문에 당뇨를 관리하기 위해서 3년쯤 전부터 엄청 하기 싫어하면서도 매일매일 꾸역꾸역 턱걸이와 계단운동을 하다가, 어느 순간 PT를 받더니, 나중에는 크로스핏까지 하게 되었다. 

사십 대 후반에게 크로스핏은 격한 운동이라서 늘 조심해야 했는데 혼자 하는 헬스보다 재미가 있는지 스스로 조절해 가며 과하지 않게 잘하고 있다가 갑자기 제주도로 이사하게 되어서 다니던 크로스핏을 양도하고 제주에서 크로스핏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까운 곳에는 없었고 그나마 그와 조금 비슷한 '슬릭부스트'라는 그룹운동이 있어서 체험을 한 두 번 하고서 1년을 등록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나도 작년에 PT를 받고 이제 조금 근력운동에 재미를 붙여가며 매일 아침 인바디를 재는 일에 중독되어가고 있었는데 여기 제주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헬스장에서 혼자 하려니 점점 귀찮아지고 가기가 싫어졌다. 그런데 남편의 말을 들어보니 슬릭부스트라는 운동은 크로스핏보다 조금 덜 격하고 은희씨한테 딱 맞을 것 같다는 것이다. 처음엔 크로스핏이랑 비슷하면 나랑 안 맞을 거라 생각했다가, 남편이 등록하는데 같이 하면 더 할인을 해주려나 싶어서 나도 체험을 하러 따라갔다. 


슬릭부스트는 그룹운동으로 50분 동안 매일 다른 주제의 8~16가지의 유산소, 웨이트 운동을 몇 세트씩 돌아가면서 하는데, 크로스핏처럼 중량을 많이 강요하지도 않고 크게 다칠 것처럼 과격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50분 동안 땀이 주룩주룩 나서 오늘 운동 좀 했구나 싶은 느낌이 들고 뿌듯했다. 또 무엇보다도 러닝에 필요한 런지나 스쾃 등 여러 가지 하체운동을 시켜줘서 러닝보강운동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기에 남편과 함께 1년을 등록하기로 결정했다. 


운동하는 공간은 통창의 한라산뷰가 너무 멋진 기와지붕 건물인데, 건물 자체가 눈에 띄어서 아마도 제주 중문을 지나다닌 사람들이라면 어디인지 짐작이 될법한 건물이다. 나랑 남편도 십여 년 전에 이 건물이 식당일 때 와서 떡조개뚝배기를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곳에서 운동을 하게 되다니. 


출처_슬릭부스트 제주 중문점. 낮에는 한라산이 멋지고 밤에는 조명이 멋지다


어느 날 웨이트 운동 위주의 프로그램






러닝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건강하게 나이 들어서까지 달리는 게 목표라고 생각하고 날씨와 풍경과 새소리를 들으며 즐기면서 천천히 달리기만 했는데 1년쯤 된 이제는 근력운동, 보강운동, 스킵운동, 스트레칭 등 해야 할 게 많아졌다. 갈수록 알수록 갈길이 멀었다. 아.. 이러려고 시작한 건 아니었는데.. 


작년 7월 말 처음 러닝을 시작한 계기는 주위 지인들로부터 동기부여를 받아서였는데, 첫 번째로는 운동에 한참 열심이었던 교회 동생이 런데이 하세요 런데이 깔고 친구추가 하세요 권유했었고, 두 번째로는 인스타친구였던 한 외국인 친구가 싱가포르의 멋진 풍경 속에 아침마다 달리는 걸 보고 매일매일 자극이 되었고, 세 번째는 인스타에 어떤 남자의 달리는 영상을 보고 너무 멋있어서, 나도 아침마다 달리는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어렸을 때는 달리기를 곧잘 했었지만 장거리는 해본 적이 없어서 처음엔 내가 될까 싶었지만.. 런데이 어플을 깔고 30분 도전 코스의 8주 완성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30분 달리기가 가능해져서 몇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50분 코스로 돌입했다. 


'런데이' 어플의 30분, 50분 달리기 도전 코스



그즈음 남편이 갑자기 12월, 1월에 있는 기념일인 크리스마스, 내 생일, 결혼기념일을 묶어서 갑자기 러닝화를 선물로 사주겠다고 갖고 싶은 걸 골라보라고 했다. 

11월 초였는데? 나는 러닝화 필요 없는데? 이미 평상시에 신고 있던 운동화가 러닝화였고 쿠션이 좋았고 매우 만족하면서 신고 있었다. 그런데 평소 신발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남편은 어차피 러닝을 계속할 거라면 제일 좋은 러닝화로 건강하게 달리기를 바랐나 보다. 그렇게 나이키 매장에 가서 직원이 굳이 이 정도 좋은 건 안 사셔도 된다고 만류하던 제일 비싼 30만 원 정도의 러닝화를 질렀다.


남편이 사준 제일 비싼 러닝화의 나비효과인가. 

마라톤에 관심도 없던 내게 비싼 러닝화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이렇게 비싸고 좋은 운동화를 사줬으니 그 값을 해야지 하며 마라톤 정도는 나가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어 올해 2월 어리둥절 첫 10K 마라톤을 접수했다. 사실 대회 전까지 한 번도 10킬로를 달린 적이 없고 8킬로까지만 연습했던 나는 마지막까지 완주할 수 있을지가 걱정되어서 무조건 오버하지 않고 페이스조절을 잘해야겠다는 목표 하나를 가지고 7분대를 유지하며 딱 7분 페이스에 맞추어 잘 들어왔는데, 도착하고 나서는 아 좀 더 빨리 달릴 수 있었는데 너무 절제했나 싶은 간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과 다르게 다리는 이미 내 다리가 아니어서 발을 절뚝절뚝 거리며 버스를 타고 힘겹게 집까지 갔다. 남들이 보면 풀코스를 달리고 왔나 보다 했을 것이다.  



나를 마라톤으로 이끌어준 세계최고러닝화와 첫번째 마라톤 완주 기록증



그렇게 첫 번째 마라톤도 무사히 완주했고, 지금도 열심히 달리고 있으며, 앞으로도 러닝을 하며 건강을 잘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래도 현명한 우리 남편은 30만 원의 투자로 미래에 3000만 원 이상의 건강을 얻게 되는 대박투자를 한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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