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즐거운 만남 뒤에 찾아오는 손님

공허함, 그 씁쓸함

by 스더언니

민영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3년 전 어느 날. 블로그를 하는 나에게 쪽지 한 통이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저는 상해에 산지 4년 차 된 직장인 박민영이라고 합니다. (독거처녀에요^^) 그 동안 올리신 포스팅들을 보니, 저랑 나이도 같으시고 음악도 좋아하시고.. 전시회와 맛집도 가시고.. -특히 맛집이요^^^-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친해지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먼저 용기 내어 쪽지 보냅니다. 언제 한 번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 제 위챗 아이디는 oo 입니다^^”


글을 쓰며, 블로그를 하며, 내가 얻게 된 가장 소중한 것. 좋은 인연들이다. 간혹 이상한 변태 아저씨들이 쪽지를 보내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것은 ‘블로그’라는 도구를 통해 나의 사소한 일상에 공감하고, 나의 사소한 감정이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되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다. 나도 곧 그녀의 아이디를 누르고 그녀의 블로그를 정탐하였는데, 빈 화면에 별 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영어로 적혀진 그녀의 이력서틱(?)한 소개 글에서 그녀가 외국계 회사에서 일을 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쪽지를 확인한 시간이 늦어, 우선 그녀의 아이디만 추가를 한 후 다음 날 메시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친구 신청 메시지에 ‘안녕하세요. 스더입니다. 반가워요^^’ 라고 적었는데, 추가한지 몇 분 되지 않아 그녀는 이내 신청을 수락하였고, “어머 스더언니! 반가워요~” 라고 답장이 왔다. 그렇게 형식적인 인사 몇 마디가 오가다가, “한 번 뵈어요!” 라는 나의 말에, 그녀는 “내일 저녁 어떠세요?” 라고 묻는다. 가만, 내일 금요일이네, 뭐 불금이라지만 나도 어차피 딱히 약속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약속을 잡았다. 가격도 괜찮고, 위치도 적당하고, 음식도 부담스럽지 않은 난징시루의 ‘와이포지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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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외를 마치고 약속 시간에 맞게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저 회사가 이 근처라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는데요, 오늘 금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이 되게 많네요. 번호표 받고 언제 순서가 될지 모르니, 우선 옆에 Windowstoo 펍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커피숍이 아닌 Windowstoo라… ‘화끈하다’ 와 ‘이 분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번갈아 하며 펍에 들어섰다. 오늘은 이 곳도 사람이 참 많다. 시끄러운 외국인 손님들 사이로 두리 번 거리고 있을 때, 저 쪽에서 ‘스더언니~’를 부르며, 이미 반쯤 비워진 맥주를 마시며 다가오는 그녀. “안녕하세요, 박민영입니다.” 딱 봐도 훤칠한 키, 코트를 걸쳤어도 날씬하고 육감적인 몸매.

예쁘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마침 지나가는 빨간색셔츠 유니폼을 입은 흑형 종업원에게 검지 손가락으로 ‘1’을 보여준 뒤 ‘same one please’ 라고 외쳤다.

“제 이름은 한결입니다. 근데 스더로 불리는 게 더 편해요.” 서로의 잔을 부딪히며 우리는 그렇게 그 자리에서 감자튀김을 안주 삼아, 밥 삼아 맥주를 각 다섯 잔씩 비웠다. 그녀 역시 외국에서 ‘혼자’가 된지 어느덧 10년, ‘상해’에서 싱글 여자로 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처음 만났지만 서로의 삶의 조각들이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남자친구 있어요? 무슨 일 하세요? 이렇게 꼬박 ‘요’를 붙이다가,

어느 순간, 아마 두 번째 맥주잔을 부딪힐 때쯤, 서로에게 한국보다는 상해가 살기 괜찮지? 전에살던 곳은 어땠어? 여기 어디 가기 좋은 데 있어? 난 요즘 아파트먼트 좋던데 거기 가봤어?

우리는 그렇게 편하게 많은 이야기를 채워갔지만, 서로에게 깊숙히 숨겨져 있는 외로움과 아픔에 대해서는 더 묻지 않았다. ‘혼자’라는 단어 만으로도, 나는 그리고 그녀는 지나간 날들에 대해서 ‘다’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으니까.

“우리는 와이포지아 보다 여기가 더 잘 맞았지?” 자정이 되어서야, 원래 가기로 하였던 ‘와이포지아’에 대해서 민영이가 말을 꺼냈다. “그러게, 얘기하는 동안 생각도 못했네. 다음에 가자.” 내가 핸드폰으로 시간을 보며 눈짓을 하니, 그녀는 테이블 위에 놓여진 립글로즈와, 의자 위에 아무렇게나 걸려진 그녀의 코트와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며 일어났다. 그래, 기분 좋은 만남이었으니까. 또 ‘함께’를 기약하면서 말이다. 그녀는 내가 사는 바오산이 너무 멀다며 기어코 내가 먼저 택시를 타는 모습을 보겠단다. 그렇게 반쯤 취한 상태로 택시 안에서 그녀에게 짧게 음성을 남겼다 ‘어, 너도 집에 가면 연락해~’

‘1008’

집 앞에 도착하여, 반쯤 풀린 눈으로 가방 속 키뭉치를 꺼내어 그 중에서 우리 집 아파트 키를 찾으려 애를 썼다. 찰랑거리는 쇳소리에 현관 문 앞에서 미친 듯이 ‘야옹’거리며 울고 있는 우리 애기. “그래 엄마가 빨리 안아줄게.” 라는 말과 함께 깜깜한 집에 들어서니, 애기가 온몸을 부비며 안아달라고 떼를 쓴다. 번쩍 안아 올려 화장실에 같이 들어가 세면대 위에 올려 놓고, 화장 솜 없이 클렌징 오일을 손에 펌프질 하고 그대로 얼굴을 문질렀다. 눈에 번진 화장으로 팬더가 된 나를 보며 여전히 ‘야옹’거리는 애기. 오늘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따지는 것 같이 들린다. “그래 미안해, 엄마가 오늘 늦었지.” 괜히 뜨끔하여 먼저 사과를 하니, 세면대에서 폴짝 내려와, 곧장 침대 위로 올라간다. 폼 클렌징으로 다시 2차 세안을 마치고, 미리 잘 개어놓은 새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침대에 널부러져 있는 원피스 잠옷을 장착한 뒤, 그대로 누웠다.

‘아 맞다, 민영이.’

귀찮은 몸을 이끌고 다시 겨우 일어나 가방 속에 있는 핸드폰을 꺼내어 머리맡 충전기에 꼽으니, 이번에는 애기가 머리를 들이밀며 박치기를 하여 핸드폰을 내 손에서 떨어뜨린다. “으구, 그래그래” 한 손으로는 애기를 쓰담으며, 한 손으로는 핸드폰으로 ‘나는 잘 왔어. 너도 도착하면 연락해’ 라는 민영이의 메세지에 답을 보냈다. ‘응 나도 지금 누웠어. 오늘 재밌었어, 우리 곧 보자, 잘 자.’

깜깜한 방, 쓸데없이 큰 킹사이즈 침대에 대각선으로 누워 눈을 깜빡였다. 분명, 좋은 시간을 보냈고, 분명 많이 웃었는데.. 왜 이렇게 공허할까. 그러나 더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다.

적당히 취했고, 적당히 피곤하다. 눈을 감는데 눈물이 흘러 침대에 떨어진다. 그러나 이쯤이면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어김없이 늘 찾아오는 손님. 외로움을 친구로 두는 방법을 이제는 알았으니까.

이렇게 내일이 또 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