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빛항아리 Oct 09. 2022

아스팔트보다 흙길이 편하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돈 없이, 운동 기구의 도움이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을 꼽으라면 걷기가 대표적일 것이다.     


나의 경우는 내가 원치 않아도 걷는 일이 많았고 걷는 것 자체를 좋아해 일부러 걷는 일도 많다. 시골에 자란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논을 지나고, 밭을 지나고, 과수원을 지나고, 도로를 걸어야 학교에 다다를 수 있었다. 어린 꼬마에게 그 길이 너무 길고 힘들었다. 그러나 때론 어린아이 시선에 호기심을 끌 만한 것들이 그 길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니, 길의 지루함은 없었다. 사계절마다 다르게 펼쳐지는 눈앞의 광경은 어린아이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중·고등학교 때 역시 걸어 다녔다. 도시에 있는 학교에 다니려면 시골에서 아침 일찍 나와 버스를 타야 하는데 하루에 네 번밖에 들어오지 않는 버스의 첫차를 타고 학교에 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라 삼십 분에서 사십 분 정도를 걸어 나온 뒤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녀야 했다. 그렇게 걷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지금의 아이들처럼 부모님이 픽업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혼자 등하교를 직접 했다. 그만큼 걸었던 거리도 상당하다.     


대학교 때는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615km 걸었다. 어릴 적 걷는 것 자체를 너무 싫었다. 논과 밭 그리고 과수원을 따라 걷는 길은 흙길이어서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신발은 거의 흙으로 덮여 더러워지고, 지저분해졌다. 그래서 깨끗한 도로를 걷고 싶었다.


20대에는 등산을 한참 즐겼고, 삼십 대에는 제주올레길을 시작으로 둘레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의 생애를 걸쳐 걷기는 일상이었다. 그렇게 나는 걷기를 예찬할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어려워하는 길이 있다면 그것은 아스팔트로 포장된 길이다. 그런 길은 한두 시간만 걸어도 다리에 무리가 온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한다. 특히 왼쪽 다리에 통증이 찾아온다. 몸이 아는 것이다. 흙길을 걸을 때는 이렇게 심하지 않다. 흙을 밟고 몇 시간을 걸으면 아스팔트 한 시간을 걸어서 오는 통증과 같은 증상은 없다.


그런 경험들로 내가 느낀 것이라면, 자연이 주는 그대로가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편리함이 오히려 인간의 건강을 망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가끔은 이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도로가 새로 생길 때마다 나는 엄마에 우려를 표시한다. 사람이 편리해지기는 한데 이러다가는 오히려 자연은 물론 인간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엄마에게 투덜투덜거린다.  

  

가끔 뉴스에서 싱크홀이 발생했다는 뉴스를 보면서 엄마에게 말한다. 만약 그 길이 흙으로 된 길이었다면 뜨거운 태양열을 흡수해서 지열을 덜 올라오게 할 것이며, 비나 눈이 오면 물을 어느 정도 흙이 흡수하여 나무의 뿌리까지 갈 것 같지 않냐며 엄마의 동의를 구한다. 비록 비나 눈이 오면 흙길의 경우 질퍽해지고, 웅덩이가 생겨 불편하지만, 흙이 어느 정도는 품어주는 기능이 있는 것 같다며, 아스팔트가 많은 도로 상황을 걱정하기도 한다.


아스팔트에도 갈라진 틈은 있으나 대부분 비가 와도 물을 흡수하지 못하고 토해낸다. 그리고 여름이면 뜨거운 태양을 그대로 반사해 밑에서 올라오는 지열로 인해 한층 더 더워진다.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빛 때문에 이미 온몸에 더위가 에워싸고 있는데 지열로 인해 몸은 곱절로 더위와 싸워야 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편리한 아스팔트가 오히려 인간을 힘들게 하고 있고, 아스팔트도 자신의 상태를 싱크홀 발생으로 표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흙길이 때로는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 신발이나 옷을 더럽게 만들어 불편하지만, 건강에는 더 좋고, 발에 덜 무리가 가는 것 같다.


나는 아스팔트보다 흙길을 더 걷고 싶다. 아침부터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운동한다고 아스팔트를 걷다가 들어와서 뻗어버렸고, 일어나서 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같은 시간 산을 갔다 오거나 둘레길을 갔다 오면 오늘 같은 피곤함은 덜하다. 흙이 주는 건강함이 있다고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 식은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