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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Jun 07. 2018

소나무 다시 보기

소나무에게 강제적으로 쓰인 '영원함'이란 프레임

매일 오후 4시에 치러지는 경건한 산책 2시간. 가는 물줄기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제법 넓은 저수지에 이르기도, 고층 건물이 들어선 도심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아직 봄기운을 느끼기엔 조금 일렀던 어떤 날, 그날도 오후 4시가 되자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 근처 산책로로 나왔다. 이제 겨우 힘겹게 봄눈을 틔우고 있는 바싹 마른 가로수도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지난봄에 이 벚나무들이 정말 화려했었지..'


가지마다 왕 벚꽃이 버겁도록 매달려 장관을 이루던 지난봄 풍경이 떠올랐다. 그 봄날의 풍경을 모조리 잊기라도 한 듯 가로수 벚나무들은 메마른 낙엽 한 장 붙들고 있지 않았다. 아직은 찬 바람 기운을 맨 몸으로 맞고 서있는 나무들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 실오라기 한 조각 걸치지 않은 바짝 마른 거친 피부에 살을 에는 차가운 바람이라니.. 나무는 그 고통 속에서 다가올 봄의 화려한 모습을 꿈꾸고 있었을까..



벚나무 뒤로 싱그러운 초록이 눈에 들어왔다. 찬 겨울에도 한결같이 초록잎을 드리우고 서 있는 소나무. 온통 잿빛인 늦겨울 풍경에 풍성한 색감을 선사하고 있다.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초록색의 힘. 그 힘을 사계절 모두 지닌 소나무에게 우린 '영원함의 상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래서 소나무는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한 차원 높은 의미가 되었다.


"그런데 좀 답답하지 않아? 맨날 똑같은 모습.. 너무 지겨울 것 같아"


"그게 소나무의 매력이지.. 언제나 그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의리 있지 않아?"


"소나무가 의리 지키고 싶데? 소나무한테 물어봤어?"


가지가 앙상한 벚나무 뒤에서 아직 푸른 잎사귀를 달고 서있는 소나무가 사실 난 탐욕스러워 보였다. 


인생을 살아가며 놓아야 할 때, 물러설 때를 모르고 늘 안달복달 모든 걸 쥐고 사는 탐욕스러운 인간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소나무야, 네 진실이 무엇이든 난 잠시 그런 생각을 했을 뿐이야;;) 사람들에게 보이는 사계절 푸르른 힘..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소나무는 어쩌면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늘 지조와 절개, 영원함을 외쳐대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박을 느끼진 않았을까..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소나무를 영원함과 동일시하는 우리들의 생각도 일률적인 교육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소나무를 보면서 어떤 감흥을 주체적으로 갖기 이전에 동요를 통해, 교과서를 통해 소나무는 곧은 절개와 늘 푸른 영원함을 가졌다고 외우고 또 외웠다. 소나무는 자신이 그런 이미지로 각인되고 싶다고 우리에게 의사를 표시한 적이 없다. 



벚나무와 소나무는 그저 자신의 인생을 산다.


모진 시련 이겨내고 봄철에 딱 한 번 모든 이의 관심을 사로잡을 화려한 꽃을 피우는 인생, 화려하진 않지만 늘 같은 모습으로 안정감을 추구하는 인생.. 무엇이 더 우등하고 열등한 지 가릴 수 없는 각자 다른 인생을 사는 모습인 것이다. 


만개했던 벚꽃이 바람에 흩날려 떨어진다. 자신을 경탄스런 눈길로 올려다보던 사람들의 시선도 점점 멀어져 갈 것이다. 고독함을 준비하는 벚나무의 참담함을 소나무는 알까?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소나무를 벚나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들은 각자 자신의 인생을 산다. 겉모습 만으로 평가할 수 없는 우리 인생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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