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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Apr 22. 2020

나도 '골드'란 수식어를 쓰고 싶었으나..

마흔이 되었다. 옆자리는 비었고, 나는 여전히 내가 누군지 모른다.

골드미스?


아무래도 '골드'란 수식어를 갖다 붙이기엔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그럼 실버쯤은 되려나?

어쩐지 그것도 맘이 편치 않았다. 간간히 소개팅으로 만나는 또래 남자들의 사회적, 경제적 수준을 나와 비교해 따져보자니 그들을 골드로 생각했을 때 난 실버에도 미치지 못할 것 같다는 의기소침한 결론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브론즈쯤은 써도 되지 않을까..

당장의 현물가치는 없으나 난 아직 삶을 놓지 않았다. 여전히 꿈꾸고 그것을 향해 나아간다. 20대 때와 비교하면 살갗에 탄력을 잃었고 나잇살이 조금 늘었겠지만 확고한 주관이 생겼고 무엇이든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지성이 강화되었다. 어딘가에 무엇으로 실용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나의 현재 가치, 그 정도면 브론즈란 표현을 양심의 가책 없이 사용해도 되겠지 싶었다.


나에게도 마흔이란 믿지 못할 시기가 찾아왔다. 어릴 적 막연한 예측보다 실상 돈도 없고 짝도 없고 그냥 고만고만한 인간으로 나이만 꽉 채웠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제대로 써먹지도 못하면서 오랜 시간 공들여 손에 쥔 석사학위, 외국어 능력, 몇 장의 자격증이 오히려 더 한심하게 느껴졌다. 오랫동안 쓰지 않아 그 능력들의 텐션은 제법 많이 떨어졌고 당분간 그것을 되살려 사용하고픈 마음도 없다. 어느 순간 인생이 얼마나 남았을까를 생각해봤다. 몇 년 전 건강하시던 이모부께서 예순도 되지 않아 급작스런 심정지로 돌아가신 것을 보고 난 후 자주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건강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일 골골대는 약체도 아니기에 마흔에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이 좀 쓸데없어 보이기는 하다만 인간은 자신이 언제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남은 시간을 좀 더 행복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죽는다는 사실 말고는 인간이 미래에 대해 100% 확신을 담아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착실하게 쌓아온 부와 명예가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한 적당히 유지는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의도치 않은 불행의 씨앗까지 인간은 예측할 수가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하면 현재의 고통이나 외로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뜻과 무게를 같이 한다. 

그래서 브론즈도 골드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마을 행정복지센터 같은 곳에 방문하면 종종 듣는 질문, "기혼이세요? 미혼이세요?"

단지 현재의 결혼 여부를 궁금해하는 공무원의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 2초간 잠깐의 공백을 두고 대답을 한다. 


"미혼인데요.. (돌아온)"


그 순간 필요하지 않은 괄호 안의 '돌아온'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나는 말 그대로 돌싱이다. 7년간의 결혼생활을 했지만 아이가 없어 굳이 과거를 드러내지 않으면 혼기를 놓친 미스로 여기는 시선들이 와 닿는다. 20대 초반에 만나 6년 간의 연애, 그리고 이어진 7년 간의 결혼생활.. 30대 중반에 이혼을 하고 보니 나이만 훌쩍 먹은 미스가 되어 있었다. 결혼으로 인한 부분적인 경력단절, 다시 또 누군가와 시작해야 하는 사랑이란 과제.. 하지만 한 남자 곁에서 13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혼자가 된 나는 일이며 연애며 어디서부터 무엇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왔다. 좌충우돌 여기저기 마구마구 부딪히면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며 배고픈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찌질한 연애에 넌덜머리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5년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 정도 데이터가 쌓였고 정말 불행(?)하게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오려는 누군가에게 얄팍한 실패 지침서를 전해주고 싶었다. 


나이의 앞자리가 '3'이었을 때까지만 해도 나이를 먹는 것에 의연했었다. 하지만 '4'를 앞에 둔 몇 달 전부터는 목을 옥죄는 것처럼 정말 많은 생각이 스쳤다. 몇 년 전부터 간간히 썼던 <마흔 즈음에>라는 매거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흔이 되었다>를 다시 쓰기 시작했었다. 앞선 매거진은 마흔이란 단어를 넣었지만 순간순간 불처럼 일어나는 감정 쓰레기들을 토해낸 기록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부끄러워 삭제하고 싶었지만 이미 그 글에 좋아요를 눌러준 독자들의 발자국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또 다른 이름의 <마흔이 되었다>에 4편의 글을 연재하고 한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나 역시 현실에서 치열한 발버둥을 치며 사는 존재임에도 글은 마치 도를 닦는 신선을 흉내 내는 느낌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그럼 무엇을 써볼까.. 그냥 내 찌질한 얘기를 써보자. 그리고 내가 했던 찌질한 연애로 내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하지만 또 얼마나 성장했는지.. 인생에 사실 그렇게 별스러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보통사람의 찌질한 고백..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될 테고 누군가에게는 '그래도 쟤보다 내가 낫네' 하는 디딤돌이 될지도 모른다. 


밟아라.. 난 이제 하나도 아프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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