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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Apr 30. 2019

인사를 나누지 않아도 온기가 있으면 이웃이다

도시 프롤레타리아를 거부한 철없는 영의 성장 이야기

혼자 사는 딸 먹으라고 이것저것 봉지마다 정성을 다해 만든 엄마표 반찬이 도착을 했습니다. 택배 아저씨의 힘찬 문 두드림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죠. 그런데 바로 옆집 문도 활짝 열려있어 문이 맞물려 택배를 가져오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조심조심 택배를 들고 들어와 잠시 밖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2년이 넘게 한 곳에 살면서 옆집에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던 이웃은 이사 가는 날도 요란을 떨지 않더군요. 정말 사람 말소리 한 번 없이 조심조심 짐을 나르느라 문을 열 때까지 옆집에서 이사를 나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이사.. 가시나 봐요?"

물어볼까 한 백번을 생각했을까요? 짐을 옮기느라 정신없는 이웃에게 용기 있게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아, 네... 결혼하느라.. 집을 좀 정리해요."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이웃집 남자는 딱 보아도 저보다 열 살은 더 아래로 보이는 앳된 청년이었습니다. 이따금씩 여자 친구와 동네를 오가는 모습을 보긴 했으나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어 그냥 인사 없이 지나치곤 했었죠.


"그렇군요. 아, 정말 부럽네요.. 잘 사세요."

"고맙습니다."


결혼을 하느라 살던 원룸을 정리하는 그가 어찌나 부러웠는지요.

사실 이 집에 들어올 때 제 꿈이 바로 그것이었거든요.



방을 보여주는 부동산 아저씨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아저씨께 물어보았습니다.

"여기 먼저 살던 아가씨는 왜 갑자기 집을 내놓게 되었데요?"
"저기 OO동에서 네일아트 하는 아가씬데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집을 내놓았어요."


급히 결혼을 하느라 사람이 빠져나간 집터, 왠지 기운이란 미신을 믿고 싶어 졌습니다.

그 이후로 '전세기간 2년이 만료되기까지 결혼으로 이 집을 떠나자'가 소소한 제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답니다.

그런데 벌써 2년 하고도 7개월째 이 집에 혼자 머물러 있네요.

옆집 이웃의 결혼 소식을 듣고 보니 혹시나 제가 소망했던 그 기운이 주춤거리며 오다가 길을 잃어 옆집으로 아슬하게 가 버린 건 아닌지.. 하는 아쉬운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어찌 됐든 축하할 일이죠. 


참 좋은 이웃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지내진 않았지만 소음에 취약한 원룸들의 구조상 서로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살기 힘든 건물 구조인데 2년을 넘게 지내면서도 소음에 예민한 제가 한 번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더 매너를 지키려고 노력했었죠. 


얼굴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깍듯이 매너를 지켜주는 존재가 있어 고맙고 때로는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내 방에서 무슨 일이 생겨 소리라도 지르면 바로 경찰에 신고라도 해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동안 느껴온 그의 매너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도움은 줄 수 있는 사람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간다니.. 참 아쉽습니다. 한편으론 혹시나 상식 없고 시끄러운 사람이 이사 오면 어쩌나.. 그럼 나 역시 곧 그 사람을 피해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연이어 꼬리를 물어 버립니다.


좋은 분이 옆 자리를 채워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아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좋은 이웃.. 굳이 얼굴을 알지 않아도 온기만으로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이웃.. 그 정도면 아직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저 역시 빨리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

결혼의 신이시여, 이번에는 길을 잃으시면 아니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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