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프롤레타리아를 거부한 철없는 영의 성장 이야기
혼자 사는 딸 먹으라고 이것저것 봉지마다 정성을 다해 만든 엄마표 반찬이 도착을 했습니다. 택배 아저씨의 힘찬 문 두드림 소리에 부스스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죠. 그런데 바로 옆집 문도 활짝 열려있어 문이 맞물려 택배를 가져오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조심조심 택배를 들고 들어와 잠시 밖의 동태를 살폈습니다. 2년이 넘게 한 곳에 살면서 옆집에 사람이 사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던 이웃은 이사 가는 날도 요란을 떨지 않더군요. 정말 사람 말소리 한 번 없이 조심조심 짐을 나르느라 문을 열 때까지 옆집에서 이사를 나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물어볼까 한 백번을 생각했을까요? 짐을 옮기느라 정신없는 이웃에게 용기 있게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이웃집 남자는 딱 보아도 저보다 열 살은 더 아래로 보이는 앳된 청년이었습니다. 이따금씩 여자 친구와 동네를 오가는 모습을 보긴 했으나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어 그냥 인사 없이 지나치곤 했었죠.
결혼을 하느라 살던 원룸을 정리하는 그가 어찌나 부러웠는지요.
사실 이 집에 들어올 때 제 꿈이 바로 그것이었거든요.
방을 보여주는 부동산 아저씨와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아저씨께 물어보았습니다.
급히 결혼을 하느라 사람이 빠져나간 집터, 왠지 기운이란 미신을 믿고 싶어 졌습니다.
그 이후로 '전세기간 2년이 만료되기까지 결혼으로 이 집을 떠나자'가 소소한 제 삶의 목표가 되어버렸답니다.
그런데 벌써 2년 하고도 7개월째 이 집에 혼자 머물러 있네요.
옆집 이웃의 결혼 소식을 듣고 보니 혹시나 제가 소망했던 그 기운이 주춤거리며 오다가 길을 잃어 옆집으로 아슬하게 가 버린 건 아닌지.. 하는 아쉬운 생각마저 들었답니다.
어찌 됐든 축하할 일이죠.
참 좋은 이웃이었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지내진 않았지만 소음에 취약한 원룸들의 구조상 서로 매너를 지키지 않으면 살기 힘든 건물 구조인데 2년을 넘게 지내면서도 소음에 예민한 제가 한 번도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더 매너를 지키려고 노력했었죠.
얼굴을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벽을 하나 사이에 두고 깍듯이 매너를 지켜주는 존재가 있어 고맙고 때로는 든든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내 방에서 무슨 일이 생겨 소리라도 지르면 바로 경찰에 신고라도 해 줄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동안 느껴온 그의 매너를 생각하면 그 정도의 도움은 줄 수 있는 사람이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사를 간다니.. 참 아쉽습니다. 한편으론 혹시나 상식 없고 시끄러운 사람이 이사 오면 어쩌나.. 그럼 나 역시 곧 그 사람을 피해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연이어 꼬리를 물어 버립니다.
좋은 분이 옆 자리를 채워주셨으면 좋겠어요. 서로 얼굴 붉히지 않아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좋은 이웃.. 굳이 얼굴을 알지 않아도 온기만으로 존재를 느낄 수 있는 이웃.. 그 정도면 아직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저 역시 빨리 이 곳을 떠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