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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 영 May 01. 2019

이 땅에도 봄은 찾아오겠죠?

도시 프롤레타리아를 거부한 철없는 영의 성장 이야기

그는 2주면 족할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를 잊는데 필요한 시간..


13년을 함께 한 시간.. 1년을 만난 사람을 잊는데 한 달이 필요하다는 계산법으로 따져봐도 납득이 되지 않는 그만의 획기적인 망각의 시간.. 


헤어짐 후 그는 정말 금세 저를 잊었던 것 같았지요. 필요한 문제로 연락을 하면 정확히 그 답변만 돌아올 뿐 그 어떤 안부나 감정의 부스러기도 흘리지 않았습니다.


그를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심장 한가운데 심었을 때 저의 그 뿌리는 너무도 깊게 자리를 잡았던 모양입니다. 차갑게 돌아선 뒷모습을 향해 울고 또 울면서도 끝내 돌아서지 못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제풀에 지쳐 갈 때쯤 그 힘든 과정을 지켜주던 사람이 사랑으로 다가왔습니다.


깊은 뿌리를 뽑아낸 부스러진 땅에 다시 싹이 트고 푸른 잎이 돋아났습니다. 


그러나 이번 나무는 어쩐지 작은 바람에도 너무나 자주 흔들렸습니다. 치열하게 다투고 화가 나면 몇 개월씩 곁을 떠나버리는 사람.. 그리고는 그가 서서히 잊혀 심장의 나무가 말라 갈 때쯤 다시 돌아와 재회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너처럼 내 모든 것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 사람은 없었어." 

제 가슴속 다 말라 가는 나무에 그는 그렇게 급하게 물을 주고 영양제를 뿌려댔죠. 그러나 또다시 몇 개월이 멀다 하고 그는 그 일을 멈추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나타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제 심장 위로 자라난 이번 나무는 결국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고 뿌리가 뽑혀 옆으로 모로 누운 채 그 뿌리마저 말라버렸습니다. 



두 번이나 큰 나무를 뽑아내고 마음의 여유라는 흙은 이전보다 더욱 피폐해졌죠. 새롭게 무언가가 자라날 수 있을까.. 싶게 황량하고 건조해진 마음의 대지.. 그래도 아직 젊은 땅엔 무언가를 심고 키워내야 할 의무라는 게 있죠. 다른 나무를 심기 위해 발로 꾹꾹 밟고 다져 나름 비옥한 땅을 만들려 노력하고 있을 때 우연히 가장 맘에 드는 씨앗 하나가 운 좋게 제 땅 위로 떨어졌습니다.


동시에 뿌리가 말랐던 두 번째 나무의 주인에게도 연락이 왔죠. 그 땅에 다시 내 나무를 심어도 좋겠느냐고.. 우연히 받아들인 새 씨앗이 다치기라고 할까 저는 그 마른 뿌리의 나무를 더 멀리 내쳐버렸습니다.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던 나무 주인은 저의 매몰찬 거절에 몇 개월 만에 새 땅을 찾아 결혼 소식을 알렸습니다. 


아, 그렇구나.. 깊이를 가지고 있는 단어들이 실은 생각보다 얕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죠. 그 후론 누군가에게서 생각보다 빠르게 "사랑한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 불편해졌습니다. 


나무가 심장에 단단히 뿌리를 내린 후가 아닌, 씨앗이 발아하는 그 기쁨의 순간에 사람들은 보통 "사랑한다"라는 말을 쉽게 내뱉어버린다는 걸 알게 된 이유죠.


다시 단단하게 다져놓은 땅에 자리 잡은 씨앗이 싹을 틔웠습니다. 그저 굳건한 큰 나무로 자라날 때까지 바람이 불지 않기를, 양분이 부족한 땅이지만 나무를 키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걸 믿어주길, 꽃과 나비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를,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지 않고 새 땅에 굳건한 뿌리를 내려주길 기다렸습니다. 싹이 발아한 기쁨에 쉽게 "사랑한다"말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두 차례나 큰 나무들이 뽑힌 자리여서 그럴까요? 간신히 나무를 지지하고 있는 땅에게 나무는 땅의 비옥하지 않은 토질을 불평했습니다. 

"너는 너무 건조하잖아. 너는 너무 양분이 모자라."


어떻게 생각해보면 나라는 땅에는 처음부터 그 씨앗이 원하던 양분이나 충분한 수분이 없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잃은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결핍인.. 결국 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심기로 작정을 합니다.


모든 변화엔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듯 잠시간의 혼란이 나무를 괴롭히겠지만 언젠가 그도 새 땅에 뿌리를 내리겠지요. 

이번에도 2주면 나를, 아니 이 땅을 잊게 될까요?
생각지도 못했던 어느 좋은 날 새 땅을 찾았다 결혼 소식을 전해줄까요? 


세 번째 뿌리를 뽑아내고 있는 중입니다. 매번 이 깊은 뿌리를 제거할 때마다 심장이 이리도 난도질을 당하는데 사람들은 어쩜 그리 만남과 이별이 자연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통증에 단련이 되기라도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 땅에 다시 무언가를 심을 수 있을까요?

겉으로 드러나 메마른 흙과 여기저기 구멍 난 뿌리의 흔적들이 그대로 나뒹굴고 있는 이 땅에도 봄은 다시 찾아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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