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0.3미터의 오차에 숨은 비밀

1. 발견

by 샤프

2026년 5월, 대전의 한 인문계 고등학교.


5교시. 점심을 먹은 직후라 아이들 절반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있고, 나머지 절반은 멍하니 칠판을 보고 있었다. 남고의 아이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허겁지겁 점심을 먹어치우고, 기상 이변으로 인한 뜨거운 태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축구를 한 탓이다.

에어컨을 작동시킬 수도 있었지만, 여름 전에는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담임 선생님의 주장 때문에 낡은 선풍기가 덜덜거리며 교실 안의 공기를 휘젓고 있었다. 사춘기 남학생들의 체취가 교실을 가득 채웠다.


한국사 교사인 서이준은 분필을 뚝 부러뜨리며 힘차게 칠판에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그의 큰 키와 남자답게 생긴 얼굴이 엎드려있던 남학생들의 눈에 들어왔다. 여고였다면 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 할 만큼 훤칠한 외모였다. 그가 남고에서 교편을 잡게 되자, 주변 친구들이 "이왕 갈 거 여고를 가보지"라며 한 마디씩 던졌지만, 그는 여기 남고에서도 꽤 인기가 많았다. 물론 학생들이 겉으로 표를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확신에 찬 말투와 박학다식함, 인품을 학생들은 내심 존경하고 있었다. 이준만의 역사에 대한 해석과 평을 학생들은 좋아했다. 그는 교과서 텍스트를 그대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교과서에 없는 흥미로운 일화들을 들려주면서 한국사 시간을 흥미로운 이야기 시간으로 이끌었다. 가끔씩은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는 역사적 사실에 의문을 던지며 학생들의 생각을 깨우려고 노력했다.

역사적 옳고 그름에 대한 토론의 장도 학생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아이들은 그를 따르고 그의 수업을 좋아했다. 가끔 사회 정세와 관련한 그의 용감한 발언들도 충분히 민원을 제기할 만 했지만, 아이들은 의리로 모른 척 넘겨주었다.


이준이 칠판에 크게 적은 글씨는 다음과 같았다.

[FACT (사실)]

이준은 붉은색 분필을 들어 그 위에 X자를 긋고, 옆에 다시 쓴다.

[PROPAGANDA (선동)]

이준이 큰 소리로 말했다.

"다들 고개 들어. 시험에 나오는 거 찍어줄 테니까."

'시험'이라는 단어에 엎드려 있던 아이들도 좀비처럼 고개를 들었다.

사실은 이준이 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기대하며 이준을 응시했다.

이준은 빔프로젝터 리모컨을 눌렀다. 칠판 위 스크린에 웅장한 <수원 화성 전도>가 펼쳐졌다.


"너희들, 교과서에서 정조가 수원 화성을 왜 지었다고 배웠지?"

이준이 리모콘을 내려놓으며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대답이 없자, 회장을 불렀다.

"회장, 정조는 왜 수원 화성을 지었을까?


당황한 회장이 안경을 만지막거리며 대답했다.

"어... 뒤주에 갇혀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 때문에 무덤을 옮기면서 지은 계획도시... 아닌가요?"


"딩동댕. 교과서적 정답. 수능에서는 그렇게 공부해야 점수를 받지. 하지만 그건..."

이준이 교탁을 탁! 치며 몸을 숙여 아이들과 눈을 맞춘다.


"개소리야."

아이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졸던 아이들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각을 해봐. 효도를 하려면 무덤을 화려하게 꾸미고 제사나 잘 지내면 그만이야. 굳이 전 재산을 털어서, 한양에서 40km나 떨어진 허허벌판에 둘레 5.7km짜리 거대한 군사 요새를 짓는다? 그것도 당대 기득권인 노론 벽파가 눈에 불을 켜고 반대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에 의구심이 번졌다.

이준이 스크린 속 화성의 '팔달문(남문)' 주변, 시장이 형성된 구역을 지시봉으로 가리켰다.


"정조는 효심이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로 진짜 목적을 감춘 거야. 화성은 단순한 추모 공원이 아니었어. '혁명 기지'였지."

이준의 목소리에 열기가 실려있었다.


"조선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나라였어. 양반이 지배하고 상업을 천시했지. 근데 정조는 화성 내부에 시전, 즉 시장을 유치하고, 상인들에게 면세 혜택을 줬어. 게다가 화성 축조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 강제로 끌려온 노비들이 아니었어. 국가가 임금을 지불한 '최초의 유급 노동자'들이었다고."

이준은 칠판에 빠르게 판서한다.


[강제 노역 → 임금 노동], [신분 질서 → 자본과 능력]


호기심에 가득찬 아이들을 둘러본 이준이 잠시 뜸을 들이고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200년 전에 이미 정조는, 왕권과 양반 중심의 낡은 조선을 버리고 상업과 기술, 그리고 백성이 돈을 버는 새로운 근대 국가를 실험하고 있었던 거야. 한양의 늙은 꼰대, 즉노론들이 쥐고 있는 기득권을 피해, 완전히 새로운 판을 짠 거지."


수능과 내신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런 그의 주장과 이야기에 대해 학교에서는 아니꼽게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이준은 멈추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도 못하면 내가 굳이 학교에 있을 이유가 있을까?'


그는 오히려 더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정조는 독살당한 거야. 기득권은 언제나 변화를 두려워하거든. 자신들이 편집해 놓은 '질서'가 무너지는 걸 참을 수 없으니까."

그리고 속삭이듯 덧붙였다.

"이건 어디가서 얘기하지 마라. 누군가 물어보면 '지병으로 인한 자연사', 패혈증과 과로라고 대답해. 음모론자로 찍힐라."

그가 웃자 몇몇 아이들이 따라 웃었다.


이준이 스크린 속 동북공심돈을 가리킨다.

"역사는 팩트가 아니야. 살아남은 승자들이 자신들의 정당성을 위해 편집하고 왜곡한 프로파간다지. 우리는 교과서에 적힌 '효심'이라는 단어 뒤에 숨겨진, 진짜 피 냄새 나는 투쟁을 읽어야 해. 그게 진짜 역사 공부다."

딩- 동- 댕- 동- 종이 울렸다.


"수업 끝."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일어나자, 이준은 교과서를 덮었다.

이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칠판에 적힌 PROPAGANDA라는 글자를 지우개로 벅벅 문질러 지운다. 하얀 분필 가루가 1975년의 먼지처럼 흩날린다.


"역사는 팩트가 아니야. 승자가 편집한 프로파간다지."


서이준. 서른 네 살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사.

그의 당당한 수업 시간 모습과는 달리 이준의 현실은 암담하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박사 과정에서 세 번이나 낙방했고, 영혼을 갈아 넣은 석사 논문마저 "증거가 빈약한 음모론"으로 학계에서 매장당해 월세조차 3개월째 밀리게 되었다.

철 없는 이상과 꿈에 대한 도전 조차 사치스러운 현실 앞에서 그는 더 이상 철 없이 꿈을 좇을 수 없었다. 존경받는 역사학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꿈은 그렇게 버려졌다. 어쩔 수 없이 현실에 타협하자며, 지방의 한 기간제 교사 자리에 지원하게 되었다.

가르치는 것에 어느 정도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밥을 굶지 않는 지금의 생활에 그런대로 만족하고는 있지만, 정규직 전환도 크게 가망이 없었고, 삼십대 중반이라는 나이와 보잘 것 없는 그의 재산을 생각해보면, 어쩌면 그에게는 암담한 미래 밖에 없을 지도 모른다. 이성에게 매력적인 외모 덕분에 20대 후반까지는 곧잘 들어오던 소개팅도 끊긴지 오래다. 그도 자신의 현실을 알고 소개를 부탁하지도 않고 있다.


이준은 교무실로 돌아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기지개를 편 그는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어??"

잠시 뒤 그는 탄성을 지르며 모니터 앞쪽으로 다가갔다.

옆 자리에 앉은 영어 교사가 이상한 눈빛을 보냈지만, 답할 상황이 아니었다.

수업 준비를 위해 프랑스에서 반환된 '외규장각 의궤'의 고해상도 디지털 스캔본을 모니터에 띄운 이준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표지 안쪽에 미세한 구멍들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오랜 세월에 의해서 생긴 곰팡이 자국처럼 보였지만, 그렇다기에는 그 구멍들이 일정한 규칙을 갖고 배열되어 있던 것이다.

"이건.. 자연적인 훼손이 아냐. 누군가 송곳으로 의도적으로 뚫은 타공이야."

누군가는 그의 음모론이 또 시작되었다며 혀를 차겠지만, 지금 이준은 주변의 시선은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었다.

주변의 소리가 아득해졌다.


이건 진짜다.


방과 후, 텅 빈 교무실. 이준은 포토샵을 켜고 [의궤 표지 레이어]를 투명도 50%로 설정해보았다.

그리고는 [1796년 화성 전도 레이어] 위에 겹쳐보았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했지만, 그의 예상대로 수십 개의 구멍이 화성의 4대문, 암문, 수문 등 주요 시설의 위치와 정확히 겹쳤다. 그런데 오직 한 곳, 동북공심돈 위치에만 두 개의 구멍이 겹쳐져 별 모양을 이루고 있었다.

그 별 모양이 마치 숨바꼭질을 하며 자신을 찾아주길 오랜 시간 기대려온 것처럼 느껴졌다.


이준은 즉시 과거 국토지리정보원 아르바이트 시절 몰래 백업해 둔 레이저 스캔과 열화상 데이터를 찾아보았다.

그의 덕후 기질이 아니었다면, 몰래 백업해두지도 않았을 터.

갑자기 자신의 덕후 기질에 심히 감사하게 되었다.

책상 서랍을 뒤져 여러 개의 USB를 확인해본 결과, 세 번째 만에 자신이 백업해둔 데이터를 발견했다. 그는 너무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안 지우고 여태 가지고 있었던 자신의 게으름 마저 감사했다. 이어서 그는 자신이 백업한 레이저 스캔 데이터와 교차 분석을 시작했다.


그가 제일 먼저 떠올린 자료는 <화성성역의궤>였다.

<화성성역의궤>는 1801년(순조 1년)에 간행된 수원 화성 축조에 관한 공식 보고서이다.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늘 가르쳤듯이 <화성성역의궤>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이자, "건축 사상 가장 정밀한 공사 보고서"로 불린다.

이 공사 보고서는 너무 자세해서 성곽의 설계도와 들어간 돌의 크기와 개수, 인부들의 이름과 일당, 못 하나 가격까지 적혀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 건물을 짓기 위해 땅을 얼마나 팠는지, 즉 기초 공사 깊이에 대한 기록도 존재한다.


연구원 시절 이준은 조선 시대 도량형을 현대의 미터법으로 환산하여 비교해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조선 시대 건축에서 주로 쓰인 단위는 '영조척(營造尺)'이다.


즉 환산 공식은 1척(尺) ≒ 약 30.3cm (약 0.3m)


이준이 모니터 화면을 확대했다. 화면에는 <화성성역의궤> 권수(卷首) 도설(圖說) 부분이 떠 있다.

한자로 빼곡한 기록 중 '동북공심돈 지대(地臺)' 항목이 붉은 박스로 강조된다.


'입기광협(入地廣狹) - 오척(五尺)'. 땅속 깊이가 5척


계산해보면: 5척 × 0.3m = 1.5m


"이것 봐. 땅속 깊이가 5척, 즉 1.51미터야. 의궤에는 분명히 지하 1.5m 깊이로 기초를 다졌다고 나와 있어. 정약용은 편집증이 있을 정도로 숫자에 집착했어. 1센티미터의 오차도 기록에 남겼다고."


이준은 레이저 스캔 데이터를 그 옆에 띄웠다.


"그런데 스캔 결과는? 1.2미터. 정확히 30센티미터가 비어. 1796년엔 있었던 30센티의 공간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거지. 누군가 바닥을 높여서 덮어버린 거야."


시간 가는 줄 몰르고 열중한 탓에 어느새 퇴근 시간이 한참은 지나버렸지만, 이준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엄청난 흥분과 밀려오는 도파민에 정신이 없었고, 갑자기 머리를 쓰느라 두통 마저 생겼다.

이준은 자신이 분석한 결과를 급하게 교무수첩에 휘갈겨 적었다.

그가 알아낸 것은 다음과 같았다.


레이저 스캔 분석 결과: 동북공심돈의 지하 기초 깊이가 의궤 기록(1.5m)보다 0.3m 얕다. 무언가가 채워져 있다.

열화상 분석 결과: 낮 동안 태양열에 데워진 지표면 중, 해당 0.3m 구역만 밤이 되자 급격히 식어 푸른색(Cold Spot)으로 나타난다.


'이건 뭘까.. 흙이나 돌일리 없어..'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이준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포털 사이트를 켜서 열 전도율을 검색해보았다.

'콘크리트의 열전도율은 대체로 1.4~2.0 W/m·K'라는 정보를 얻었다.

주변 콘크리트 구조물의 열화상 분석 결과를 비교해보자, 똑같이 푸른색을 띠는 걸 확인했다.

'흙이나 돌이 아니다. 열전도율이 높은 철근 콘크리트다.'


열화상 분석 결과에 다음 문장을 추가했다.

'열전도율이 높은 철근 콘크리트로 추정'


동북공심돈의 지하 깊이는 의궤 기록에 따르면 1.5m이다. 하지만, 실제는 기록보다 0.3.m가 얕다. 0.3m의 무언가가 철근 콘크리트로 덮여져있다. 화성은 소중한 문화재다. 그런데 철근 콘크리트로 덮여져있다...?


이준은 머리를 굴렸다.


1970년대 복원 당시, 정부의 "빨리 복원하라"는 지시로 인해 시간과 예산 부족으로 완벽하게 전통 기법을 쓰지 못하고 콘크리트나 현대식 석재를 섞어 쓴 구간이 많았다. 파괴된 잔해 위에 그대로 흙을 덮고 새 건물을 올린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1796년의 무언가가 1970년대 복원 공사 중에 '알 수 없는 지하 구조물'로 발견되었으나, 그냥 콘크리트로 덮어버렸다면?


이준은 가설을 세워보았다.


1975년 복원 당시, 인부들은 땅을 파다가 기이한 지하 구조물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게 세상에 나오면 곤란하다"는 기득권의 지시로 그 위를 대량의 콘크리트로 영원히 공구리쳐버렸다면?


그는 큰 소리로 외쳤다.

"1975년 화성 복원 공사 때... 정부는 지하에서 뭔가를 발견했어. 그리고 꺼낸 게 아니라 군용 콘크리트로 덮어버렸어. 왜?"


이준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발견한 자료들을 USB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가설도 함께. 그리고 그 USB를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30cm의 오차. 그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누군가 필사적으로 덮으려 했던 '침묵의 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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