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의심

by 샤프

이준의 자취방

머리가 아프다. 지끈 지끈 아프다.

이준은 두통약 두 개를 입 안에 털어놓고 물을 마셨다.

며칠 전 이준은 자신의 발견에 흥분했다. 그리고 날이 밝는 대로 문화재청에 정밀 조사를 요청했다.


이준이 친절하게 자신이 발견한 내용과 정보들을 상세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담당 공무원은 피곤한 민원을 받은 마냥 행동했다.

이준 역시 공무원들에게 쏟아지는 악성 민원들이 얼마나 피곤하고 골치 아픈지 잘 아는 처지지만,

자신의 놀라운 발견을 성가신 민원으로 치부하는 태도에 부아가 치밀었다.


며칠에 걸친 통화에 담당자는 이준에게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냈다.


이준은 다른 방법을 찾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며칠 밤을 새서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기세로 공부를 했다면 진작에 박사 학위를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헛웃음이 나왔다.


이준은 모니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모니터 화면에는 <국민신문고: 문화재 훼손 및 부실 복원 의심 신고> 접수 완료 창이 떠 있다.


첨부 파일 목록: [동북공심돈_LiDAR_의궤_비교분석.pdf (4.2GB)].


이준은 생각했다.

'단순한 민원이 아니야. 측량 데이터와 문헌 고증을 완벽하게 갖춘, 학자로서의 명운을 건 5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야.'


떨리는 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하면서 이준이 말했다.

"이 정도 증거면 무시 못 해. 최소한 현장 조사는 나와야 할 거야."


하지만 이준의 기대는 단 3시간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분리수거를 하면서도, 밥을 지으면서도, 중간 중간 새로고침을 누르며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 순간 새로고침이 완료되었을 때 처리 상태가 [접수]에서 [처리 완료(반려)]로 바뀌어 있었다.


담당 부서: 문화재청 보존국.

반려 사유: [귀하의 제보는 1975년 복원 백서 243페이지의 '지반 보강 공사' 내용과 일치하므로 추가 조사가 불필요함.]


"말이 돼? 4기가바이트짜리 3D 데이터를 3시간 만에 다 검토했다고?"

이준은 서버 로그를 확인했다.


[첨부파일 다운로드 횟수: 0].

그들은 보고서를 열어보지도 않았다. 이건 행정 처리가 아니다.

의도적인 '킬(Kill)'이다.


이준은 다음날 아침 9시에 바로 담당 주무관에게 전화를 걸어 항의했다.

쩔쩔매는 주무관의 목소리 너머로, 수화기를 가로채는 묵직한 목소리가 들린다.


"서이준 씨입니까? 보존국장 김성훈입니다."

이준은 재빨리 녹음 버튼을 눌렀다.


"국장님, 제 보고서 다운로드도 안 하셨더군요. 1975년 백서에는 '잡석'을 채웠다고 되어 있지만, 제 열화상 데이터는 명백히 '철근 콘크리트'를 가리킵니다. 이건 부실 복원이 아니라..."


"이보세요, 서 선생."

김성훈이 이준의 말을 뚝 잘랐다.

화가 나있음이 분명함에도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침착해서 더 위협적이었다.


"자네, 지방대 시간강사 자리도 간신히 유지하다 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나 가르친다지? 학계에서 '음모론자'로 낙인찍힌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이준은 김성훈이 자신의 신상을 자세히 알고 있음에 놀랐지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제 신상이 이 민원과 무슨 상관입니까?"


"상관있지. 공신력 없는 자가 국가 중요 시설을 흠집 내려는 건 '학술적 제기'가 아니라 '테러'야. 75년 복원은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재가 하에 당대 최고의 전문가들이 수행한 과업입니다. 감히 어디서 픽셀 몇 개 깨진 거 들고 와서 50년 된 콘크리트를 뚫자고 덤벼?"


순간 이준의 눈매가 날카로워진다.

헉, 김 국장의 말실수다.

"잠깐만요. 저는 보고서에 '콘크리트를 뚫자'는 말은 쓴 적 없습니다. 그냥 '비파괴 검사'를 요청했을 뿐인데요. 제가 뚫고 싶어 하는 걸... 어떻게 아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짧은 침묵이 흘렀다.

침착했던 김 국장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더 이상 업무 방해하면 법무팀 통해서 고발 조치하겠습니다. 알아들었어요?"


이준이 입을 열려고 하자, 곧바로 김국장이 급하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자꾸 이런 허위 사실 유포하면 공무집행방해로 고발합니다. 얌전히 애들이나 가르쳐요."


뚝. 전화가 끊겼다.


이준은 멍하니 끊긴 전화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키보드를 두드렸다.


포털에 접속해 자신이 분석했던 LiDAR 원본 데이터를 다시 다운로드하기 위함이었다.

[Error 403: Forbidden] [귀하의 계정(ID: hist_lee)은 보안 정책 위반으로 접근이 영구 차단되었습니다.]


이준은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공포보다는, 소름 끼치는 확신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단순한 공무원의 복지부동이 아냐."


보통 민원인이 귀찮게 하면 '검토해 보겠습니다' 하고 뭉개는 게 공무원이다.

하지만 김 국장은 보고서를 읽지도 않고 반려했고, 이준이 말하지도 않은 '뚫는다'는 행위를 미리 경계했으며, 전화를 끊자마자 전산망 접근 권한을 삭제했다.

이것은 메뉴얼에 따른 대응이 아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 과잉 반응이다.


이준은 반려된 민원 처리 화면을 캡처하며 중얼거린다.


"저 사람... 1975년 그 바닥 밑에 뭐가 묻혀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어."

"그래서 덮으려는 거야."


전화가 끊기고, 이준은 확신했다.

"저 김 국장이라는 작자... 뭔가 알고 있어. 저 사람이 덮으려는 거야."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자신의 발견이 과거와 현재를 뒤짚을 엄청난 발견이 아닐까 하는 확신이 들었다.


이대로 멈출 수 없지.

이준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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