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다.
글을 쓰는 사람들이 대부분 내향인이라는 통계(?)를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아직 초보 작가지만 그래도 글 잘 쓰시는 진짜 작가들 사이에서 조금이라도 작가로 가망성이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기 때문이다.
말하기 좋아하고 사람 좋아하는 외향인인 나는 글을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사람들을 피하고 혼자 집안에 틀어박혀 내향인이 돼보려 발악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결국 나는 내향인이 되지는 못했다.
가장 진실되고 나다운 글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고 하니, 그냥 타고난 본성을 숨기지 않고 나답게 살기로 했다.
사실 처음에 '경청'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기에 먼저 내가 '경청'과는 거리가 먼 수다쟁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다는 아니겠지만 많은 외향인의 특징 중 하나가 '말이 많다'이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는데,
혼자서는 말을 많이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므로(물론 난 혼자 서도 미친 사람처럼 말을 잘한다) 말할 대상이 필요하고 마침 사람을 좋아하는 외향인에게는 딱 맞는 공식이다. (수다 + 사람 = 외향인)
(최소한 나의 머릿속 이미지의) 외향인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TMI를 끊임없이 말한다. 자신이 겪었던 지난 일, 지금 겪고 있는 일 그리고 앞으로 겪을 일에 대해서 말하고 그때 느꼈던 자신의 감정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할까. 또 내 나름대로 분석해 보니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외향인은 사람과 말하기를 좋아하고 특히 새로운 사람과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사람은 아직 나의 정보를 모르기 때문에 말하기를 좋아하는 외향인은 '이때다' 하며 새로운 사람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리기 위해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이 새로운 사람과 빨리 친구가 되고 싶은 외향인은 (친구란 서로의 데이터를 그만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서는 대화가 필요하고 많은 TMI를 방출하면 할수록 많은 정보가 공유되고 그만큼 빨리 친근감을 느껴 빨리 친구가 될 수 있다. 물론 낯선 사람과 빨리 친해지기를 거부하는 내향인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든 도망칠 궁리를 하겠지만 말이다.
경청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뭔가 산으로 가는 것 같다.
대표(?) 외향인으로써 말 많은 외향인들의 심리를 조금 대변해 보고 싶었다.
대표 외향인으로서 거의 반 평생을 살아온 난 40이 넘어서야 '경청'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는 나의 수다로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삶의 기쁨 중 하나였다.
특히 오디오가 비는 상황을 못 견뎌했는데 대화가 끊기면 사람들이 재미없게 느낄 것 같아서 뭔가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오디오를 채웠던 것 같다.(최근에 알게 되어 조금 놀랐던 사실은 나의 모든 친한 (수십 년 지기) 친구들의 MBTI가 모두 'I'라는 거다.)
'나의 수다로 주변을 즐겁게 해 주자! 이것이 여기 모인 사람들을 위한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다!'
취지는 좋았지만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다.
나는 요즘 '똑똑한 배려를 하는 사람이 되자'를 열심히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중인데, 배려라는 것은 진짜 어려운 일이었다.
나만 좋은 배려는 가짜배려다. 진짜 배려는 상대에 따라 다르고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그것을 기민하게 캐치 해서 적절하게 하는 것이 진짜 배려다.
진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똑똑하게 잘 알아내어 보기엔 가벼워 보여도 깊이 있는 배려를 해야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려면 상대가 어떤 성격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파악해야 한다.
그런데 수다쟁이들은 사람들을 즐겁게(?)해주기 위해 TMI를 방출하느라 사람들의 표정과 말투에 귀를 기울일 여유가 없다. 그들이 뭘 원하는지 절대 캐치하지 못한다.
일단 들어야 한다. 아무리 느리고 재미없고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일지라도 잘 듣고 그 데이터를 머리에 차곡차곡 정리해서 쌓아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라. 자신의 말을 진지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경청하는 당신의 모습에 또 작은 배려에 상대방은 사랑에 빠질 것이다.
예전에 내 인간관계가 박살 났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그들을 좋아하는 만큼 최선을 다했다. 그들을 만났을 때 기쁘게 해주는 것 그리고 내가 가진 에너지와 물질 적인 것을 기꺼이 제공하는 것이 최고의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가짜 배려였다. 내 생각에만 빠져서 그들을 관찰하지 못했다. 그들이 진짜로 원하는 것은 사실 다른 것 이었을 것이다. 그 불편한 마음을 나에게 표현해 주었더라면 그래서 내가 진짜 배려가 뭔지 그때 알았다면 끝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는 진정한 경청과 배려에 대해 매일 고심하는 진중한 사람이 되었으니 나쁘지 만은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하다.
옛 성인들의 말씀이 생각난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이 인싸가 된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내가 원하는 배려를 하는 당신은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다.
나를 존중해 주는 사람이 나에게 최고로 잘 맞는 사람이고 그 사람과 오래 함께하고 싶어질 것이다.
수다보다 경청이 먼저다! 이것만 기억하면 인싸가 될 수 있다. 혹여 내가 아무리 재미없는 사람이라도 인싸와 앗싸의 중간 라인 정도는 걸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수다'보다 '경청'에 힘쓰다 보니 뭔가 나의 인기가 조금씩 상승하는 것이 느껴진다.
말을 안 하는 대신 그만큼 글로 표현하게 되니 글도 더 열심히 쓰게 되고 속은 여전히 외향이지만 겉으로는 '내향인 아니냐'는 소리도 듣곤 하니 반은 내향인이 된 것 같다. 작가로서의 재능이 한 뼘 오른 거 같아서 내심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