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순전히 나의 자유 의지로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자의적 아싸'라고 할 수 있겠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내 인생의 대부분을 그렇게 살았다.
타인에게 에너지와 시간과 열정을 쏟아부으면서...
인간은 모두 똑같은 시간을 부여받는다.(죽을 땐 다를 수 있지만)
같은 40년을 살았는데 누구는 정신이나 능력이 고차원인 사람이 있고,
나처럼 30대의 나 혹은 20대의 나와 별반 차이가 없는 40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도 있다.
요즘 고립된 삶을 살면서 그 둘의 차이를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사람의 타고난 기질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환경적으로 익숙한 상황에서 고착된 성격, 특히나 중년을 바라보는 내 나이에는
더욱 변화가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확실히 달라졌다.
우연히 3~4년 전에 내 브런치 서랍장에 끄적여 놓은
'이런 사람이 되자' 대충 이런 느낌의 목록을 다시 읽게 되었는데,
읽고 나서 정말 깜짝 놀랐다.
내용은 이랬다.
사실 이 목록의 진짜 제목은 조금 웃기게도 '남은 생애 동안 내가 꼭 지킬 것!!'이었다.
벌써 몇 해 전 글이지만 그 당시 어떤 심정으로 써 내려갔는지 기억이 난다.
아마 이 목록에 적힌 상황과 같은 실수들을 반복하면서 나 자신을 책망하며 썼을 것이다.
얼마나 절박했는지는 제목을 보면 알 것 같다.(꼭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그때의 난 이 수많은 목록 중 어느 한 가지도 지키지 못하는 덜 된 인간이었다.
그래서 그 목록을 작성하는 내내 '내가 진짜 이렇게 살 수 있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맞아?'
'이거 다 지키다가 너무 재미없는 냉혈한이 되는 거 아냐?'라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더랬다.
그리고 수년의 시간이 흘렀고, 이 글의 존재도 잊었다.
그 시간 동안 난 분명히 다짐한 대로 다 지키며 살지 못했다. 실수와 후회를 반복하는 일상이었다.
왜냐면, 인간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나의 멘탈과 인간애가 말라 비틀어 타들어가는 사건들을 수차례 겪고, 타인과 외부에 쏟는 내 에너지가 바닥을 보이고 나서야,
뭔가 내 인생이 잘 못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바쁘고 힘들게 살고 있는 거 같은데, 왜 난 발전이 없는가?'
그리고 이런 고뇌에 빠질 때마다 느꼈던 뿌였던 생각들이 점차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아끼고 아껴서 나에게 썼을 때 발전할 수 있다.
자기 분야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든 에너지가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
내가 작성한 항목 중 어느 한 개도 고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난 내 인생의 대부분을 그 사람들과 정반대의 삶을 살고 있었다.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얘기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는 것이다.
지금 그 목록들을 읽으면서 난 한치의 의구심이 들지 않는다는 것에 놀랐다.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맞잖아' '과거의 난 이랬구나?' '이 사람은 뭔가? 외계인?'
완전히 다른 사람 대하듯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마치 몇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완전히 타인처럼 느껴졌다. 신기하고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예전의 나는 복받치는 감정으로 이런 목록들을 써내려 갔겠지.
그리고 달라지고 싶다고 노력하면서도 잘 되지 않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받은 크고 작은 상처들, 고민들이 내 정신을 지배하며 일상을 망치는 일이 수차례고,
이미 애초에 틀려먹은 상대와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많은 감정과 에너지와 시간을 쓰면서 말이다.
그런 속상한 마음들이 쌓이고, 나의 다짐과 노력들이 쌓이고 계속 생각하고 반성하고 나 자신과 행복에 대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공부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단단해지고 결국 지금의 내가 되었다.
인간관계 지옥에 시달리고 미숙한 감정 컨트롤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노예가 되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반은 타의적이고 반은 자의적인 고립을 선택했었다.
처음엔, 울리지 않는 내 전화기가 내 카톡창이 서글펐다. 어느 단톡방 그룹에도 속해있지 않는 것이 참으로 어색하고 비정상적인 일상을 사는 사람 같았다.
그럼에도 사람이 그리워서 가끔 카페에 가서 작업을 했다.
둘씩 셋씩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타인들 사이에서 혼자 있는 내가 루저같이 느껴졌던 때가 있었다.
만날 사람이 없어서, 연락 오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가 싫은데도 타의에 의해 고립된 사람들은
약자이기 때문에 외롭고 힘들다. 마음은 먹었지만 그래도 난 아직 약자였다.
그러다가 점점 깨닫게 되었다.
혼자 있어도 내면이 단단하고 나의 목표가 뚜렷하여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사람들은 강자이고 외롭지 않고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관계를 붙잡으려고 안달하지 않고 혼자의 시간을 보내며 나를 되돌아보고 내면의 힘을 기른다.
차분한 마음으로 기다리다 보면 내가 연락하지 않아도 하나둘씩 안부 연락을 해 온다.
난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기쁘게 그들을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연락이 뜸해져도 조급해할 필요 없이 묵묵히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상상하는 목표에 이르게 되고 이상적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일에 몰두하는 매력적인 사람은 사실 노력하지 않아도 주변에 좋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거친 산속을 헤매다 상처도 입고 지치기도 했지만 결국 길을 찾은 느낌이다.
자의적 아싸가 된 지금 내 정신은 몇 해 전보다 훨씬 안정적이다.
작업들도 매일 잘해나가고 있고 집안 일과 아이들에게도 더 신경 쓴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니 차분히 목표들을 정하고 실천해 나갈 수 있어서 좋다.
쓸데없는 감정낭비 없이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온전히 나와 내 가족에게 쓰는 일은, 생각보다 높은 안정감과 만족감을 주는 일이었다.
누군가 몸과 정신이 지쳐있다면, 괜찮아질 때까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극 외향형인 나도 해낸 일이니 누구라도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이런 내가 마음에 들기 때문에
당분간 혹은 꽤 긴 세월을 자의적 아싸로 지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