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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Sep 13. 2022

'결혼의 강'은 되돌아올 다리가 없다.

결혼의 강을 건넌 지 13년이 되었다.


이 강은 한 번 건너오면 엔간해서는 다시 반대편으로 갈 수 없다.

자율성과 주체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성인이 된 이후 세상의 무수한 선택지 속에서 자유롭게 이동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데, 순간의 판단으로 

'응? 이 다리는 뭐지? 한 번 건너볼까?'

하고 결혼의 강을 건너면서 인간의 타고난 권리들을 허망하게 놓아버리는 실수를 하게 되는 것이다.


내 글에서 너무나 지겹게 외쳐댄 탓에 나조차도 지겹지만, 다시 한번 말하자면 결혼 전까지 내 인생에는 (무모한 계획 포함) 참으로 많은 계획들이 있었다. 

13년이 지난 지금 난, 내가 설계했던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살고 있다.


가끔 잘 때 이런 꿈을 꾸는데, 꿈속에서 난 아직 싱글이고 남편은 나에게 프러포즈를 한다. 

그러면 난 당차게 '노우!'를 외치며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온다. 

'아, 신난다. 이제 내가 계획한 대로의 삶을 살아야지!'

막 한창 신날 즈음 화들짝 꿈에서 깬다.

'아쒸, 나 결혼도 했고 벌써 애도 둘이나 키운 지 십 년이 넘었네'

꿈이 깨고 찰나에 느껴지는 10년 이상의 세월을 워프한 듯한 기분.

내 잃어버린 10여 년을 생각하니 그렇게 허탈할 수가 없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전업주부에게 극히 드물게도 평일 (남들의) 퇴근시간 즈음에 지하철 역사 근처의 푸드코트에서 혼자 밥을 먹게 된 적이 있었다.

막 일을 마치고 끼니를 때우느라 푸드코트에서 혼밥을 하는 젊은 회사원들이 드문드문 보였는데, 그 사이에 서 돼지불백을 먹는 내 모습이 뭔가 어색하고 부끄러운 것 같아서, 나도 뭔가 퇴근 후 늦은 밥을 먹는 회사원인 양 그들처럼 주섬주섬 휴대전화를 꺼내 유튭을 보며 밥을 먹었더랬다.

별것 아닌 이 상황은 나에게 꽤 신선함을 주었는데,

어쩐지 난 정말 싱글이고, 방금 전까지 회사에서 미팅을 끝내고 돌아오는 퇴근길에, 오늘도 빡센 하루를 보낸 나에게 주는 보상인 듯 무심하게 유튭을 시청하면서 먹는 따뜻한 저녁 한 끼.

'아...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다. 오늘 업무는 정말 토 나왔어. 하지만 잘 했다 나 자신'

이렇게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게 들뜨고 뭔가 나의 또 다른 인격이 제2의 삶을 사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나의 두 가지 삶.

결혼을 하여 전업주부로서 남편을 뒷바라지하고 아이들을 열심히 키우며 나의 대부분의 시간을 나보다 가족을 위해 쓰는 것이 당연한 삶. 돈을 벌지 않아도 금전적으로 여유가 있는 안정된 삶.

또 다른 인생은, 본가를 나와 혼자 살면서 디자이너로서 또는 어떤 전문적인 일의 커리어 쌓기에 매진하며 하루의 24시간을 오롯이 나의 성공과 미래를 위해서 쓰는 조금은 외롭고 궁핍하지만 열정적인 삶.


난 결혼의 강을 건너왔기 때문에 그 이후의 다른 나의 삶은 사실 잘 상상이 안된다.

과연 어느 삶이 나에게 더 행복했을까?


얼마 전 넷플에서 '두 인생을 살아봐'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앞이 창창한 여학생이 졸업 전 어떤 썸남이랑 불같은 하루를 보내고 졸업파티 날 화장실에서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한 후 임신인 경우와 임신이 아닌 경우의 두 가지 인생을 보여주는 내용의 영화였다. 

결국에 이 여자의 인생은 어떻게 되려나.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지켜보았는데,

임신이 아닌 경우의 여자는 예정대로 친구와 함께 뉴욕으로 떠났고 구직활동 끝에 큰 애니메이션 회사에 입사하여 자신의 재능을 펼치고 멋진 남자친구까지 생겨 청춘을 제대로 즐기며 살게 된다.

임신인 경우의 여자는 뉴욕라이프의 꿈을 포기하고 출산 후 예상보다 힘든 육아를 하게 되고 자신은 함께 하지 못한 뉴욕의 자유로운 삶을 보내고 있는 친구의 SNS를 보며 절망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며 엄마로서의 삶도 열심히 살아간다.


'에구 결국 그럴 줄 알았다. 나 같아도 창창한 나이에 애 키우는 거보다 뉴욕 가서 본인이 하고 싶은 일 실컷 하고 멋진 남친도 사귀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훨씬 행복하겠지... 너무 뻔한 스토리이려나...?'


 화려하고 신나는 졸업파티, 이 영화의 시작부터가 밝았으므로, 이 영화의 엔딩 또한 결코 어둡지 않았다.

갑자기 애만 키우던 평범한 여자의 인생에 대 반전이 일어난다. 아이가 어느 정도 크자, 여자는 아이 때문에 포기했던 창작의 열정을 불태운다. 그리하여 결국 공모전에 출품한 자신의 애니메이션이 상을 받게 되고 영화제에도 상영되어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어찌나 예상치 못했던 감동 스토리던지 눈물이 다 날뻔했다. 휴우...

결론은 두 가지 인생 모두, 크고 작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종국에는 둘 다 일도 성공하고 남자도 얻으며 행복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에이 뭐야... 결혼해서 애 낳아도 결국에 잘 되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하지만 현실은 영화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거. 이 세상의 어른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주변에 결혼을 안 한 늙은 청춘들이 꽤 있다. 

그들은 행복할까?

본인들의 당연한 자유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 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거기에서 오는 행복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를 비롯한 주변의 유부녀 친구들이 '너만은 절대 결혼하지 말라'며 부러움에 절규하는 순간에만 어설프게 느낄 뿐일지도.

실상은 본인들이 건너보지 못한 결혼의 강에 대한 동경으로 이따금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질 때도 있으려나?


강을 건너 본 후에 결정을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렇다고 결혼 후에 이거 아니다 싶어서 쉽게 이혼을 할 수도 없고... 사실 이혼한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행복해 보이진 않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진대... 왜 우리 옛날 부모님들은 무조건 결혼을 해야 한다!라고 하셨을까? 본인들은 한순간도 결혼을 후회한 적이 없었단 말인가? 아마도 그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도대체 왜 결혼이 이런 개떡... 인지 콩떡인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결혼을 해야 하는 것처럼 대다수의 어른들과 대중매체들은 말해 왔을까?

이런 환경 속에서 무의식의 세뇌를 당하며 자라온 나.

사귄 지 2주 만에 남편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결혼의 강이 한 번 건너면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강인 줄도 모르고 2초 만에 잽싸게 '오케이'를 외쳤다.


'아, 13년 전의 나에게 찾아가 등짝 스매싱을 날리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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