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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샤프펜 Sep 17. 2022

엄마의 '100퍼센트' 에너지.

자식을 낳아 기르는 일이란?

열심히 최선을 다해 키워야 겨우 본전치기다.

아이를 고통이 없이 출산하는 산모는 이 세상에 없다.

아무리 애를 개차반으로 키운 엄마라도 아이를 낳을 때는 생사를 오가는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 수고는 아무도 쳐주지 않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후에 엄마가 희생을 게을리하면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고, 그 질책은 모두 엄마에게 돌아간다.

엄마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아이를 낳고도 자신의 뼈와 살을 갈아 넣어 아이를 길러야 하고 그리고 죽을 때까지 내 아이의 안위를 걱정하며 눈을 감는다.


우리 아이가 처음 내게 왔을 때 나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어떤 감정을 느꼈다.


'이 생명을 무사히 지켜내는 것이 내 평생의 숙제구나' 


그것은 엄청난 무게의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이제부터 나의 몸은 내 몸이 아니고 이 아이를 지켜야 하는 몸뚱이로서 스스로 다치지 않게, 아프지 않게 조심해야 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꼭 지켜야 하는 것은 바로 '파파 할머니가 될 때까지 난 절대 죽으면 안된다' 였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아이를 낳고 크고 작은 위험에 처했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내가 여기서 잘못되면 우리 자식들은 누가 키우지?'이다. 

결혼 전 칠렐레 팔렐레 지 몸을 위험천만한 상황에 밥 먹듯 노출시키며 '청춘은 즐겨야 제맛'이라는 명목 아래 밤 낮 없이 엄마에게 걱정과 불안을 끼쳤던 망나니 같던 난, 이제 혹여 손가락 하나라도 다쳐 우리 아이를 케어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매사에 몸을 사리는 소심쟁이가 되었다.

 아이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것에 나의 모든 정신이 초집중된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의 걱정과 사랑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서 10세가 된다.

'자식 농사 10년이라는 말이 있댄다'

10년만 잘 키우면 그다음부터는 숨 좀 돌려도 된다는 말인 거 같다.

엄마도 사람인데,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시간과 에너지를 써도 된다는 이야기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난 지금 12세와 10세 딸들을 키우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만 해 놓았던 글쓰기도 올해부터는 열심히 해보고 싶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학원과 학교에서 짬짬이 시간 강사로 일을 했던 친한 동생은 둘째가 10살 즈음 되었을 때 파이팅 넘치는 의지로 임용고시 공부를 시작하였고, 지금은 그 빡세다는 중3 담임 자리까지 맡아 밤낮으로 일과 공부 육아로 더욱 바쁘고 알찬 삶을 살고 있다.

 또 박사논문을 준비하며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던 친구는 첫째 2학년 때,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반에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쇼킹한 이야기를 듣고 강사 일도 다 접고 박사학위도 무기한 보류한 채 아이의 친구 만들어주기에 전념했었다.

이 친구도 아이가 고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직업학교 교수로 아예 취업을 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풀로 일하고 당당히 월급을 받았다.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지금은 미안한 마음보다 내가 번 돈으로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게 많아져서 행복하다고 했다.

일과 학업 그리고 육아까지 병행하느라 힘들었을 친구가 아이에 대한 미안함까지 더해져 그때 얼마나 속상하고 힘들었을지...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걱정을 마음에 품고도 자신의 커리어를 놓지 않으려고 노력한 이 두 사람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제는 이만큼 컸으니 아이들 걱정은 그만하고 죄책감도 벗어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렴. 진짜 수고했다. 


아직도 자식농사를 못 끝낸 늦둥이 엄마들이 주변에 꽤 있다.

늦둥이를 낳으면, 남들 10년에 끝날 자식 농사가 15년 이상 혹은 20년 가까이 이어질 수도 있다.

정말 환장할 노릇이다.


첫째를 낳고도 프리로 나름 잘나가던 디자이너 친구도 늦둥이 둘째를 낳고 완전 좌절에 빠졌었다. 그리고 그 좌절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자식 농사 짧아야 10년. 10년은 꽤 긴 시간이다... 너무 슬픈 이야기라, 친구가 이 글을 읽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프리랜서는 일을 쉬면 내 자리는 어떤 운 좋은 사람이 꽤 차고, 난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서 영원히 일을 다시 받을 수 없어!!!' 

프리로 일하다 육아로 망한 친구들의 외침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사실 나도 프리로 일을 하다 둘째를 낳고 어쩔 수 없이 일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몇 년을 잊혀진 존재로 있다가 둘째를 얼집에 보낸 후 예전 담당자에게 눈물 없이 읽을 수 없는 절절한 이메일을 보냈더랬다.

그리고 1년 후 그 담당자에게 다시 일거리를 받게 된 기적 같은 일화가 있다.


대부분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아이가 잘 자라서 좋은 어른이 되길 바란다.

아이가 잘 자라기 위해서는 엄마의 에너지를 몇 할이나 할애해야 할까?

어릴 때는 90%? 10세 이후는 60%? 20세 이후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 에너지를 아이에게 얼마나 퍼부어야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는지. 

또 좋은 어른의 기준은 무엇인지.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나의 99%를 쏟아부었는데 좋은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면? 

혹은 '99프로 정도는 쏟아부어야 성공하는 어른이 된다'라는 확신이 있을 때 진짜로 20년 이상 나의 에너지를 99프로 쏟아부어 아이를 성공적인 어른으로 키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이도 자신의 성공을 위해 엄마의 그런 희생을 원할까? 그렇다고 아이의 완벽한 성공의 정의를 누가 정할 수 있을까?

어느 것도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둘째가 10세가 된 나는 나의 귀한 24시간과 100%의 에너지 중에 어느 정도는 나에게 할애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이 정도 나눠주면 되겠지? 요 정도는 내가 써도 되려나? 하며 나의 양심과 서로 간을 보며 매시간 실랑이 중이다. 

하지만 이런 고민도 곧 그만하려 한다.

10년을, 자그마치 10년을 내 온 에너지를 쏟아 사랑으로 키웠다면 그 후에 나의 부족한 애정으로 인해 아이가 잘못 클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지 않을까? 좋은 어른의 기준이 어느 정도 높은 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나쁜 어른으로는 자라지 않을 거라고 믿고 싶다.

만약 나쁜 어른이 되었다면, 10년 동안 나의 노력이 많이 부족했거나, 아주 지독히 나쁜 유전자의 영향일 것이다. 그러나 그 유전자도 결국 나에게서 온 것일 테니까. 너무 슬퍼하지는 않겠다.

그래야 지금 나에게 주어진 몇 퍼센트의 소중한 시간과 에너지에 집중할 수 있고 그래야 내가 행복할 수 있고, 그리고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테니까. 


세상의 엄마들, 전업맘과 워킹맘을 포함한 모든 엄마들... 나의 시간과 에너지의 몇할을 아이에게 주는지 연연하지 말아요.

 아이를 사랑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마음으로 키웠다면 아이도 엄마의 진심을 알아줄 거예요.

더 이상 마음 졸이지 말고 아이에 대한 죄책감도 내려놓고 이제 자신의 일을 해도 됩니다. 

고통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성공적인 출산을 한 당신은 그것 하나 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만 합니다.

이미 너무나 '좋은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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