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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Apr 23. 2019

디자이너의 토론.


"너 혼자 반대하니 뭔가 이상하지 않아?"

"우리 너무 의견 일치가 안되는데..."

"그냥 다수의 의견에 따를게요."






새로운 C를 위한 토론.





디자이너의 토론.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서로 협력한다. 협력을 하다 보면 이견이 생기고, 그 이견을 시발점으로 토론이 벌어진다. 토론은 나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알아보고 그 과정에서 더 합리적인 것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디자인의 결과물을 접하다 보면 조금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 모두의 생각으로 결정된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의 생각으로 결정된 것인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것이 모두의 생각인가? 한 사람의 생각인가? 모두의 생각이면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한 사람의 생각이면 왜 한 사람의 생각으로 방향을 결정했을까?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각자의 생각이 다르고 서로의 다름에서 생각의 다양성을 추구한다. 그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토론이다. 토론은  A와 B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A와 B에 대해 논하고 다시 C를 생각해내는 과정으로 가야 한다. 토론은 결정이 아닌 더 좋은 것을 생각해내기 위한 과정이다. 그렇기에 디자이너의 토론은 매우 중요하며 의식적이야 한다. 토론 의식이 높은 조직과 그렇지 못한 조직의 사고력은 매우 차이가 난다.




토론의 방식.

토론이 허용되는 조직이 있는 반면, 그렇지 않은 조직도 존재한다. 토론은 기본적으로 수평적 관계에서 그 의미가 있다. 토론은 자신의 생각, 주관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상호 존중이 있어야 한다. 또 공동의 목표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주장은 취향이 아니어야 하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가 있어야 한다. 토론에는 전체적인 흐름을 이끄는 사회자가 있어야 한다. 사회자는 개인의 감정이나 취향을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 제동을 걸어야 하고, 논점을 벗어날 경우 다시 방향을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악마의 대변인이다. 악마의 대변인이란 다수를 향해 의도적으로 비판과 반론을 제가 하는 사람을 말한다. 악마의 대변인은 비관론자나 부정적인 사람이 아닌 사회자와 같은 하나의 역할이다. 악마의 대변인은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인정하는 시성에서 일부러 후보자의 결점을 지적하는 역할이었다. 악마의 대변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반론의 자유가 인정되는 토론과 그렇지 않은 토론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결정을 정해놓고 하는 토론은 의미가 없다. 반박과 반증이 허용될 때 우리는 의식적인 토론을 할 수 있다. 의견 교환에 벽이 없어야 의견의 질이 높아진다. 누구나 반대할 권리가 인정되는 토론이어야 한다. 간혹 토론 중 반대 의견을 말할 때 팀웍을 깨고 분위기를 해치는 사람으로 몰아가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이미 결정을 정해놓고 하는 토론이다. 이런 토론은 의견의 질을 떨어트리고 조직의 토론 수준을 후퇴시킨다. 다시 말하지만 토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대할 권리다.




토론은 A와 B의 결정이 아닌 새로운 C의 과정.

결정을 정해 놓고 하는 토론은 의미가 없다. 토론은 A 또는 B를 결정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C를 생각해내는 제안, 비판, 재제안 과정으로 가야 한다. A와 B 두 가지로 결정을 제한하는 것은 토론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토론은 제한적 결정을 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C를 재제안하는 과정으로 가야 한다. 제한적인 결정은 생각의 틀을 닫게 만든다. A와 B 둘 중에 결정은 둘 중 하나는 옳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하지만 둘 다 틀렸다면 우린 틀린 것 중에 그나마 덜 틀린 것을 고르게 될 뿐이다. 그렇기에 제한적 결정이 아닌 새로운 C의 과정으로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그 과정은 비판적이어야 하고, 비판에는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옳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시 생각하는 과정에서 바뀔 수 있다. 바로 토론이 결정이 아닌 과정으로 가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옳은 것과 틀린 것에 대해 생각할 때 사회적 고정관념을 정해놓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옳고, 틀린지에 대한 생각의 과정을 거치지는 않는다. 토론은 생각의 과정이다. 예전에 옳았던 것이 지금 틀릴 수 있고, 예전에 틀린 것이 지금은 옳을 때가 있다. 토론은 옳다고 생각했던 것,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생각의 과정이다.




토론을 해야 하는 이유.

다수의 생각은 항상 옳다? 아니다 다수의 생각도 틀릴 경우가 있다. 토론은 균형이다. 배가 한쪽으로 기울면 침몰하듯 생각도 한쪽으로 기울면 편협해진다. 토론을 하는 이유는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어 편협해지는 최악을 피하고 그 과정에서 균형을 찾고 새로운 대안을 찾기 위함이다. 토론에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빠르고 심플함을 추구하는 요즘 토론보다 빠른 의사결정을 추구한다. 반대를 반복하고 비판을 제기하면 무언가 잘못되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게 점점 반대할 권리를 박탈당한다. 하지만 만장일치가 되는 것이 더 잘못된 것 아닌가? 어떻게 생각이 만장일치가 되는가? 만장일치란 누군가는 생각을 맞춰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아무런 반론과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때 또한 마찬가지다. 효율을 추구하는 요즘 토론이 소모적이고 비효율적 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속도보다 방향에 대한 부분에 더 집중해서 토론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방향을 위한 토론은 우리의 의식을 더 발전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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