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은 많을수록 좋지!"
"근데 별반 다른 게 없는데?"
"레이아웃도 다르고 컬러도 다르잖아!"
시각적 커뮤니케이션.
나는 시안을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으로 정의한다. 내 경험상 제로베이스에서는 아무도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물론 기획의 방향이나 전략은 논할 수는 있어도, 디자인 아웃풋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지 맵을 만들고 리서치를 통해 레퍼런스 맵을 만들어도 아웃풋에 대한 예상은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르다. 겉으로는 "어떻게 나올지 알겠다."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라는 질문이 더 강하다. 나는 이런 상황을 '아이디어가 장막에 가려져 있다.'라고 얘기한다. 장막에 가려진 아이디어는 아무리 설명해도 상대에게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두운 방안 실루엣처럼 보일 듯 말 듯 아리송하다. 그럴 경우 장막을 걷어내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나는 초안을 빠르게 만드는 것을 선호한다. 빠르게 나온 초안은 프로젝트 초반 커뮤니케이션을 활성화시킨다. 또 초안은 방향을 잡는데 가지치기가 가능하다. 처음부터 방향을 제시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원하는 방향이 아닌 것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면 원하는 방향을 잡기가 더 수월하다. 프로젝트 초기의 시안은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 방향성의 협의를 위한 것이다. 바로 아이디어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제로베이스에서 방향성이나 아이디어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사람들도 시안이 나오면 말문이 트인 아기처럼 피드백을 쏟아낸다. "그래 이게 내가 말한 방향이야!", "내가 생각한 거랑은 많이 다른데.", "이게 맞는 건지 잘 모르겠어." 피드백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느 피드백을 받더라도 그 시점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무 반응이 없든 그 시점에서 다시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할 수 있다. 제로베이스에서 아무 생각 없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보다는 생산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시안의 역할을 시각적 커뮤니케이션이라 정의한다. 그렇게 계속 커뮤니케이션을 반영하면서 시안은 디벨롭되는 것이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비교 대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보자 나에게 필요한 사소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이것과 저것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어떤 것이 나에게 더 잘 맞는지 비교해 보고 구매하지 않던가? 시안도 마찬가지다. 합리적인 결정을 위해서는 비교 대상이 필요하고, 어느 하나 결정하기 위해서는 확신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안은 비교 가능한 A안과, B안이 필요하다. 보통 실무에서 시안 리뷰를 할 때면 A안을 선호하는 시안으로 설정하고 B안은 서포트하는 버리는 시안으로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 방법이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하는 A안과 B안은 어느 시안을 결정할지 고민을 안겨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어야만 의미가 있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물건을 살 때 최종 결정하는 두 가지 물건의 경쟁력을! 다른 하나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게 되면 고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경쟁력이 높다면 고민에 의미가 있고, 더 신중하게 선택할 것이다. 나는 A안과 B안의 고민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A안에 대한 경쟁력이 B안보다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면, B안은 왜 제안하는 가? 대부분 시안 하나만 제안하게 되면 자칫 성의가 없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별로 경쟁력이 없는 B안을 추가로 제안하는 것 아닌가? 비교는 어느 하나가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게 되면 의미가 없다.
시안은 비교할 수 있을 때 그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비교 대상을 많이 제시하는 것은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을 혼란스럽게 한다. 비교 대상이 많아질수록 집중력 또한 떨어진다. 그것의 경쟁력이 별 차이 없는 다수 일 때 더 그렇다. 한 번은 여러 개의 시안을 잡아가는 디자이너를 본 적이 있다. 디자이너는 의기양양하게 시안 리뷰를 갔지만(이유는 모르지만 스스로도 뿌듯해했다.), 전해 듣기론 리뷰 시 분위기는 '그래서 뭘로 결정하라는 거야?'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고 한다. 결국 여러 개 시안중 하나도 고르지 않았다. 누군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 물건을 펼쳐놓고 “원하시는 걸로 고르세요?”라고 한다면 당신은 어느 것을 고를 것인가? 나는 하나도 고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내가 왜 그것을 골라야 하는지, 최소한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 않는 이상은 말이다. 시안은 커뮤니케이션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있어 결정해야 할 것들이 많아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혼란을 유발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집중해서 깊게 생각할 수 있는 화두를 제시하는 것이 좋다. 다수의 시안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 다수의 시안은 오히려 결정을 더 방해한다. 그 다수의 경쟁력이 별반 차이가 없을 때 더 그렇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누구나 한 가지 안만 보고 결정하지 못한다. 최소한 그 안을 비교할 수 있는 다른 안이 있을 때 결정할 수 있는 확신을 심어준다. 비교 경쟁력이 비슷할 때 더 신중히 고민하고 결정한다. 반대로 비교 경쟁력이 낮을 때 고민할 이유가 없다. 더 좋은 것을 고르기 위해 비교하는 것이 아닌가? 비교 경쟁력이 없다면 고민할 이유가 없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초안을 빠르게 제작한다고 앞에서 말했다. 초안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시안이지만, 시안이 디벨롭되어 최종 아웃풋에 도달하게 되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 그 상황에서 더 합리적이고 확신을 가진 결정을 위한다면, 비교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비교 경쟁력이 높을수록 시안에 대한 아웃풋이 올라가고 결정을 위한 고민에 더 신중해진다. 비교 경쟁력이 낮은 시안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결정을 하는 행위는 더 좋은 것을 고르고 그것에 대한 확신을 갖기 위함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비교가 중요하고 비교는 경쟁력이 동등해한다. 생각해보라. 누군가 당신에게 이번 휴가는 하와이와 몰디브, 그리고 하와이와 제주, 총 2가지 비교안을 준다면 당신의 어느 것에 더 신중하게 고민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