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감각이다."
"사용한 컬러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라."
"감각이 없으면 디자인 못한다."
감각적인 디자이너?
논리적인 디자이너?
디자인을 하다 보면 '감이 있다.', '감이 오냐?', '감 잡았냐?'등 흔히들 하는 말 중에 감이라는 애매한 표현이 있다. 정확히 감이 뭔지 설명할 수 없지만, 감이 있어야 디자인을 잘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감이 뭘까? 감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느낌이다. 그런 느낌을 또 감정이라고도 한다. 느끼기 위해서는 감각이 발달해야 한다. 감, 느낌, 감정, 감각 미세한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감각]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하여 바깥의 어떤 자극을 알아차림. 사전적인 의미는 이렇다. 하지만 아직도 주관적 감각을 타인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긴 힘들다. 그 이유는 감정을 통제하는 두뇌 영역에는 언어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감각이 전혀 없는 사람이 감각이 발달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 감각도 학습을 통해 충분히 발달될 수 있다. 개인 경험으로 볼 때 감각을 타고 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변연계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신피질을 통해 언어로 해석된다.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언어밖에 없다. 눈빛이나 몸짓, 눈물, 절규 등 원초적인 표현 방법이 있겠지만, 타인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의식적인 감정표현 방법은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보통 가슴 깊은 곳에서 감정이 느껴진다고 하지만 사실 머리 깊숙한 변연계에서 감정을 느끼고 신피질을 통해 언어로 해석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지금 좋아하는 색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면, 순간 명확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변연계에서는 파랑을 좋아한다고 느끼지만, 아직 신피질에서 명확한 이유를 연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연산이 끝나면 파랑은 바다같이 시원하고, 하늘과 같이 맑아서 좋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아니면 좋아하게 된 과거 계기를 말할 수도 있다. 이처럼 언어영역은 감정영역과 분리되어 있다.
정리해보면 감각은 변연계(감정)에서 나오고, 논리는 신피질(언어)에서 나온다. 감각과 논리를 분리하여 생각하면, 감각에 집중된 디자이너는 논리적으로 설득이 떨어질 수 있고, 논리에 집중된 디자이너는 감정을 자극하는 표현이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감각과 논리는 모두 디자이너가 갖춰야 할 역량이다.
앞서 말했듯이 감각도 학습으로 발달시킬 수가 있고, 논리도 학습으로 발달시킬 수가 있다. 많이 보고 경험하면 감각도 성장한다. 많이 읽고, 많이 쓰면 논리도 성장한다. 본인의 감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그건 그냥 개인의 취향일 수 있다. 논리도 감각적으로 표현할 수 없다면 지루하고 흥미롭지 않을 것이다. 감각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하고, 논리도 감각적으로 표현할 줄 알아한다. 글쓴이는 순간 머릿속에서 감각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가 있다. 그 후에 하는 일은 그 아이디어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일이다. 논리적으로 정리됐을 때만 타인에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과가 익으면 나무 아래로 떨어지는 건 누구나 당연하게 느끼는 감각이다. 하지만 뉴턴은 그 감각을 논리적으로 증명했다.
감각과 논리를 연결하는 것이 반복되면 직관력이라는 게 생긴다.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엘론 머스크 모두 직관력이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직관력이란 건 또 뭘까? [직관력] 판단이나 추리 따위의 사유 작용을 거치지 아니하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능력.
우리도 기본적으로 직관력을 가지고 있다. 문을 열 때 어디 부분을 당겨야 제일 수월 할까? 바로 문고리다. 문고리라서가 아니다. 문고리가 그 위치에 있는 이유는 힘을 줬을 때 가장 적은 힘으로 당길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문고리가 경첩과 대칭되는 위치에 있는 이유다. 누구나 문을 열 때 문고리 부분을 당긴다. 문고리가 없어도 우리는 문고리 부분을 당긴다. 이런 당연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아마 대부분 사람들은 설명하지 못한다. 감각과 논리의 연결을 반복하다 보면,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직관력이 생긴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과 미셸 루트번스타인은 <생각의 탄생>이란 책에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이 직관적으로 가능하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논리적으로 증명하는데 수년이 걸렸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도구로 수학을 사용했다. 논리적으로 증명하지 못했다면, 상대성이론은 학계에 발표되지 못했을 것이다.
디자인은 감각과 논리의 이분법적인 구별이 아니다. 이 둘을 연결하는 것에 의미가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가치가 탄생한다. 인간의 뇌는 감각과 논리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진화하지 않았다. 생존을 위한 수렵채집 시절에는 변연계가 생겨났고, 집단을 이루고 인간의 모습을 갖춘 사피엔스 마지막에서야 신피질이 생겨났다. 하지만 우리는 이 둘의 균형적 사용을 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감각에 집착하지 말자!
논리에 집착하지 말자!
이 둘을 연결하는 것에 힘을 쏟자!
참고도서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셀 루트번스타인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