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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Feb 19. 2019

신뢰하기 어려운 디자이너의 ‘감’.


"감으로 이렇게 했는데요."

"디자인은 감으로!"

"디자인 어렵게 하지 말고 감으로 이렇게!"






디자이너의 방어적 수단
'감'





'감'이라 칭하는 것들.

얼마 전 SNS에 포스팅을 게재했고 많은 공감을 해주셨다. 짧을 글로는 다 말할 수가 없었기에 브런치를 통해 다시 적어본다. 감에 대해 믿지 못하는 이유는 감이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같이 일했던 프로그래머분께서 이런 말을 했다.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는 것은 안 되는 거다.", "됐다 안 됐다 하는 것도 안 되는 거다." 그렇다 감은 맞을 때도 있고 틀릴 때도 있다. 그렇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감이라고 칭하는 것들은 사실 그 감을 주장하는 사람의 경험이다. 그 사람의 경험이 평소 논리적이고 성공을 이끌었던 신뢰할만한 경험이라면 그 사람의 감을 어느 정도 믿는다. 하지만 평소 논리적이지도 않고 이렇다 할 성과가 없는 사람의 감을 믿을 것인가? 이렇게 감이라는 것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가 믿는 것은 감이 아닌 사실 그 사람의 능력이다.

믿는 것은 '감' 보다는 그 사람을 향한 신뢰감이다.


감을 주장하는 사람의 이미지에 따라 신뢰감이 다르다. 신뢰할 만한 사람의 감은 수년간 반복되어온 경험의 노하우이다. 우리가 믿는 것은 단순히 감이라는 감정이 아닌 그 사람의 신뢰 가능한 능력이다. 하지만 능력이 훌륭한 사람의 감도 맞을 때가 있고 틀리기도 한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

감이 생겨나는 과정을 한번 논해보자. 감이 갑자기 생기지는 않는다. 동일한 업에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이라는 것이 생긴다. 감은 오랫동안 축척하고 분석한 일종의 패턴이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는 달인들을 소개하는 프로다. 소개하는 달인들의 업은 다양하다. 나는 그 사람들을 달인이 아니라 장인이라 칭하고 싶다. 그 장인들의 인터뷰를 보면 원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됐어요"는 극히 드물다. 수천수만 번의 오류를 거처 원리를 터득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래 하면 다 그 정도 하지 않아?"라는 사람들 말에 화가 난다는 장인도 있다. 그렇다 우리는 원리를 이해할 때 그 행위를 더 쉽고 빠르게 개선해 나간다.

원리를 반복하다 보면 감이 생긴다.


그럼 다시 디자인 얘기를 해보자. 당신은 원리를 이해합니까? 시니어가 디렉터가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랬다. 주니어 시절 시키는 대로 했다. 설명해줘도 못 알아들은 내 무지함이 또 한몫했다.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응용할 수가 없다. 응용할 수 없으면 그 업을 오래 지속할 수 없다. 아직도 원리를 이해하려 공부하고 연습하는 것은 이 업을 오래 하고 싶기 때문이다. 원리를 모르고 같은 것을 반복해도 감이라는 것은 생긴다. 무엇이든 반복이 계속되면 몸에 익는 법이다. 하지만 그 원리를 설명할 수 없고 응용할 수 없다. 또 원리를 설명하지 못하면 전문성을 주장할 수 없다.




디자이너의 방어적 수단 '감'.

그렇게 디자이너의 감은 점점 직관이나 통찰에서 벗어나 일부 디자이너들의 방어적 수단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원리를 이해 못했던 주니어가 시니어가 되면 감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그 감은 신뢰할만한 것인가? 동료들에게 나의 직관적인 감으로 디자인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그런 행위로 디자인의 업에 대한 전문성을 스스로 깎아먹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예를 들어 그리드 원리에 이해가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 그 디자이너는 매번 프로젝트 진행 시 피보나치수열을 활용한 그리그 시스템으로 1:1.618의 황금비 레이아웃을 구현한다. 그렇게 5년 이상하다 보니 수열을 활용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보통 1:1.6의 황금비를 구현한다. 감이 생긴 것이다.

피보나치수열을 활용하여 황금비를 만들 수 있다.


감은 원리를 통한 반복으로 생기는 것이지 갑자기 생겨나는 초능력이 아니다. 다시 예를 들어본다. 피보나치수열을 활용한 황금비 원리를 아는 시니어가 주니어에게 똑같이 원리를 전수해준다. 이해하지 못했지만 시각적 유사성은 따라 할 수 있다. 계속되는 시니어의 디렉팅에 시각적 유사성이 눈에 익는다. 그렇게 수년간 반복되어 감이 된다. 원리를 모를 뿐 보이는 시각적 황금비는 구현한다. 그런 디자이너의 시안 리뷰는 항상 원리에 대한 설명이 없이 '내가 감으로 이렇게 했는데 왜 트집이야!'라는 뉘앙스로 할 말을 잃는다. 간혹 그 모습은 점을 치는 점쟁이를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는 둘 중 어떤 감을 원하는 걸까?




신뢰하는 것은 감이 아닌 그 사람의 능력.

사람의 감을 신뢰하긴 어렵다. 그 사람의 능력과 경험이 검증되지 못했을 때 더 그렇다. 다시 말하지만 감에 대해 무조건적인 반대를 표하는 것이 아니다. 감이라는 수단 자체가 모두에게 적용되지 않고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국한되다 보니 감이라는 표현을 전반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리스크가 있다는 것이다. 전제 조건 없이 단순하게 질문을 던져보면, 2년 차의 감을 믿을 것인가? 5년 차의 감을 믿을 것인가? 당연히 5년 차 아닌가? 5년의 경험이 더 신뢰할 만하기 때문 아닌가? 우리가 믿을 만한 감은 결국 검증된 능력의 감이다.





감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때 타인이 신뢰할 수 있게 평소 능력으로 검증해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서로 신뢰가 쌓인다면 그 사람의 감은 직관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원리를 모르는 사람들의 방어적 수단이 되지 않기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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