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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Mar 28. 2020

연애는 수학 공식이 아닌데

수학 공식

학창 시절 수학 공식을 달달 외워서 문제를 풀곤 했습니다. 잠꼬대로 수학 공식이 튀어나올 정도로 외우라선생님도 기억납니다.


물론 공식만 안다고 문제를 맞히는 것도 아니고 수학 천재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공식을 알면 계산 시간이 줄어드고 답을 찾을 확률이 높아집니다.

공식을 외웠다는 것은 소위 수학 꼴통이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갖췄다는 의미였습니다.


[근의 공식]

적용할 공식을 잘 알면 답을 찾아나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마치 깜깜하고 복잡한 미로에서 출구로 연결되어 있는 밧줄을 잡고 있는 기분입니다.

애매한 것도 없고 모호한 것도 없습니다. 깔끔하고 명쾌합니다.


연애 공식?

소개팅 이후 다섯 번째 만남인데 이제 고백하면 되나요?
사귀는 사람이 요새 연락도 뜸하고 만나는 것도 귀찮아하는데, 이제 그만 만나야 하나요?


연애에는 답을 알기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그래서 다들 한 번씩은 누군가로부터 연애상담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 연애 조언을 해줍니다. 만인은 만인에 대한 연애 컨설턴트이자 연애 훈수꾼입니다.


우리에게 이렇게 연애 고민이 많은 이유는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는 상태에서 감정이라는 애매모호한 수단으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니 내 행동도 결정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연애에도 공식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더라도 공식에 따라 답을 찾아 행동하면 되니깐요.


예를 들면,

[소개팅 고백 공식]

: 소개팅 횟수 x (선톡 받은 횟수 + 상대방이 먼저 만나자고 한 횟수 X 2)의 합이 20을 넘으면 고백하세요.

[이별 공식]

: 일주일 평균 다투는 횟수 + 기념일 잊어버린 횟수 x 2의 합이 7을 넘기면 헤어지세요.


뭐 이런 식으로, 보편적인 공식이 있다면 차라리 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늘 상대방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 수 없으니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확신이 없습니다.

지금 과감히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단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하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직진인지, 멈춤인지, 혹은 좌회전인지 신호등이라도 만들어주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도, 연애를 하는 중에도 고민은 계속됩니다.


애매함을 정해줬으면

몇 년 전, 한 개그 프로그램에서 일상생활의 애매함을 칼같이 정해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누구나 판단하기 애매하다고 느끼는 소소한 부분을 명확하게 딱딱 나눠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나름 인기 있는 코너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예를 들면,

Q. 설날에 조카들 세뱃돈은 얼마씩 줘야 하나요?

"애매한 거 딱 정해드립니다. 초등학생은 1만 원, 중학생은 2만 원 고등학교 3만 원."

Q. 이별 후 다음 연애까지 얼마나 쉬어야 하나요?

"애매한 거 딱 정해드립니다. 1년 사귀었으면, 1달. 2년 사귀었으면 2달. 3년 사귀었으면 3달."

KBS 2 <개그콘서트>, 애정남

깔끔하게 정해질 수 없는 문제를 자기만의 논리로 칼같이 정리하다 보니 그 특유의 능청스러움에 웃음이 나오곤 했습니다.


복잡한 인간사가 이렇게 명확하게 정해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누군가가 애매한 상황에 나타나 복잡함을 한방에 정리해주면 얼마나 편할까요.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상황에 들어맞는 애매함 정리란 없습니다. 개그 프로는 획일화할  없는 것을 단순하게 정해 버렸기 때문에 웃음 소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연애는 수학 공식이 아닌데

연애는 특히 복잡하고 미묘한 부분이 많습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감정 교류인데 서로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판단이 어렵습니다.

수학 공식처럼 정해진 법칙에 따라 답을 찾아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르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소개팅한 사람들이 첫 번째 만남에 사귈 수도 있고, 한 다섯 번은 만나야 분위기가 무르익을 수도 있습니다.

오래 사귄 연인 사이에 장애물이 생겼을 때 과감히 이별을 말해야 할 수도 있고,

문제를 해결한 다음 다시 노력해서 위기를 극복해나가야 할 수도 있습니다.

연애라는 영역에서 보편타당한 법칙을 찾아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법칙을 찾으려는 습관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모르고, 내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이끄는 확신이 없다 보니 결정을 합리화시킬 수 있는 신비한 공식을 찾으려 합니다.

확신 없는 내 결정에 강제로라도 인과관계를 붙이려고 합니다.

자꾸 마음이 아니라 머리로 하려고 합니다.  


나도 어느샌가 누군가를 만날 때 답을 찾기 편한 나만의 공식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정이 오가는 상황에 우스꽝스러운 공식을 대입하고 있으니 좋은 답이 나올 리 만무합니다.


물론 바보 같은 공식 쉽게 사라지지 않  압니다.

하지만 내가 가진 공식이 아무리 바보 같고 우스꽝스럽더라도,

최소한 중요한 순간에 머뭇거리지 않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힘든 상황에 더 큰 힘과 용기가 나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부디 좋은 사람을 놓치지 않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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