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aun SHK Jun 01. 2022

단팥빵

사소한 위안

거의 매번 단팥빵이었습니다.

 11시가 넘으면 야식을 먹으러 부엌으로 나왔습니다.

부엌 식탁 위에는 빵을 몇 개 담은 봉지가 있습니다.

크림빵과 소보루빵도 있지만 부스럭대며 고르는 것은 거의 항상 단팥빵이었습니다.


학창 시절 의 단골 야식은 단팥빵이었습니다.

새벽까지 공부를 하던 그 시절에는 열심히 문제를 풀다가 밤늦게 달달한 단팥빵으로 배고픔을 해소하는 그 짧은 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식탁에 걸터앉아 조용히 단팥빵을 오물오물 먹던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때였습니다.

단팥빵에 흰 우유 한 모금을 마시며 의자에서 다리를 까딱까딱하는 시간이 좋았습니다.


마지막 남은 빵 조각을 천천히 다 먹을 때까지 아무런 근심과 걱정 없이 니다.

지치고 스트레스받을 때 단팥빵의 달콤함을 맛보면 새로 기운이 충전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대학생이 되고 난 이식으로 단팥빵 먹던 습관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다시 단팥빵을 찾게 된 건 학교를 휴학하고 군복무를 하던 때였습니다.

주말인데 뭐하니? 오늘 면회 와 줄 수 있니?

친구에게 면회를 와 줄 수 있냐는 말을 했습니다.

친구네 집 내가 있던 군부대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어 대단히 가까웠습니다.

유일하게 그 친구 나에게 두 번 회를  친구이기도 합니다.


나는 그 친구를 눈이 펑펑 내리다 그친 토요일날에 불렀습니다.

아침부터 눈을 쓸고나니 진이 빠진 상태라 면회도 하고 싶었고 바깥 음식도 먹고 싶었습니다

친구가 혹시 먹고 싶은 거 있냐고 물어봤을 때 나는 빵이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피자나 치킨도 고 다른 포장 가능한 음식도 많았을 텐데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은 빵이었습니다.

전화로 빵 종류를 얘기하면서 내가 좋아하는 단팥빵도 이름에 올렸습니다. 

...단팥빵 같은거로...소시지빵은 빼고...응응

친구는 양손 가득 빵 봉지를 들고 면회를 와줬습니다. 주말에 일부러 시간내서 그렇게 면회 와주니 너무 고맙고 반가웠니다.

워낙 많은 양을 가져와 며칠간 원없이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부대에 입이 많다보니 빵 금세 동이 났습니다. 정작 나는 한두개 밖에 못 먹어서 당황하긴 했지만 면회 덕분에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학창시절 야식으로 거의 매일 챙겨 먹고 군대 면회오는 친구에게도 부탁을 했던걸 보면 단팥빵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 때면 달달한 간식이 당기곤 는데 나는 그럴 때마다 꼭 단팥빵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나 지쳐있을 때 자주 찾아 먹었나 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단팥빵을 먹지 않습니다.

다른 맛있는 빵들이 많기도 하고

단팥빵의 예측 가능한 맛이 식상해졌습니다. 이제는 입맛에 너무 달다는 생각도 듭니다.


수많은 고급지고 맛있는 빵들 사이에서 투박한 모습에 예측 가능한 맛을 지닌 단팥빵의 입지는 거의 사라졌습니다. 지금 당장 빵집에 가서 빵을 한가득 고르더라도 단팥빵을 집어 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단팥빵을 생각하면 그때 내게 잠시나마 위안을 주었던 순간들이 생각납니다.

단팥빵과 흰 우유를 함께 먹으 근심 걱정이 사라지던 순간떠오릅니다.




아주 작고 소한 것 우리에게 위안을 줄 때가 있습니다.


너무나 사소하고 별거 아니라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것들이 위안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지치고 힘들 때 내가 즐겨 먹던 단팥빵이 그랬듯 누군가에게는 샤워 후의 시원한 맥주 한잔이나, 쇼파에 앉아서 숟가락으로 퍼먹는 아이스크림이나, 주말늦잠 후 끓여 먹는 라면이 소소한 위안이 되어줄 수도 있습니다.


크고 대단한 행복은 일상을 뛰어넘는 이벤트와 함께 오겠지만 조용한 위안은 별것 아닌 일상 속 작은 것들로부터 오기도 합니다.

의자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딱이며 우유와 함께 먹던 단팥빵 한입이 그랬듯 에게 소소한 위로를 건네는 것은 대단히 작고 별일 아닌 일입니다.


사람들마다 각자의 소박한 위안거리가 있니다. 너무나 사소하고 별거 아니라서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도 민망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말입니다.




머릿속이 복잡하거나 스트레스를 받아서 지쳐있을 때, 새로운 체험을 하거나 낯선 공간으로 떠나 기분전환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여건이 허락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너무 지쳐있어서 그런 기운을 내기도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작고 소소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나의 시간을 하나씩 채워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거대한 이벤트로 큰 행복감을 얻는 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상 속의 작고 사소한 일들이 조그마한 위안을 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어쩌다 너무 지치는 때가 있으면 그렇게 소소 위안들을 모아서 다시 회복하고 달려 나갈 힘을 얻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 작은 위로들이 우리를 다시 뛰게 만들어줄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다시 힘을 얻는다면 그보다 더 큰 위안이 없을 것입니다.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위안입니다.








이전 06화 찌질한 흑역사면 어떠하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