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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Jun 20. 2020

집밥은 추억을 담아내고

김밥 먹는 날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는 날이 있습니다.


방안으로 부엌 불빛이 새어져 들어오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솔솔 니다.

설레는 예감에 후다닥 방을 나와 보면 어머니가 주방에 식재료를 잔뜩 깔고 무언가를 만드는 모습이 반쯤 감긴 눈꺼풀 사이로 보입니다.


김밥 만드는 날입다.

아침잠 많던 어린 시절에 깨우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는  두 가지 있었습니다.

일요일 아침에 만화동산 시청하는 날, 그리고 어머니가 김밥 만들어 주시는 날. 


눈곱을 붙인 채 어머니 옆에 앉아서 계란과 게맛살 몇 개를 주워 먹다가 방금 말려 나온 김밥을 손으로 냉큼 주워 먹습니다.

"목메니깐 물 마시고 먹어"라는 어머니 말씀엔, "응" 건성으로만 대답하 계속 주워 먹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막히는 기분에 허겁지겁 물을 몇 모금 마시고 쪼르르 세수를 하러 갑니다.


세수를 하 수건을 얼굴을 문대면서

오늘아침에 김밥을 먹고 점심에도 김밥을 먹고, 잘하면 저녁에도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뜹니다.


김밥은 주로 소풍이나 운동회 때 만들어 주셨습니다.

조용히 책 읽기를 좋아는 성격 탓에 소풍이나 운동회처럼 활동적인 행사가 기쁘지 않았습니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는 듯 어색하애써 활발한 척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었습니다.


대신 하루 종일 김밥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이 모든 어색함과 부담을 날려 줬습니다.

장기자랑을 잘하거나 달리기를 잘해서가 아니 김밥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점 때문 소풍과 운동회가 기다려졌습니다.


밥은 평소보다 고슬고슬하고 간이 적당히 배어  반찬 없이 먹어도 맛있니다.

고소하게 무쳐진 시금치 평소라면 눈길도 주지 않지만 김밥 속에 들어  관대했습니다.

당근이나 우엉 평소엔 금단의 반찬 취급했지만 김밥 으로 들어가면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햄 대신 소고기가 잘게 볶아져 들어니다. 어머니는 소의 어느 부위이며 좋은 고기라고 설명하지만 건성으로 고개만 끄덕이고 먹는데만 집중합니다.


잠 덜 깬 눈으로 주워 먹기 시작해서 저녁까지 김밥으로 해결했습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 물릴 법도 한데, 어머니가 만든 김밥을 먹을 때는 전혀 물리지 않았습니다.



학교에 진학한 이후부터는 김밥 는 일 

줄어들다가 고등학교 때부터는 거의 없어졌습니다.

소풍이나 운동회가 없어지니 김밥 만날 일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다 군대 첫 휴가를 나왔을 때, 오래간만에 어머니가 집에 김밥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아침부터 일어나 김밥을 말고 계셨을 모습도 떠오르고, 어렸을 때 눈곱을 떼지도 않고 옆에서 주워 먹던 기억도 납니다.


첫 휴가 때 먹고 싶은 음식을 물어보셨을 때 내가 김밥이라고 대답했는지, 어머니께서 내가 좋아하는 음식라고 알아서 싸주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느 쪽이었든, 여전히 나는 어머니의 김밥을 있게 기억하고

어머니는 나를 김밥 잘 먹는 아들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 먹던 음식에는 그때의 기억들이 함께 담겨있습니다.

어머니김밥에는 깨우지도 않았는데 벌떡 일어나던 꼬마의 설렘이 있고

이른 아침부터 피곤을 뒤로하고 재료를 준비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있습니다.

잠을 줄이고 재료를 손질하여 김밥을 마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날마다 한 번도 빠짐없이 김밥을 만들어 주시는 모습을 각하면 그래도 잘 먹으니 보기 좋다는 마음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을 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가끔 이 생각날 때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만드신 음식이 맛있어서 그리운 것도 있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함께 담 있어 생각나는 것 같습니다. 


음식은 억을 담아서 오고 갑니다.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 간에 유대감과 추억이 공유됩니다.

어머니가 말아주시던 김밥에는 한껏 들뜬 꼬마와 그 꼬마를 옆에 앉혀놓고 김밥을 마는 어머니의 모습이 같이 담겨 있습니다.



외식 산업의 성장, 배달음식의 호황으로 집밥의 입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단순히 끼니를 챙긴다는 의미에서는 집밥보다 배달음식이 훨씬 효율성 높습니다.


하지만 집밥에는 한 끼를 해결한다는 기능적 역할 외에 감정의 공유라는 부가적 역할도 있습니다.

만드는 사람은 맛있게 먹는 사람을 위해 시간을 쏟고, 먹는 사람은 그 정성을 기억합니다.

집밥은 요리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 간의 유대감 강화라는 측면에서 여전히 큰 의미가 있니다.


혹시나 나도 누군가에게 김밥을 말아주거나 집밥을 만들어 줄 때가 된다면

그 사람에겐 특별한 음식, 즐거운 기억으로 남겨지면 좋겠습니다.

러려면 , 칼질하는 법부터 조금씩 배워놓아야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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