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Shaun SHK
Apr 10. 2022
얼마 전에 디지털기기 판매점에 갔습니다.
최신 전자기기를 체험할 때의 설렘도 느낄 겸 쇼핑도 할 겸 가벼운 발걸음이었습니다
전시된 제품들의 깔끔한 디자인과 다양한 기능들을 감상하다 무선 이어폰 하나를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입구 옆쪽에 있는 무인판매기에서 구매해 주시면 됩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입구 쪽에 있는 무인판매기에서 구매하면 된다고 합니다.
직원분은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긴 했지만, 출입구 쪽으로 돌아가서 셀프 구매하라는 것이니 괜스레 대접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긴 했습니다.
어쨌든 입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무선 이어폰, 충전기 등 소형 아이템들이 판매기 속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습니다.
‘구매 버튼이 어디 있지?’
아무리 둘러봐도 무인판매기 속에 있는 제품들을 고르는 버튼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혹스러움을 안은 채 제품들을 구경하는 척하면서 제품 구매와 관련된 버튼이나 표시를 애타게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찾아봐도 구매를 표시하는 버튼이나 화면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제 민망함을 무릅쓰고 직원에게 물어봐야 할 즈음, 판매기 옆에 입간판처럼 서 있는 디스플레이가 눈에 띄었습니다. 브랜드 로고만 출렁이며 나오는 화면이라 자그마한 광고판 그 이상으로는 보이지 않았던 화면이었습니다.
그래도 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래픽이 송출되는 화면에 손을 슬쩍 갖다 대었습니다.
디스플레이를 터치하자 화면이 전환되었습니다. 그리고 제품명과 구매 버튼이 주르륵 나타났습니다. 화면을 터치하면 비로소 제품 구매 화면이 뜨는 방식의 터치스크린이었습니다.
‘아, 이거 좀 민망하네”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겉으로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는 듯 짐짓 자연스럽게 화면들을 터치해 나갔습니다. 터치 화면들을 몇 번 넘기니 최종 구매까지 무사히 끝났습니다.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무인판매기 작동방법을 몰라 직원에게 물어볼 뻔했다는 생각과 그래도 스스로 잘 해결했다는 안도감이 공존했습니다.
아직 최신 기기에 익숙하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세대라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그날 무인판매기 앞에서 사라졌습니다.
나도 머지않아 최신 기술 앞에서 버벅대고 당황하는 세대로 넘어갈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진행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터치스크린에는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디스플레이마다 무조건 스크린을 터치하지는 않습니다.
터치를 안내하는 문구나 표시가 있어야만 비로소 화면 터치를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날처럼 일단 디스플레이를 터치해야 비로소 전환되는 화면에는 왠지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린이들이나 10대 학생들은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영상이 움직이든 그렇지 않든 전자기기 디스플레이를 보면 손부터 대어 보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스마트폰을 접해 온 경험 때문인가 봅니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세대가 있습니다.
디스플레이는 눈으로 감상하는 것이지 손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터치 방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어르신 세대와,
영상이 나오든 나오지 않든 일단 전자기기 디스플레이만 보면 손부터 대어 보는 어린 세대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기술 발전에 적응도가 다른 세대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최신 전자기기가 등장하면 사람에 기계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사람을 적응시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혁신적인 제품들을 양산하면 사회는 변화하기 시작하고 그 변화에 바로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유행에 뒤처진다거나 구식이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만약 부모님뻘 이상되는 연세 많은 어르신이 내가 방문한 디지털기기 판매점에 간다면 직원 도움 없이 구매하기가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 어르신이 기분전환을 할 겸 오래간만에 영화를 한 편 보러 간다고 치면, 티켓 발권 직원이 사라지고 무인티켓출력기만 존재하는 영화관에서 한번 더 당황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도움을 구할 만한 직원은 팝콘을 튀기는 매점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어 도움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신기술은 우리의 발걸음에 맞춰주지 않고 우리는 스스로 작동방식을 익히고 배우며 기술 발전을 따라가야 합니다.
이런 변화가 계속될수록 최신 기기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아질 것입니다.
변화의 속도는 대단히 빠릅니다.
그리고 기술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술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 대신 적응이 빠른 사람이 적응이 느린 사람들을 도와줄 수는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님에게 최신 기기에 대해 사용방법을 설명해주고, 어린 친구들은 무인기기 앞에서 버벅대는 어르신들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대신 친절한 설명을 해줄 수 있습니다.
물론 도움을 구하는 쪽에서 매너 있게 도움을 구하고 도움을 주는 쪽에서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줘야겠습니다.
그래야 도움을 주고받는 일이 서로 불쾌하지 않고 긍정적인 경험으로 남을 테니 말입니다.
기술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지만 우리는 뒤처진 누군가를 기다려줄 수 있습니다.
빨리 가는 사람들이 느린 사람들을 조금 더 기다려 준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술이 남긴 빈자리는 사람이 메꿀 수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