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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월사단 24화

스타트업에서는 왜 영어 이름을 쓸까?

영어 이름이 끼치는 회사의 문화 영향

by 션라이트

"션, 이거 어떻게 생각해요?"

회사에서 이렇게 불리는 게 이제 너무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하지만 가끔 생각해봐요. 왜 스타트업에서는 '승훈'이 아닌 '션'으로 부를까요?



왜 갑자기 모두가 영어 이름을?

스타트업에 다니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텐데요. 회사에서 Alex, Emma, Jay 등을 쉽게 들을 수 있어요.

"서준님은 이걸 어떻게 생각하셨어요?"

이렇게 말하는 순간 뭔가 격식을 차리게 되잖아요. '님'을 붙이는 순간 자연스럽게 거리감이 생기고요.

하지만 "제이, 이거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면 어떤가요? 훨씬 편하게 느껴지지 않으세요?



이름에서 알 수 있는 한국의 문화

영어 닉네임의 가장 큰 장점은 선입견을 지워준다는 것이에요. 한국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어느 정도 정보가 보이거든요:

"이름이 되게 특이하시다"

"오 나랑 성이 같네. 어디 출신일까?"

"요즘 이름 같이 느껴지네"


이런 추측들은 선입견을 만들고, 회사 안팎의 나의 모습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 같아요. 영어 이름을 쓰면 이런 정보들이 사라지니까 순수하게 그 사람의 아이디어와 능력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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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가 실험으로 찾은 적정 거리

왓챠에서 문화가 참 좋았는데, 여러 가지 실험과 시도로 찾은 지점이 결국 영어 이름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수평적으로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걸 위한 실험이었는데요:

언니/오빠/형: 너무 가까웠음

영어 이름 + 님: 결국 적정 거리보다 좀 더 멀어지는 거리감

영어 닉네임 (님 없이): 딱 적절한 거리!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찾은 '골디락스 존*'이었던 거죠.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딱 좋은 거리감이요.


*골디락스 존: 천문학에서 유래된 용어로, 생명체가 살기에 적절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항성으로부터의 거리. 현재는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최적의 지점'을 의미하는 용어로 확장 사용됨.





3년차도 10년차에게 부담 없이 의견을 제안할 수 있는 쿠팡

쿠팡에서는 창업자 김범석 대표도 '범(Bom)'이라고 불러요.

쿠팡이 영어 이름을 도입한 이유가 명확해요. "3년차 직원이 타 부서 10년차 직원에게 부담 없이 자료를 요청하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게 쿠팡의 설명이에요.


실제로 부서 간 원활한 소통에 크게 기여했고, 연차나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 거죠.


*출처: 한국경제, "수평적 문화 만들자" 영어 닉네임 도입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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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는 Justin, 일상에서는 민준

영어 이름을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효과가 있어요. 회사 자아와 일상의 자아를 분리할 수 있는 거죠.


회사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부분인데요:

"회사에서 저스틴이라는 캐릭터가 존재하는 거죠."

"퇴근하면 민준으로 돌아가는데, 저스틴이랑 전혀 다른 즉흥적이고,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에요."

"회사 사람들은 민준이라는 사람을 잘 볼 수 없죠. 이게 사생활을 분리하는 방법이라서 좋더라고요."




회사에서도 션, 밖에서도 션

영어 이름을 쓰는 회사를 다니면서 점점 저에게 흥미로운 변화가 있었어요. 처음에는 회사에서만 '션'이었는데, 어느 순간 밖에서도 션으로 불리기 시작했거든요. 프로덕트 디자이너 친구들을 만날 때도, 블로그를 쓸 때도 자연스럽게 '션'이 되었어요.


왜냐하면 회사에서의 제 모습이 실제 제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인데요. 실제로도 직장 동료를 밖에서 만나면서 자연스레 일상에서도 션이 된 것 같아요.

직무적으로 프로덕트 디자이너는 일상에서도 고민을 하고 현상을 바라보는 습관이 있어서, 회사 밖에서도 고민과 생각이 영어 이름처럼 유지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GR000010.jpg ricoh GR3 @CA



변화하는 직장 문화

영어 닉네임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회사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부장님', '과장님'에서 'Kevin', 'Sarah'로. 이 작은 변화가 아이디어를 더 자유롭게 나누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회사를 알아볼 때 영어 이름을 쓰는지 체크해보는 편이에요.


여러분들의 영어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회사 밖에서도 쓰는지 궁금합니다 :)


오늘의 월사단은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40도까지 올라가는 폭염 속에서 다들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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