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빠 되기

12일간의 기다림

by 기록하는아빠

난포 주사를 맞고 일명 ‘숙제날’을 받은 뒤, 우리는 기다림의 시간에 들어갔다.

12일.

임신 테스트기가 임신 호르몬에 정확한 반응을 보일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정자는 48시간 생존한다.

숙제날을 받은 직후, 우리는 검색에 열중했다. 정자는 여성의 몸 안에서 약 48시간 정도 생존한다고 한다. 난자를 만나는 여정에서 도태되지 않은 정자는 생존까지 남은 시간 동안 난자와의 만남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난포가 터지기 하루 또는 이틀 전에 숙제를 하는 게 임신 확률이 높았다.


‘난포가 터진다’는 건 난자가 배출되는 순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운 좋게도 숙제 다음 날 건강검진 일정이 있어서, 초음파로 난포 상태를 확인받을 수 있었다.


임신을 준비 중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초음파를 보신 선생님께서 먼저 말씀을 해 주셨다. “난포가 잘 터졌네요!” 그 순간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임테기의 노예가 된 12일.

그날 이후로 우리는 무려 12일간 임테기의 노예가 되었다.

‘난포도 잘 터졌고, 숙제도 잘 마쳤으니 이제 임신 아닌가?’ 이런 기대감에 매일 아침 임테기를 들여다보게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매직아이’를 경험하기도 하였는데, 부릅뜬 내 눈앞에 자꾸 두 개의 선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덕분에 매일 아침 임테기를 두고, 두 줄이 맞는지, 틀린 지 사소한 실랑이가 있었다.

하지만 매일 아침, 결과는 한 줄, 또 한 줄.

흐릿한 선은 실제 임신을 의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글을 보면서, 결국 시간만이 해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임테기는 두 줄로 끝나는 게 아니라 약간의 붉은빛이 돌아야 한다고 했다.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을 버티듯 기다렸다.




12일째, 두 줄을 보았다.

아침부터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주말 아침. 우리는 선명하진 않았지만 흐릿한 두 줄을 보게 되었다. “우와...! 이번엔 정말 맞는 것 같은데?” 그 순간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그보다는 우리 부부가 함께 준비하고 버텨온 시간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것 같아서 더 벅차올랐다.


하지만 처음 본 두 줄은 정말 반신반의했다. 여느 날처럼 나는 “맞다”, 아내는 “아닌 것 같다.”라는 팽팽한 의견차이. 저녁에 다시 테스트를 해보았고, 눈으로 보이진 않지만 정말 미세하게 더 짙어진 듯한 두 줄을 다시 보았다.


결국 판결을 내려 주실 분은 출산 선배이신 처형. 우리는 그렇게 의도치 않은 임밍아웃을 하게 되었다.




기쁨보다 먼저 온 감정

처형의 판결이 내려진 직후, 임신까지의 과정은 단순히 ‘임신’이라는 결과만 남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앞섰다. 난포 주사를 맞으면서, 공포의 나팔관 조영술을 받으면서, 난소의 나이가 조금 높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모든 신체적, 정신적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얻은 두 줄이라, 기쁨보다 먼저 찾아온 감정은 아내를 향한 대견함과 감사함이었다. 다만, 그 감정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왈칵 눈물을 쏟을 것 같아, 나는 얼른 아내가 먹을 추어탕을 준비했다.




12일간의 기다림이 끝났다.

그날부터 우리는 부모가 되어가기 시작했다. 혹여나 아이가 잘못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시간을 흘려보내고, 계산기를 꺼내어 출산 준비에 임했으며, 8개월간 부지런히 예산을 확보하고 물건을 실어 날랐다. 그리고 한 생명이 태어났다.


지금 돌아보면, 그 12일의 조마조마함도 소중한 기억이다. 매일 아침 임테기를 보며 매직아이를 시전 하던 우리. 처형의 떨리는 목소리를 통화로 받는 순간. 모든 게 우리가 부모가 되는 과정이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임테기를 붙잡고 마음을 졸이고 있다면, 그 간절한 마음에 진심으로 공감한다. 기다림의 시간은 짧지 않고, 조그마한 변화에도 마음이 출렁거리는 순간. 때로는 희망이 너무 커질까 스스로 기대를 자제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몸과 마음을 다해 준비하고 있는 당신은 충분히 대단한 사람임이 틀림없다. 조만간 기쁜 소식이 찾아오길 진심으로 응원 보내며 글을 마친다.


P.S. 추어탕은 SNS 광고 제품보단 집 앞 추어탕집이 훨씬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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