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들과 배낭여행 다시 쓰기-하노이 & 닌빈
1일 차: 배낭여행의 마지막 종착지에 도착하다.
비엔티안에서 마지막 배낭여행의 도시인 하노이로 1:20 비행 후 도착했다. 비엔티안에서 이심을 활성화시키지 못해 예약한 픽업 서비스 확인이 안 되어 본의 아니게 공항 카페에서 애들 음료 하나씩 시켜주고 와이파이에 연결해 픽업 서비스로 숙소에 도착했다. 원래는 버스를 타고 갈 예정이었지만, 버스가 끊긴 21:00 이후에 공항에 도착해서 픽업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 시간여를 달려 호텔 체크인 후 애들은 숙소에서 쉬게 한 후 ATM인출을 위해 야행에 나섰다. 여행자 거리에서 베트남 동을 인출했는데 수수료가 3%다. 인출하고, 따히엔 맥주거리를 잠깐 들러 맥주를 한 잔 하러 나섰다. 맥주 거리는 인파와 음악이 나랑 맞지 않는다. 나와는 호찌민 여행자 거리 옆 골목이 안성맞춤 인 듯하다.
가볍게 맥주 3병을 마시고 숙소로 돌아가자. 마지막 종착지인 하노이에 도착하니 맘이 편하다. 남은 이틀은 닌빈 투어와 하노이 워킹투어(아빠가 마련한)가 계획되어 있으니 잘 마무리되기를 기원한다. 먼저 내일 아침엔 아이들을 데리고 닌빈 투어를 가야 한다. 일찍 자자!!
2일 차: 하노이 인근 투어, 닌빈(땀꼭) 당일치기
방값이 좀 싸다고 했더니 이건 1층도 아니고, 2층도 아닌 1.5층에 위치해 천장 높이가 1.8m가 되지 않아 머리를 들고 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뭐 잘 자기만 하면 되니 감수하고 자고 일어났다. 아침 일찍 조식을 먹고 닌빈으로 향하는 버스를 숙소 앞에서 기다렸다. 하노이의 아침은 오토바이와 차로 뒤엉킨 와중에도 원활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니 가이드가 와서 버스에 탑승했다. 차 안에는 백인과 인도인들 소수의 싱가포르 사람이 타고 있었다. 20년 전 배낭여행 때는 Shin Cafe나 Kim Cafe 같은 오프라인 여행사와 지점을 이용했지만, 요즘은 클룩이나 케이케이데이를 통해 하루 이틀 전에도 예약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행이 무척 편리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사람들은 주로 한국에서 여행 카페를 통해 예약하거나, 패키지를 이용하기 때문에 현지에서 투어를 예약하면 한국 사람 만나기가 그렇게 어렵다. 결국 이번에도 한국사람들은 팀 내에 한 명도 없었다. 버스에서 자리를 잡고 1시간 30분을 달려 휴게소에 도착해서 30분을 쉬고 다시 출발해서 호아루 고대 수도 지역에 도착했다.
개별적으로 관람을 마치고 다시 차를 타고 점심을 먹는 곳으로 향했다. 점심은 닌빈성 땀꼭에 위치한 수로 투어를 하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점심 뷔페는 식당 유리문에 200,000동으로 적혀 있었다. 나중에 판단해 보니 전체 투어가 식당을 포함해서 모두 연계되어 있었다. 그래도 점심은 뷔페식으로 다양한 먹거리를 갖추고 있어 먹을 만했다. 아이들과 맛있게 점심을 먹고 두 번째 투어코스인 땀꼭 뱃놀이 투어를 하는 곳으로 집결했는데, 식당 바로 앞이어서 걸어서 이동했다. 각자 구명조끼를 입고 한 명씩 탑승을 했다. 2-3명 단위로 탑승이 이루어졌다. 20년 전과 시스템이 비슷했지만, 훨씬 대형화되고 체계적으로 투어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20년 전 군대 후배와 첫 배낭여행을 했을 때, 12월 말 게스트하우스에서 베트남 나이키에서 일하는 한국인을 만나 에스페로를 빌려서 닌빈을 여행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와 비교하며 아이들에게 닌빈성 땀꼭의 석회암 지형에 대해 설명을 해주고 잠시 추억에 잠겨 보았다. 그때와는 달리 나무배는 철 배로 바뀌어 있었고, 변하지 않은 것은 강을 따라 녹아든 석회암 동굴과 탑 카르스트의 석회암 절경뿐인 듯하였다.
겨울이 아닌 계절에 오면 관광엽서에서 볼 수 있는 논 사이로 난 수로를 지나는 배를 타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듯했다. 다음엔 닌빈만 2박 3일 정도로 해서 찾아오고픈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도 호아루 고대 수도보다는 이런 자연경관에 더 큰 흥미를 느끼고 즐거워했다. 식당에서 사서 간 40,000만 동짜리 캔 맥주 하나를 뱃머리에 두고 유유자적 풍경을 한 시간 즐겼다. 반대편에서 돌아오는 배를 보니 풍경에 지친 모습의 관광객도 가끔 보였다.
거슬러 갔던 강을 돌아오는 왕복 코스였지만 한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풍경이 아름다웠다. 흐린 날씨가 아닌 맑은 날씨의 여름엔 더위와 함께 더 큰 매력적인 풍광을 보여 줄 것이라 판단되었다. 아니면, 비가 오는 날씨도 나름 매력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땀꼭 석회암 경관을 배를 타고 돌고 나면 버스를 타고 마지막 코스인 무아동굴로 10분 정도 이동한다. 무아동굴이 핵심 관광지지만 사람들은 무아동굴 보다 땀꼭이 내려다 보이는 정상의 용 형상에서 사진 찍는 것을 더 선호해서 원래 목적인 무아 동굴은 차 순위로 밀린다. 관람 시간도 1시간 30분이라 산 정상에서 사진을 찍다 보면 무아동굴은 지나치기 십상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아래쪽 관광지는 건너뛰고, 석회암 용식으로 날카로워진 석회암을 지나 정상까지 가겠다는 일념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무아 동굴은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땀꼭 뱃놀이 코스가 펼쳐 보이는 풍광과 용의 해에 맞이하는 용 조형물로 인해 충분히 즐길만한 코스였다.
용에서 사진을 찍고, 500여 개의 계단을 내려와 버스에 도착한 후 패키지 팀원이 모두 도착할 때를 기다려 20분 늦은 4시 50분에 하노이로 출발했다. 100km 남짓 거리지만 도로사정과 교통체증에 의해 2시간 30분이 지나서야 하노이로 도착했다. 우리는 저녁도 먹어야 해서 숙소에 내리지 않고 오페라하우스에 내려 저녁 먹을 곳을 찾기로 했다. 오페라하우스를 거쳐 아이스크림 맛집이 있어 인당 2개씩 아이스크림을 먼저 먹고 저녁을 먹을 장소를 찾아보았다.
후식을 먼저 먹고 저녁 먹을 곳을 찾다가 호안끼엠 호수 옆 식당에 앉았으나 가격표도 없는 메뉴판을 주길래 나와서 숙소 쪽으로 이동하면서 식당을 찾기로 했다. 숙소로 이동하다 현지인들과 관광객으로 가득한 식당이 눈에 띄어 무작정 들어갔다. 골뱅이와 조개를 파는 곳으로 둘째가 먹을 게 없었지만 다행히 치킨 너겟을 돌아다니며 팔고 있어 저녁으로 모두가 만족하면서 충분하게 먹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바다 골뱅이가 아닌 프랑스 달팽이 요리인 에스카르고를 닮은 논골뱅이 모습이었는데 양념과 함께 먹으니 일반적인 골뱅이 맛이 났다. 두 번째로 시킨 찐 조개는 고추를 넣었는지 얼큰한 국물 맛이 일품이었다. 저녁을 따로 먹으려고 했지만, 첫째도 둘째도 배가 부르다고 하여 따로 저녁은 먹지 않기로 했다. 돌아오는 길에 맥주거리를 지나왔지만 아이들이 있어 지나치며 기념사진만 한 장 남겼다. 내일은 호찌민 영묘를 시작으로 하노이를 걸어서 여기저기 둘러보기로 해서 일찍 자기로 했다. 걸어서 숙소에 도착하니 닌빈-땀꼭 패키지를 출발한 지 14시간이 지난 21:00가 넘었다. 아이들에겐 내일 체크아웃 후 8시간을 버텨야 한다는 임무를 하달하고 일찍 잠에 들었다.
3일 차: 하노이 뚜벅이와 귀국
내일은(정확히 말하면 내일이 시작되는 00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귀국하는 것이 마지막 일정이다 보니 실제 배낭여행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숙소도 체크아웃해야 하고, 비행기를 타러 3시간 전에 도착한다고 해도 밤 9시에 도착하면 되기 때문에 공항까지 이동시간을 고려하더라도 12시 체크아웃 이후 8시간 정도를 보낼 계획이 필요했다. 일단 하노이 까지 왔으니 나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인 공산주의 국가 미라 관람 미션을 위해 아침 일찍 조식도 포기하고 08:00-10:00까지 방문 가능하다는 호찌민 영묘로 향했다. 숙소에서 거리가 2km 이상이라 택시를 불러 07:50에 도착했다. 정확한 입구를 몰라 백인 단체 관광객이 들어가는 곳을 따라 들어가 짐검사를 하고 영묘 앞으로 이동해 입장을 기다렸다. 08:00 입장이라 알고 왔지만, 08:30이 지나도 입장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리둥절했지만 베트남에 와선 베트남 법을 따르고, 언어를 몰라 묻지도 못하니 그냥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열받으면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묻고 따지고 하자. 다른 관광객들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면서 기다림의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08:40이 되자 입장이 시작되었다. 광장 쪽이 아닌 반대편에서 엑스레이 검사를 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앞뒤로 똑같은 숫자가 대기하고 있었다. 삼엄한 경비 아래 일렬로 줄지어 관람이 시작되었다. 유리관에 고이 누운 호찌민을 보는 것은 1분이 채 안되어 끝이 났지만, 베트남의 과거와 현재에 살아 숨 쉬는 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1분이면 충분하고도 충분했다.
호찌민 영묘는 초등학생들의 단체 방문이 많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그것이 사회주의의 우상화 정책이든 뭐든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 어느 나라를 가든 나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그저 스쳐가는 여행자로 남고 싶다. 애들 하나 건사 못하는 내가 뭔 남의 나라에 배 놔라 감 놔라 하겠나? 호찌민 영묘 방문을 마치고 호찌민 박물관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입장료를 받지 않아 들어가 봤지만 크게 볼 것은 없다.
호찌민 박물관 옆 한 기둥 사원을 스쳐가며 사진으로 남기고 기찻길 카페가 있는 곳까지 걸었다. 하노이든 호찌민이든 길 건너기 참 어렵다. 하지만 호찌민 호띠기 시장 싸움 사건 이후 30분간 열개가 넘는 대로를 건너는 실력을 습득해서 사뿐히 기찻길 카페에 도착했다. 지키는 공안은 없고 삐끼 아줌마의 안내로 그녀의 카페로 갔다. 음료고 뭐고 그냥 두 배다. 인터넷에 찾아보고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을 확인하고 방문하길 바란다. 기차를 보려면 체크 아웃 시간과 겹쳐 빨리 음료와 모닝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브런치를 먹으러 갔다. 여행 전 수없이 찍어둔 식당 중 하나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하여 그 목적지로 발길을 옮겼다. 메뉴는 여행 시작하는 호찌민시 여행자 거리에서 먹었던 분짜로 정했다.
구글 평점을 보고 찾아간 곳이라 사람이 많을까 걱정했지만 아침 장사와 점심 사이라서 식당은 한가했고, 점심 배달을 준비하는 포장과 고기를 굽는 손갈만이 분주하게 가게 안을 채우고 있었다. 쌀국수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더라도 분짜는 웬만하면 한국인 모두가 좋아하는 단짠의 맛이라 3 부자가 모두 맛있게 먹었다. 주문할 때 넴(짜조)를 몇 개 시킬까 묻는 말이었는데, 3개를 시키는 바람에 분짜 3개와 냄 3개가 푸짐하게 나왔다. 이걸 어째 다 먹을까 하는 기우는 3 부자의 맛난 식사로 게눈 감추듯 사라졌다. 3 부자가 모든 음식을 다 함께 먹어치운 첫끼로 기록할 만했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하고 체크아웃을 했다. 숙소에 짐을 맡기고 나선다. 시간은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짐을 찾으러 돌아오는 19:00까지 9시간을 버텨야 한다. 돈이 많이 들 거 같아 일단 돈을 좀 찾았다. 배낭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시간이라 다양한 활동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들른 곳은 모닝커피를 한 잔 하면서 찾은 매니큐어 집이다. 남자들이라 매니큐어는 필요 없고 손톱 손질과 관리만 부탁했다. 인당 100,000동으로 우리 돈 5,500원에 손질을 받았다. 아이들은 금세 끝나고 나까지 받는데 30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우린 시간을 때워야 한단 말이다. 그냥 손톱 관리를 받았다는 경험만으로도 충분했다.
생각보다 빨리 끝난 손톱 손질을 뒤로하고 성 요셉 성당으로 향했다. 동남아 여행에선 불교 사원보다는 한 번씩 찾는 성당이나 힌두교 사원이 더 특별한 존재다. 아이들도 더 이상 사원을 보고 싶지 않다고 당일 배낭여행 후 저녁에 매일 남기는 밴드의 일기에도 쓰곤 했으니 말이다. 성당을 둘러보고 간단하게 점심과 저녁 사이의 음식을 반미로 먹고 여행자 거리와 떨어진 마사지 숍으로 향한다. 여행자 거리에선 1시간에 350,000동 하는 마사지가 여행자 거리를 벗어나면 250,000동으로 바뀐다. 1km를 걸어 아이들은 발 마사지를, 나는 얼굴 마사지를 한 시간 받기로 했다. 셋이서 누워 비엔티안의 108배와 닌빈의 무아동굴 등산의 피로를 씻는다. 나는 한 달간 고생한 피부에게 발마사지를 양보했다.
발마사지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유튜브를 볼 수 있게 잠금기능을 한 시간 풀어줘 그들에게 유튜브 시청과 발마사지를 동시에 받는 꿈과 같은 시간을 부여했다. 나는 얼굴 마사지를 받으면서 발 마사지를 같이 했으면 더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맘을 돌리고 편하게 누워 얼굴 마사지에 집중했다. 돌아와 생각하니 돈을 2배 들여서라도 같이 받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지를 마친 시간이 오후 5시 20분인데, 첫째가 호안끼엠 호수에서 발견된 자라 박제가 있는 어제 들어가지 못한 사원을 가보고 싶어 한다. 한 달 동안의 배낭여행동안 스스로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 없었는데 걸어가기엔 2.2km로 시간이 안 될 거 같아 택시를 타고 이동해서 호안끼엠 호수 가운데 위치한 사원에 입장료 50,000동을 내고 입장했다. 본인이 원하는 곳이라 알아서 찾아 잘 다니는 모습이 보기가 좋다.
사원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는 시클로 탑승을 하기 위해 사원 앞 시클로 기사와 흥정을 한다. 구글링으로 검색하니 한 시간에 100,000-150,000동으로 나오길래 30분에 얼마냐고 물으니 150,000동을 부른다. 100,000동을 마지노 선으로 협상을 하는데 두 명의 시클로 기사가 겹쳐 서로 흥정을 이어가다 한 사람이 100,000동을 콜 해서 타기로 했는데, 한 사람이 120,000동으로 계속 따라붙는 사이 둘째가 100,000동 시클로에 타고 왜 안타냐고 울고 있어 그리로 탔다. 셋이서 타고 가는데 120,000동 시클로 기사가 붙어 자기 걸 타라고 하고, 먼저탄 기사도 한 명은 저리로 타라고 하고~. 하~~ 이런 짜증 나는 상황이 너무 지나쳐 애들에게 내리라고 호안끼엠 호수를 빠져나왔다. 애들에겐 그래도 타 봤으니 됐다고 하고 숙소 쪽으로 발길을 옮기다. 카페가 있어 커피를 한 잔 하러 들렀다. 경주 경리단길에서 유명하다는 10원 빵을 팔고 있길래 카페에서 커피 한잔과 10원 빵 하나씩 먹으며 씨클로 흥정의 짜증을 달랬다.
시클로 사건을 겪고 차를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시간이 얼추 맞아 들어간다. 빠른 걸음으로 숙소로 가서 맡겨놓은 짐을 찾아 버스를 타러 갔다. 공항에서 올 땐, 늦어서 택시를 타고 왔으니 갈 땐 시간도 보낼 겸 공항 가는 버스를 인당 45,000동씩 치르고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50분을 달려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비행기는 00:20 출발에서 00:40으로 늦춰졌다고 친절하게 문자까지 왔다. 공항에서 대기시간이 길어질 듯하여 마지막으로 아이들 선물로 라운지 사용권을 미리 끊었다. 나는 무료 사용 카드가 있었고, 라운지를 이용하여 비행 출발까지 편안하게 쉼과 동시에 배낭여행의 유종의 미를 장식하려고 준비 한 아이들의 선물이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둘이 또 싸우고 분위기가 좋지 않다. 마지막까지 너희들은 한결같구나! 출국 수속을 마치고 라운지에 들어왔는데도 따로 앉아 짜증에 짜증을 내고 나도 불쑥 화가 났지만, 붓다의 마음으로 평정심을 유지하고자 했다. 애들은 뿔뿔이 흩어져 한 놈씩 옆에 앉았다가 사라지고 없다. 라운지 안에는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따로 멀리 앉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내버려 둔다. 3시간 사용이 가능한 라운지 사용권이지만, 굳이 누가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비행시간이 다가오자 이제 슬슬 라운지를 둘러보며 애들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세팅하는 마지막 3 부자 여행이 될 것을 다짐한다. 이제 아이들이 세팅하면 따라갈 기회가 있겠으나, 오기 힘들거라 생각한다.
모든 여행이 마무리되었다.
자녀와 한 달 배낭여행을 꿈꾸는 사람들이여~
내 얘길 듣고 바르게 판단하시오! 가지 마라!!! 특히, 자주 싸우는 아들 둘과 함께하는 배낭여행은~
맥주를 마시며 마지막 배낭여행기를 썼다. 마지막날 공항버스를 타고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으로 향했고, 여정의 끝을 럭셔리하게 장식하기 위해 미리 예약해 둔 라운지에서 아이들은 서로 싸우다 화가 나서 따로 떨어져 앉아 음식도 먹지 않는 기괴하지만 일상적인 행태를 보였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바람 잘 날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웃어넘기고 혼자만의 여유를 즐겼다. 둘째는 소파에서 누워 자는 경지에 이르렀고, 첫째는 2시간 동안 혼자 아무 말 없어 저 멀리 앉아 있었다. 한 달 동안 내가 배운 최고의 능력은 화가 난 아이들을 화해시키거나 서로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홀로 라운지의 음식을 안주삼아 마지막 동남아의 맥주를 마시는 것으로 배낭여행을 마무리하는 것도 어찌 보면 배낭여행의 일상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3시간 동안 나는 나름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다. 한 달 동안의 여행을 복기해 보고, 즐거웠던 일들과 아쉬웠던 일들을 떠올리며 여행을 정리했다. 같은 시간 아이들은 산해진미를 뒤로 하고 그저 졸다가 멍 때리기를 반복했다. 여행의 시작 기간이었으면 아까운 돈과 어리석은 아이들의 행동에 아이들을 불러 짜증도 내고, 훈계도 했을 터이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도 또 다른 추억이 되기도 하고 아이들이나 나나 일상을 벗어난 행동이 또 한 번의 성장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바라보며 맥주로 목을 축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을 할 때, 한 번쯤은 라운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거 같다. 30일의 여행을 끝내고 지친 육체를 이끌고 귀국하는 그 순간까지 좁은 공항 의자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아이들과 싸워 내가 원하는 그림으로 라운지 사용이 되진 않았지만 아이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믿음에 한 표를 던진다. 라운지 사용이 끝나고 새벽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제 귀국이구나 생각하니 기쁨가 함께 아쉬움 같은 것도 남는 듯했다. 승객을 가득 태운 베트남항공 비행기는 새벽에 우리를 김해공항에 데려주었다. 1월 31일 새벽, 얇은 여름 바지를 입고 라운지에서 예약해 둔 아침 7시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 대합실에 잠시 대기했다. 위탁수화물이 없어 일찍 나올 수 있어 버스 시간도 넉넉히 남아 여유롭게 기다렸다. 한국에 도착하니 맘이 한 껏 더 안정이 되었다. 대구에 도착하면 더 맘이 편해지고, 집에 도착하면 드디어 아들들과 31일의 배낭여행이 끝이 난다. 맘속에 작은 감동의 물결이 일었다. 아이들을 태우러 김해공항까지 온다는 와이프를 설득해서 동대구 터미널에 시간 맞춰 오라고 연락을 했다. 이제 버스를 타면 집으로 간다.
자... 이제 엄마가 끓여 놓은 김치찌개가 있는 집으로 가자!
수고했다. 두 아들... JS형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