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목하지 않는 친목회

친목회를 탈퇴하며

by sheak

산업화에서 정보화로 넘어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생각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으면 뭐가 어떻게 변했는지 알 수가 없다. 학교생활도 어느덧 20년이 가까워오고 나름 많은 생각을 하며 생활해 왔다고 자부한다. 사립학교의 특성이 있는지라 표현하지 못하고 지나간 일들도 있고, 더 끈끈하게 삶을 공유하며 친하게 지내는 일상도 많다. 공립학교는 보통 4년에 한 번씩 인사이동을 하니 매년 새로운 동료 교사를 만나고, 다양한 관리자를 겪다 보니 어느 정도 평준화되어 있는 경향이 크지만, 사립학교는 길게는 임용부터 퇴직까지 같은 학교에서 생활하며 지내는 경우도 많다.


사회의 변화로 본 학교 친목 조직 분석

과거 일명 쌍팔년도(물론 쌍팔년도는 단기 4288년인 1955년을 이르는 말. 즉 구식의 시대를 의미한다.)에는 교직사회에 촌지도 있었고, 학부모회나 교재 선정 뒷돈 등 다양한 돈들이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이러한 문화와 상관없지만, 일부는 이러한 돈을 모아 혼자 쓰기엔 위험하니 모아놨다가 전체 회식에 사용하곤 했다고 한다. 들리는 말로는 내가 고등학교 때, 아침마다 방송으로 풀었던 AOOO, 대 OOO 등 그때 당시 한 달에 십만 원 이상을 내고 반 강제적으로 아침자습을 했었는데 그런 문제집 선정에도 뒷돈이 많았다는 썰이 있다. 그래서 회비를 걷지 않고도 많은 회식자리가 만들어지고, 술자리를 통해서 유대를 형성했었고 그 마지막 세대가 지금의 50대 중후반의 교사들이다. 하지만, 현재는 촌지와 문제지 선정, 학부모회의 다과 준비가 불법으로 정착되고 김영란 법으로 사소한 음료 한 잔이라도 걸면 걸리는 세상이 되었다. 지금 현재의 학교 친목 조직의 가장 큰 변화는 조직의 유대를 중요시하고 과거 화려했던(?) 시절을 맛보고 그때를 그리워하는 일부 선배 교사와 교감, 교장이 목표가 아닌 아름다운 개인주의로 무장한 젊은 교사들 사이에서 대다수의 '의견 없음'을 장착한 교사들이 섞여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친목을 다져야 하는 친목회는 어떤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가?

일단, 친목모임에서 술이 사라져 가고 있다. 공립학교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간단한 식사로 친목모임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립학교에서도 술자리가 길게 이어지는 친목회 모임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과거의 친목회 모습에 부담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고, 과거 친목회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하는 교사들은 속속 학교를 떠나기 때문이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도 2017년을 마지막으로 인근의 산과 계곡을 찾아 한나절을 즐기는 친목회 모임이 없어졌다. 이로써, 내가 생각하는 친목하는 친목회의 모습은 막을 내리고, 경조사를 챙기는 상조회 개념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2017년 9월 마지막 친목회 야외모임

2017년이 친목회 야외 모임 마지막이었으니, 2018년부터는 야외모임을 없애기로 했다. 나는 격렬히 반대를 했지만 사실 기존의 친목회의 모습에 동의하는 사람은 일부였다. 친목회라는 것이 학교직원을 대상으로 하니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모여있기 마련인데, 너무 소수의 의견만 반영하여 일을 진행하고 있어 짜증이 난 상태였다. 과거의 친목회 모임이 술자리 위주로 흘러간 것이 문제라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다양하게 즐기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나는 수년 전부터 친목회 행사를 통해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모아 술만 마시지 않고 야외의 풍경을 함께 감상하고 라이딩을 즐기는 방향으로 친목회 모임에 참석했다. 하지만, 2017년 당시에도 술 위주로 모임이 흘러갔지만, 술을 마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술 마시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자꾸 권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가는 것이 문제였다.

여하튼, 나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친목하지 않는 친목회에는 더 남아있을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4년마다 이동하는 공립학교였으면, 좀 참고 견뎠겠지만, 사립학교의 특성상 변하지 않을 이 상황에서 참고 견디면서 버티는 게 무의미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2018년도가 시작되면서 친목회를 탈퇴했다. 당시 회장과 총무를 맡고 있던 선배교사들이 찾아와 "친목회는 탈퇴가 안된다. 다시 생각해 봐라."며 회유했지만, 나는 쿨하게 "상조회로 이름을 바꾸면 탈퇴 안 하겠습니다."며 그냥 탈퇴했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된 친목모임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면, 왜 친목하지 않는 친목회에 그냥 남아있는가?

거기에는 상조회의 개념이 남아있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 아직까지도 가족들과 친한 지인들이 모여 소규모로 행사를 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쁨과 슬픔을 나누는 것을 미덕으로 알고 있다. 직장에서 이런 일들이 있을 때, 친목회에 가입해 있으면, 크게 신경 쓸 일도 없고 내가 그런 일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3년째 친목회원이 아니면서 학교생활을 해봐도 큰 변화는 없다. 친목행사는 없어졌고, 경조사야 내가 알아서 개인적으로 하면 된다. 달라진 것이라면 그냥 내가 친목회 회원이 아니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나를 보는 조금은 다른 시선 정도. 어쩌면, 친목하지 않는 친목회에 불만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변화하지 않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 화가 났었을 수도 있다. 나의 이런 작은 변화가 조직의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애초부터 없었다. 아들 딸 이름도 모르면서 아직까지 자녀 결혼식, 부모의 장례식에 100만 원 이상을 친목회 이름으로 부조하고 서로 가족이라며 표면적으로는 말하지만, 나는 그들이 가진 고민과 삶의 태도에 대해 알지 못한다. 그저 학생들의 진학과 학교생활을 힘들어하는 학생에 대한 연민, 학교 내에서 쌓인 불만에 대한 당당한 주장이 아닌 험담만 난무하는 모습이 싫었을 뿐이다.

언젠가 다시 친목회에 들어갈 날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상조회의 모습을 한 친목회, 친목하지 않는 친목회에는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난 친목회 비회원으로 하루를 재미있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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