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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gantes Yang Mar 25. 2022

그럼 누구랑 대화를 한 걸까

소파에서 들리던 환청

그럼 누구랑 대화를 한 걸까


요즘 나의 평균 기상 시간은 오전 06시.

빠를 땐 04시.

수원에서 출발하는 ktx나 동탄에서의 srt 첫차를 타기 위함이다.


나에겐 어려서부터 해왔던 습관 하나가 있다.

미리 준비하는 습관이다.

예를 들어, 약속 시간이 오전 09시면 약속 장소에 08시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심할 때는 2시간 전에도 도착해본 경험도 허다하다. 교통편을 이용할 때 걸리는 예상시간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도 09시에 있는 볼일을 보기 위해 06시에 기상했다. 집에서 약속 장소까지의 거리를 계산해 봤을 때 굳이 일찍 일어날 필요는 없다. 사실 07시에 기상해도 충분히 가능한 거리다.


06시에 울리는 알람을 끄고 안방에서 거실로 나와 쿠션을 베개 삼아 소파에 누웠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할 때 늘 하는 나만의 루틴인 셈이다.


잠시 눈을 감았다. 잠깐 선잠이 들어도 괜찮다. 아침잠이 많은 나를 믿지 못하기에 핸드폰에는 알람이 몇 개는 더 준비되어 있다.


06시 반에 알람이 다시 울린다.

내가 잠시 나왔다가 안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방 문은 다시 닫혔다.


그러고서 다시 10분이 지났다.

아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가야 하는데 아직 자는 거 아니지?"


"어~깨고 있는 중이야"


"잠들지 말고 늦지 않게 나가~"


"응 알겠어. 근데 일찍 깼네?"


"몰라 왜 깼는지, 다시 자려고~"


우리는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눴다.

나는 소파에 누워서, 아내는 안방 침대에 누워서.


씻고 준비하기 전에 잠시 깬 아내를 보러 안방으로 향했다.

대화가 끊기기 전에 좀 더 얘기하려고 아내에게 말을 걸면서 걸어갔다.


방금 전까지 분명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왜 문이 닫혀있지?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아내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몇 번이나 이름을 불러봐도 대답이 없었다.


뭐지 싶었다.


누구랑 대화한 거지 나는?


잠이 덜 깼나 싶었다. 알 수 없는 기분을 뒤로한 채 샤워를 하고 정확히 07시에 집을 떠났다.


나는 오늘도 약속시간으로부터 한 시간 전인 08시에 도착했다. 덕분에 커피 한잔의 여유도 생겼다.

.

.

.

.

.

*후기


이 모든 사실을 아내에게 얘기했다.

내 얘기를 듣던 아내는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지 찾아보겠다고 했다.

나중에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 아내는


"그거 나 맞아 ㅋㅋ"


"우리 집에 우리 둘만 사는 걸로"


내가 일어날 기색이 보이지 않길래 확인만 후딱 하고

바로 문을 닫고 잠들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아침의 해프닝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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