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르신들은 식탁 위의 기본 반찬 이상으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국이었다. 적어도 나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세대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메뉴였다.
어머니께서아침 점심 저녁 매 끼니마다
가족을 위해 나름 신경 쓴다고 기껏 고생해서 차려놓으면 때로는 찬이 시원찮다고 쓴소리를 필터 없이 내뱉곤 한다. 밥이 식어 있어도 안된다. 찬밥을 내어놓는 날엔 자신이 가장으로서 대우를 못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국. 그놈의 국이 도대체 뭐길래. 국은 절대적인 존재다. 누군가에게는 체스판의 여왕과 왕을 합쳐놓은 존재 이상이다. 도대체 왜 그럴까.
어떻게 보면 식탁에서만큼은 가족 모두가 하루 중 가장 가까이할 수 있는 시간일 텐데, 내 앞에 놓인 밥그릇 바로 옆에 이웃하고 있는 국그릇의 존재보다 못할 이유가 있을까 싶을 때가있다.
요즘같이 안 되는 게 거의 없는 세상, 온라인에 조금만 검색해 보면 위와 같은 이유는 얼마든지 금방 찾을 수있을 것이다. 말투에서는 따지듯 보일지 몰라도, 특정 상대에게 잘잘못을 따지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해가 되지 않아서일 뿐.
어려서부터 반찬투정을 해본 기억이 없다. 차라리 했으면 나을 뻔했을 수도. 한창 이유식을 해야 할 아기가 이유식으로도, 모유로도 배가 도저히 차질 않아서 외할머니께는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온갖 야채와 고기를 말려서 빻은 뒤 특별 이유식을 만들어 주셨다고 한다. 물론 한 달 치의 양을 보내주시면 보름도 안돼서 다 먹어치웠다고 한다. 남들은 이유식을 할 나이에 라면을 먹었다고 하니 반찬투정은 나하 곤 상관이 없어 보였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기저귀에 응아를 했다고 울 때, 나는 배고파서 울었다고 한다.
어느 젊은 가정에서나 비슷하겠지만, 온 가족이 여유롭게 식탁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며 먹는 문화는 많이 줄어들었다.부모들은 자식들이 자기 집에서 차려먹는 음식을 보다 보면 놀라서 잔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찬을 종류별로 알록달록하고 정갈하게 차리는 여유는 없어졌다. 스스로를 챙기는 정성이 부족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뭔가 먹었다 할 정도로 배만 차면 그만일 때도 있고 간단하게 차려도 충분히 영양식이 될 때도 있다. 세대차이를 느끼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마냥 한심해 보일 뿐이겠지만.
[뼈해장국을 먹을 때면 굳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다. 김치나 깍두기면 충분하다.]
물론 맛있는 국이나 찌개가 굳이 차려져 있다 해도 마다하지는 않는다.다만 있으면 있는 대로, 없는 없는 대로. 간혹 국물이 너무 맛있다 보면 국의 맛과 향에 취해버려서 앞에 놓인 다른 맛있는 반찬의 맛이 덜하게 된다. 나물이며 김치며, 그냥 아무 맛도 못 느끼게 될 때가 있다. 단지 그냥 좋아하는 반찬이라는 이유로 입 안으로 쑤셔 넣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국물 안에 온갖 다양한 형태의 반찬이 들어있는 국이 차려져 있는 날에는 아무리 앞에 다양하고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반찬이 있다 하더라도 국물 맛에 더 집중하게 된다.
[순대국밥을 먹을땐 다대기와 들깨가루로 충분히 맛을 내야 한다. 새우젓도 있으면 좋다. 반찬으로 깍두기면 충분하다.]
국물 안에는 국물을 우려내고자 사용했던 온갖 재료들의 잔향이 남아있고, 건더기도 종류별로 나누다 보면 반찬 몇 가지의 역할은 하게 된다. 이미 국그릇 안에서 서로 엉키고 뒤섞여서 가장 알맞은 맛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는데 굳이 다른 반찬으로 그 향을 방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뼈해장국이나 순대국밥을 먹는 날에는 자연스럽게 김치나 깍두기 외에는 굳이 다른 반찬을 찾지 않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내 입장에서는 국이 없다는 이유로 식사를 거부하는 경우나, 반찬투정을 하는 것은 보이는 것과 식사자리 앞에서만큼은 최소한의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일종의 집착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 맛의 진정한 조화의 향연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리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우리의 오감 중 맛을 느끼는 신체적 능력을 엉뚱한 곳에 허비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밥에 김치만 차려져 있으면 어떠하리. 차려준 사람에게 좀 더 감사한 마음이 있다면, 그 어떤 반찬이 차려져 있어도 꿀맛이다. 진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