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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하람 Jan 20. 2024

사랑에 빠진 목도리

겨우 목도리 하나

  목도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와 같다. 추운 겨울날 목도리를 하고 있으면 따뜻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 든다. 목도리 하나만 있으면 추운 겨울도 문제없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목도리를 맬 때 목에 닿는 감촉이 느껴지면 그 순간부터 뭔가 불편하고 어색해진다는 점이다. 목에 닿는 게 간질간질하기도 하고, 목도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괜히 의식되면서 몸이 마음대로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목에 맞닿아 있다는 사실을 의식했다는 사실만으로 몸 전체가 고장 난 느낌이 든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도 그렇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그전까지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던 모든 행동들이 어색해진다. 안 해도 될 말을 남발한다든가, 해야 할 말은 또 나오지 않는다든가, 심한 경우에는 안 하느니만 못한 말들도 해버리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를 너무 초반부터 좋아하게 되면 많은 경우에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 듯하다. 상대와 동시에 사랑에 빠져버리는 행운이 찾아오지 않는 한 말이다.


  일로 알게 되었지만 인성이나 성격이 괜찮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다. 잘 웃고 친절한 모습도 있는 반면 맺고 끊음이 확실하고 자기 일도 잘하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사람이 괜찮다고 해서 이성적으로 좋아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괜찮은 사람과 만나기 힘든 나이에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발견한 것뿐이었다. 아쉽게도 나와 접점이 많지는 않았다. 일로 만난 사이인데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테고 그럴 정도로 사람이 궁하지는 않아서 오다가다 마주칠 때 인사 정도만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일 끝나고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생각보다 대화도 잘 통했고 그날 대화가 즐거웠다. 일이 아니더라도 더 얘기하고 싶어 졌고, 더 친해지고 싶어서 주말에 약속을 잡았다. 물론 이것은 이성적인 감정이라기보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감정이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그래서 만나서 밥을 먹고, 카페도 가고 저녁 종일 같이 얘기했는데 대화가 잘 통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고, 가치관이나 생각하는 방향이나 성향 등이 나랑 너무 잘 맞았다. 그날 나는 안 해도 될 질문들을 남발할 정도로 호기심이 많았었나 보다. 저녁을 먹을 때였는지, 카페에 이동할 때였는지, 카페에서부터였는지 어느 시점부터인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부터 굳이 안 해도 될 질문이나 굳이 안 해도 되는 나의 TMI를 ‘굳이 굳이’ 남발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도 아닌데 왜 고장이 났을까? 아니, 질문을 바꿔야 한다. 도대체 언제부터 그 사람이 좋아졌을까? 그날 밤은 애꿎은 이불을 발로 차지 않으면 버틸 수 없는 밤이었고, 결국 언제부터 맸는지 기억도 못하는 목도리를 거울을 보면서 천천히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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