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러너가 된 도시 러너

시골은 집 문앞에서 지체 없이 뛸수 있다. 러너의 천국일까?

by 영태

달리기가 취미가 된 건, 아마 2023년쯤부터였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운동은 커녕 걷는 일 조차 드물었다. 음주, 과식. 스트레스는 쌓였고, 그걸 풀 시간은 없었다. 어느 순간부터, 예전엔 아무렇지 않던 일들에도 쉽게 예민해졌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 한계점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처음부터 달린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냥 걸었다.

회사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은평구 집까지 8km 남짓 되는 거리를 퇴근길 삼아 걷기 시작했다. 2시간쯤 걸렸다. 그 시간 동안 좋아하는 음악이나 유튜브를 들으며 그저 걷기만 했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았다. 계속 걷다 보니, 뛰고 싶어졌다.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게 처음 달리기를 시도했을 때, 100미터도 버티기 힘들었다. 숨이 차고, 무릎이 아팠다. 하지만 이상하게, 또 달리고 싶어졌다. 조금씩 거리가 늘어갔다.


400미터, 1km, 2km…


달릴 수 있다는 게 신기했고, 잘 달리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달리기에 중독되었다. 동아마라톤, JTBC마라톤 풀코스도 (겨우) 완주했다. 스스로는 꽤 뿌듯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매일 아침 달렸다.

아침 6시쯤, 러닝복 차림으로 회사 주차장에 도착하면 경복궁 네 바퀴를 돌거나 청계천,성북천을 따라 대학로을 찍고 회사로 돌아왔다. 대략 10km 정도.


달리고 나면 지하 헬스장에서 샤워하고, 여유롭게 업무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하루의 시작이 나쁘지 않았다. 그건 꽤 잘 작동하는 시스템이었다.


귀농을 결정했을 때, 생각했다. 이제는 문을 열고 바로 달릴 수 있는 삶이겠구나. 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결과는 조금 달랐다. 매일 10km 달리던 습관은 무너졌다. 지금은 가끔 달리기를 하며 새로운 루틴을 만들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의 러닝은, 솔직히 말하면 하나의 환상이었다.

물론 도시처럼 소음은 없었다. 하지만 어둠은 있었다.


나는 항상 새벽에 달리는 걸 좋아했다. 그런데 시골의 새벽은 도시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어두웠다.

가로등도 어둡고, 인도와 차도의 구분도 없다. 사람이 가는 길이 곧 차가 가는 길이고, 차가 가는 길이 곧 사람이 가는 길이다.


그 길을 달리는 나는 새벽 농사일에 나선 포터에게 위험한 존재였고, 그들의 헤드라이트는 나에게 또 다른 위험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문제 하나. 뱀.


나는 뱀을 정말 싫어한다. 한강에서 뱀이 발견되면 뉴스꺼리가 되지만 시골에서 뱀은 일상이다.

시골에서 달리다 보면 뱀을 자주 본다. 살아 있는 뱀, 그리고 차에 밟여 죽어 있는 뱀. 사실 죽은 뱀이 더 무섭다. 뱀이란 걸 알아차리는 순간, 다리 근육이 순간적으로 놀란다. 그날의 달리기의 재미는 그걸로 끝이다.


어쩌면 나는 달리기를 하는 게 아니라, 뱀을 피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물론 대안도 있었다. 문경 도심지 쪽에는 길이 잘 정비된 공원도 있고, 뛰는 사람도 제법 있다. 사람의 발길이 있다보니 뱀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지금의 거처에서 거기까지 차를 타고 30분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건 또 다른 장벽이었다.


그렇게, 많은 핑계 속에서 매일 달리던 습관은 무너졌다.


지금은 가끔 달린다. 도파민이 고갈될 즈음, 다시 러닝화를 꺼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조금만 더 적응되면, 새로운 시스템을 하나 만들어야지.


왜냐하면 달리기는, 여전히 재미있으니까.





15년차 마케터였고, 지금은 농부입니다.
"마흔즈음에 부부가 같이 귀농해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귀농해서 경험하고 있는것을 공유하고 싶어요. 매주 업로드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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